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주의 조그만 연주회장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울러퍼졌다. 혹자는 그게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지간한 메이저급 공연이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 현대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모험이다. 그것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이 아닌가. 이 모험을 결행한 단체는 현대음악 앙상블 <플럭서스>다. 이들의 창단 연주회다.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김종삼 교수(전북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연주회가 끝난 뒤인 19일 만나보았다. <기자 주>
- 연주 잘 들었다. 매우 독특하고도 이색적인 자리였다. 연주회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만족한다. 앞으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야겠지만 첫 연주회를 치러낸 것을 단원들 스스로도 뿌듯해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연주곡이었던 로버트 하피 플라츠의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하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 연주회를 감상한 솔직한 느낌을 말하겠다. 솔직히 어려웠다. 안내 팸플릿이 없었다면 아마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을 거다. "그래서 안내 팸플릿을 준비했다. 밤새도록 만들었다.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기 위해서 자료도 많이 참고하고 다듬었다. 아마 처음 접하신분들은 어려웠을 거다. 나도 어려우니까."
- 전주에서 이런 연주회 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거다. 우선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너무 어렵다고들 생각하지 않나. "현대음악을 흔히 난해하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가 자주 접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현대음악의 자체 특성상 쉽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자꾸 반복해서 듣는 훈련을 하다보면 그리 어렵지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좀 쉽게 갈수도 있지 않았나. 우선 청중들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요즘 음악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가 그거다. 현대음악이 어려우니까, 청중이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무조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난 청중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중들의 수준은 우리(전문 음악인)가 생각하는 것보다 낮지 않다. 자꾸 쉬운 음악만 만들어내니까 청중들의 눈높이와 구미가 거기에 맞춰지는 거다."
현대음악의 진정한 묘미는 ‘창작’ -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현대음악을 듣는 것이 괴롭다(웃음) 그렇게하면서까지 굳이 현대음악을 들어야한다고 생각하나? 현대음악의 매력이란 무엇인가? "창작이다. 창작이야말로 현대음악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대 음악을 듣기가 괴로운 것은 자기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창작은 그 너머에 있다. 생각해보라. 누구나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창작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음악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순수음악, 즐기는 음악, 기능음악이 그것이다. 순수음악은 말그대로 음악 창작의 본질을 추구하는 음악이고 즐기는 음악은 우리가 흔히 듣는 대중음악, 기능음악은 영화음악이나 CF음악 등이다. 현대음악은 순수음악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더라도, 듣기 어렵더라도 자꾸 반복해서 듣다보면 듣는 안목이 생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현대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다. 지금 내 설명은 현대음악을 접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사람, 왜 현대음악이 필요한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답변이다. 모두들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일례로 나는 가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요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즉 음악에 있어서 각자 취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열이 있을 수는 없다."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 ‘플럭서스’ 정신 추구한다
- 앙상블 <플럭서스>에 대해서 묻겠다. 의미가 궁금하다. "1960년 유럽에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기존의 관습과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벗어나 다양하고 자유롭게 하는 예술을 또한다. 그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플럭서스라고 이름붙였다. 개인적으로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던 존케이지를 좋아한다."
- 창단 구성은 언제부터 했나. "독일 유학을 할 때 유럽에 있는 수많은 고급스러운 현대음악 앙상블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유럽은 한국에 비해 현대음악 활동이나 연주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구상은 독일유학때부터 했고 구체적으로 단원을 모집하거나 활동계획을 세운 것은 작년부터였다."
- 단원들은 어떻게 모았나. "당연히 현대음악에 뜻을 두고 있고 현대음악을 한 번 해보려는 사람들로 구성했다. 일부는 전주에 살기도 하고 일부는 서울에 산다. 학연, 지연 따지지 않고 뜻이 맞는 사람들로 수소문해서 구성했다. 플루트 주자 같은 경우는 순전히 블라인드 테스트로 이뤄졌다. 연습실 앞을 지나다 연주만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했다."
