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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 지역 트레킹의 시발점인 나야풀 거리.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간단한 등산장비가 있다면 여기서 살 수도 있다.
안나푸르나 지역 트레킹의 시발점인 나야풀 거리.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간단한 등산장비가 있다면 여기서 살 수도 있다. ⓒ 김동욱

 

본격적인 트레킹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애초 내가 계획했던 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의 숫자는 해발고도). 물론 나의 이 트레킹 예상 일정은 트레킹 도중 상당히 바뀌게 되고, 내려갈 때의 코스도 약간의 변경이 생긴다.

 

[10월 20일] 포카라(820)-나야풀(1070)-비레탄티(1025)-티케둥가(1540)-툴레리(1096)
[10월 21일] 툴레리(1096)-울레리(1960)-반단티(2210)-고레파니(2860)
[10월 22일] 고레파니(2860)-푼힐(3210)-고레파니(2860)-반단티(3180)-타다파니(2630)
[10월 23일] 타다파니(2630)-촘롱(2170)
[10월 24일] 촘롱(2170)-시누와(2360)-뱀부(2310)-도반(2600)-히말라야(2920)
[10월 25일] 히말라야(2920)-데우랄리(3230)-MBC(3700)
[10월 26일] MBC(3700)-ABC(4130)
[10월 27일] ABC(4130)-MBC(3700)-데우랄리(3230)-히말라야(2920)-도반(2600)
[10월 28일] 도반(2600)-뱀부(2310)-시누와(2360)-촘롱(2170)-지누단다(1780)
[10월 29일] 지누단다(1780)-뉴브릿지(1340)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시울리 바잘로 빠져서 나야풀에서 택시를 타고 포카라까지 당일 도착. 그런 후 10월 30일 포카라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낸 후 10월 31일 카트만두 들어가서 다음날인 11월 1일 오후 3시 반 비행기로 귀국.

 

 안나푸르나 지역의 트레킹 출발지인 나야풀에서 현지 포터들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트레커들의 배낭을 내리고 있다.
안나푸르나 지역의 트레킹 출발지인 나야풀에서 현지 포터들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트레커들의 배낭을 내리고 있다. ⓒ 김동욱

 

어젯밤 가이드 '먼'(나는 '먼바들 마갈'을 줄여서 '먼'으로 부르기로 했다)이 미리 예약해둔 택시가 아침 일찍 숙소인 '마운드리조트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 먼이 데리고 온 포터 '프리티 마하드(Prithi Mahad)'도 같이.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어제 포카라에서 트레킹 퍼미션을 받았고, 가이드와 포터도 내 곁에 있다. 이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걸으면 된다. 먼이 데리고 온 포터 '프리티'는 올해 17살로, 아직 애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모습이다. 키는 167~168cm 정도 돼 보이고, 몸은 군살 하나 없다. 좋게 말해 군살이 없다는 거지 사실은 바싹 말라 있었다.


"먼, 포터가 너무 어리고 약해 보인다. 괜찮겠어?"
"아무 문제없어. 이 친구 굉장히 튼튼하고 강해."

 

"포터 일한 지 얼마나 됐는데?"
"1년."

 

"뭐? 이제 1년? 안나푸르나 트레킹 포터 경력은 얼마나 되는데?"
"한 3~4번 될 거야.'


실제로 프리티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의 체구와 키, 나이 등을 따지면서 걱정을 했었다.
'과연 무겁디 무거운 내 배낭을 짊어지고 10일 간의 트레킹을 완주할 수 있을까?'

 

 나야풀 마을을 벗어나자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게 보인다.
나야풀 마을을 벗어나자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게 보인다. ⓒ 김동욱

 

가냘파 보이는 포터가 걱정이 되는데...

 

나중에 ABC에서 내려올 때 펼쳐진 프리티의 대활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에 대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미래소년 코난 처럼 '강한 소년 포터'였다.


어쨌든 나와 먼, 그리고 프리티는 택시를 타고 나야풀로 향했다.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는 산길을 돌고 돌아가는 꼬불꼬불 여정이지만 비교적 길이 잘 닦여 있어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1시간 좀 더 걸려 나야풀에 닿았다. 이때가 오전 9시경.

"자, 여기서부터야. 이쪽 길로 내려가면 돼."


가이드 먼의 안내에 따라 나야풀의 작은 마을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가만…. 프리티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다.

 

"먼, 프리티가 슬리퍼를 신고 있네. 저건 안 돼! 최소한 운동화는 신어야 돼."