- 단원 중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회원이 눈에 띈다. 개량가야금이나 플루트대금 등이 그것인데 현대음악 앙상블에 웬 국악긴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이번 연주회에서 소개한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언급해야한다."
- 나 역시 그 점이 못내 궁금했다. 더구나 국내초연이라니 더욱 궁금하다. "이번 연주회에서 선생의 작품을 총 3곡 했다. 원래는 양악기로 작곡된 것이지만 전통악기 또는 개량악기로 연주한 것들이다. <물가의 은자>는 원래 리코더곡이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36관 생황으로 했다. <오보에 독주곡> 역시 플루트대금 연주로 새로이 시도해보았다. 마지막으로 <일곱악기를 위한 음악>은 개량가야금과 정악대금, 플루트대금, 36관 생황 등을 추가해서 <열개의 악기를 위한 버전>으로 새로 시도해본 것이다. 물론 모두 국내초연이다. 마지막곡은 아마 세계초연이 되지 않을까.(웃음)"
전통악기로 서양음악 연주한다고 전부 퓨전은 아니다 -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굳이 전통악기로 연주한 까닭은 무엇인가? "선생의 작품에는 직간접적으로 국악적인 요소가 내재해있다. 선생이 죽는 순간까지 고국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선생의 가슴 엔 전통의 선율과 가락이 숨쉬고 있었던 거다. 선생은 이런 전통선율을 서양의 악기를 통해, 현대적인 작곡기법을 통해 표현했다. 비록 그 표현기법은 서양식을 택했지만 그 정신은 전통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선생의 이러한 정신을 살려 전통악기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또 하나 우리가 서양의 현대음악 앙상블들과 차이를 둔다면 그것의 핵심 키는 바로 전통음악과의 만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우리만의 고유의 것을 살리자는 의미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퓨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악기로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만나 또다른 하나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정기연주회를 통해 활동을 하되 장소를 전주나 한국에 국한시키지 않고 유럽쪽으로 확대하려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금호아트홀의 연주가 예정되어 다. 윤이상 선생의 작품소개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과 잘 맞기 때문에 선생의 작품 주로 활동하려 한다. 독일에 있는 윤이상재단에서 추진하고 사업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중이다."
- 평소 집에서는 어떤 음악을 듣나. "한 마디로 잡식성이다. 가리지 않고 다 듣는편이다. 그러나 내가 작곡한 것은 잘 듣지 않는다.(웃음)"
<플럭서스> 창단 연주곡 소개 |
지난 16일 전주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린 플럭서스 창단 연주회에는 총 6곡이 연주됐다. 현대작곡가 ‘로버트 하피 플라츠’의 공간 작곡기법으로 작곡된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하여>(1996)는 피아노와 첼로는 무대에 위치하고 나머지 플루트와 클라리넷, 바이올린은 관중석에 각각 자리하여 공간이 어떻게 음향을 지배하는지 보여준 작품이었다.
윤이상의 <물가의 은자>(1993)는 원래 리코더 곡이었으나 이날 36관 생황으로 연주했다. 존케이지의 <료양지>(1983)는 교토에 있는 용안사에 있는 모래정원을 바라보며 그 감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타악기의 신비스럽고 은은한 독주와 테너의 목소리로 색다르게 연출되었다.
니콜라우스 아 후버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다라부카>(1976)는 리듬작곡이라는 기법으로 작곡된 작품. 기독교 문화권의 대표적 유럽 작곡가인 후버가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상징하는 '다라부카'(이슬람권 악기)를 피아노로 연주한 작품. 종교간의 갈등과 인종간의 차별앞에서 화해의 의미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윤이상 선생의 <오보에 독주를 위한 피리>(1959)와 윤이상의 일곱악기를 위한 음악을 김종삼 교수가 편곡한 <열개의 악기를 위한 버전>(2007)은 서양악기로 실현시켰던 윤이상의 음악적 이디엄을 전통악기를 포함한 편성을 통해 재조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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