나는 먼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먼도 프리티의 발을 보더니 내 말에 수긍을 한다.

 

"아, 그렇군. 맞아. 여기서 사 신고 가면 돼."

 

 나의 가이드 '프리티'가 나야풀에서 운동화를 고르고 있다. 프리티는 이름 그대로 상당히 예쁜(?) 아이다.
나의 가이드 '프리티'가 나야풀에서 운동화를 고르고 있다. 프리티는 이름 그대로 상당히 예쁜(?) 아이다. ⓒ 김동욱


그래서 일단 나야풀 입구 잡화가게에서 프리티의 운동화를 샀다. 양말도 두 켤레 샀다. 운동화가 500루피. 양말이 100루피. 이 비용은 트레킹이 끝난 후 포터 피와 별도로 내가 프리티에게 주었다.

 

하늘은 맑다 못해 파랗다. 하얀 구름이 동동 떠서 코발트 색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여기 네팔의 가을은 우리의 가을과 많이 닮아 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빛이 그렇고, 손바닥만한 다랑이 논에서 막 익기 시작하는 누런 벼가 그렇다. 무엇보다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먼 것이 우리 농촌의 가을이랑 무척 닮아 있다.

 

 힐레 가는 길의 풍경. 우리나라의 농촌길과 흡사하다. 긴 계곡물이 흘러내려오고 그 옆으로 막 익어가는 가을 곡식이 풍성하다.
힐레 가는 길의 풍경. 우리나라의 농촌길과 흡사하다. 긴 계곡물이 흘러내려오고 그 옆으로 막 익어가는 가을 곡식이 풍성하다. ⓒ 김동욱


나는 지금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서 그야말로 유유자적 걷고 있다. 이런 여유로움은 얼마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풍요인지 모른다.

 

마오이스트를 만나 1000루피 기부(?)

 

 비레탄티 들어가기 직전에 만난 마오이스트들. 여기서 나는 1,000루피를 기부(?)했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영수증을 써주고 있다. 이 영수증은 트레킹 끝날때까지 보관해야 한다.
비레탄티 들어가기 직전에 만난 마오이스트들. 여기서 나는 1,000루피를 기부(?)했고,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영수증을 써주고 있다. 이 영수증은 트레킹 끝날때까지 보관해야 한다. ⓒ 김동욱

 

"저 다리를 건너면 비레탄티(Brethanti)야."


먼의 말에 앞을 보니 작은 출렁다리가 계곡에 걸려 있고, 제법 많은 트레커들이 다리를 건너거나 건널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마오이스트들을 만났다. 물론, 이날 이 다리를 건너던 모든 트레커들은 마오이스트들과 만났다. 그들은 다리 입구에 작은 탁자 두 개를 붙여놓고 트레커들에게 뭔가를 써주고 있었다. 난 처음에 이들이 마오이스트인 줄 몰랐다.
 

"먼, 이게 뭐야?"


먼의 얼굴이 상기돼 있고, 표정도 굳어 있다. 먼은 목소리를 낮춰 내 귀 가까이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이 사람들, 마오이스트야."
"그래…? 정말…?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먼이 마오이스트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다시 나에게 다가와서 트레킹 일정에 따라 일정액을 '기부'해야 한단다. 그들이 요구하는 금액은 하루 100루피. 나의 예상 트레킹 일정은 10일이므로 마오이스트들에게 1000루피를 주어야 한다. 난 선선히 1000루피를 지불하고 그들이 써주는 영수증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이 돈은 네팔의 민주화를 위한 당신의 기부금입니다."

 

 가이드 먼바들이 비레단티로 들어가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가이드 먼바들이 비레단티로 들어가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 김동욱

나는 이날 마오이스트를 만난 것보다, 돈을 받은 이들이 나에게 했던 이 말이 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비레탄티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넌 후 피시테일 롯지에서 밀크티를 한 잔 하면서 먼에게 물었다.


"먼, 넌 마오이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려워."


"네팔 국민들 중 얼마나 마오이스트에 동조하고 있지?"
"아마 마오이스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50% 이상일 걸."


난 먼의 이 말에 약간 놀랐다. 먼의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네팔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현 정부를 불신한다는 거다. 다시 한 번 물었다.


"넌 어때? 너도 마오이스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
"마오이스트를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리더는 좋아."


마오이스트의 리더를 좋아한다? 먼의 이 말로 나는 네팔 국민들의 마오이스트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네팔 국민들에게 마오이스트의 영향력은 작지 않은 모양이다. 실제로 나는 며칠 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직전 데우랄리의 롯지에서 최근의 <네팔 타임즈>를 보게 되었는데, 여기에 마오이스트 리더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티케둥가에서 달밧으로 저녁 식사 후 1박

 

 Never End Peace And Love. 담벼락에 쓰여있는 이 글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여기 힐레에서 점심으로 볶음밥을 먹었다.
Never End Peace And Love. 담벼락에 쓰여있는 이 글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여기 힐레에서 점심으로 볶음밥을 먹었다. ⓒ 김동욱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티케둥가(Tikhedhungga 1540m) 직전 힐레(Hile 1430m)의 롯지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때가 오후 2시쯤. 밥 주문은 12시 40분쯤 했는데, 볶음밥이 내 앞에 놓일 때까지 1시간이나 걸렸다. 예상치 않게 여기서 2시간 가까이 쉬어버린 셈이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발 아래 다랑이 논에는 노랗게 벼가 익어가고 집 앞 돌계단과 풀밭에는 천진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해 티케둥가의 롯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쯤. 오늘은 여기서 1박을 한다. 툴레리(1096m)까지 가려던 애초의 계획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후 밀크티 한 잔을 마신다. 나야풀에서 만난 두 명의 태국인을 여기서 또 만났다. 그들은 여기서 쉬지 않고 계속 오른다고 한다.

 

"'티케둥가'에서 티케(Tikhe)는 뾰족한(peak)이라는 뜻이고, 둥가(Dhungga)는 돌이야."


먼의 설명대로라면 티케둥가는 '뽀족한 돌'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이다. 오후 5시쯤 한 무리의 트레커가 들이닥쳤다. '들이닥쳤다'는 표현이 맞는 게, 모두 20명쯤 돼 보인다. 20여명의 서양인 트레커들이 우르르 몰려드니 그때까지 한적하던 롯지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진다. 아마 자체 인솔자를 둔 패키지 트레킹 여행객들인 모양이다.

 

이들은 저녁을 먹기 전 롯지 마당으로 몰려나와서는 리더의 설명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팔을 꺾기도 하고,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폈다 굽혔다 한다. 이런 요란을 1시간 쯤 떨더니 다시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 저녁을 먹는다. 가관인 건 이때부터 이들의 포터와 가이드들은 흡사 이들의 몸종이 돼 버린다는 것. 이들의 포터와 가이드들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각각의 트레커에게 국을 떠주거나 술병을 따주는 등 법석이다.

 

나는 저녁으로 달밧을 먹은 후 식당 한 귀퉁이에 앉아서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그런데 저녁 7시 30분이 넘어서자 기온이 뚝 떨어진다. 피곤이 몰려온다. 오늘은 6시간 정도 걸었다. 내일은 원래 일정대로 고레파니(2860m)까지 갈 생각이다.

 

"먼, 내일 아침은 7시 30분에 먹자. 계란프라이와 밀크티."

 

 힐레에서 만난 동네 처자와 어린이. 이 여성은 상당한 미모를 가졌는데, 사실 미스인지 미세스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여기서 확 눌러 살까 하다가...
힐레에서 만난 동네 처자와 어린이. 이 여성은 상당한 미모를 가졌는데, 사실 미스인지 미세스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여기서 확 눌러 살까 하다가... ⓒ 김동욱

 

 여행 메모

 

1) 나야풀에 가기 전 포카라 숙소에서 가이드 먼에게 트레킹 일정의 절반인 5일치의 가이드 피와 포터피를 먼저 지불함. 가이드 먼=5000루피, 포터 프리티=3500루피


2)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퍼미션(2000루피)은 카트만두가 아니더라도 포카라에서 받을 수 있다.


3) 비레탄티 직전에 만난 마오이스트들에게 1000루피 뜯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많은 트레커들은 나처럼 순진하게(?) 그들의 요구액을 모두 주지 않는다. 일정을 축소해서 말하기도 하고, 400루피를 요구하면 영수증을 받자마자 200루피를 던지듯 주고는 도망치는 트레커도 있다. 심지어 전혀 돈을 뜯기지 않고 막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가는 트레커도 있다. 이때, 마오이스트에게 받은 영수증은 트레킹 끝날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음에 또 마오이스트를 만나면 이들에게 영수증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들은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4) 힐레에서 점심+티케둥가에서 저녁·아침+방 값 및 차와 음료수 등 총 비용=600루피 정도.


#네팔#안나푸르나#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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