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들이 서울 나들이는 거의 책방 나들이입니다. 서울 나들이를 하면 볼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을 테지만, 다른 데에는 그다지 눈길이 안 갑니다. 자동차 많은 곳과 오가는 사람 많은 곳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저 알맞은 만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지내는 고즈넉한 동네와 골목길이 좋고, 오르내리막이 있는 산동네가 좋으며 판판하여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야트막한 동네가 좋습니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다른 곳 나들이를 할 때에도 그러한데, 마음 놓고 쓸 만한 뒷간 찾기 어렵습니다. 길을 나서기에 앞서 큰일을 보아야 하고, 작은일은 웬만하면 참으면서 다녀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혼자 살림 꾸리며 신문배달을 할 때에도 뒷간 다니기가 퍽 어려웠습니다. 두어 시간, 때로는 서너 시간씩 신문을 돌리다 보면 작은일을 보아야 할 때가 있는데, 새벽 두 시에서 너덧 시 사이에 ‘마음 좋게’ 문을 열어 놓고 있는 뒷간을 찾을 수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전봇대나 으슥한 곳에다가 쉬를 할 수도 없고. 헌책방 '대양서점'을 찾아갑니다. 발걸음은 헌책방으로 이어집니다. 900원을 치르고 버스나 전철을 타면 금세 넘어갈 수 있는 무악재도 두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적잖은 시간을 들여 넘어갑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이런 오르막이야 아무것도 아니며, 괜히 땀 흘릴 까닭이 없을지 모르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책방에 닿아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저보다 일찍 책방에 찾아온 누군가가 제가 바라던 책을 먼저 알아보고 사 갈 수 있어요. 그렇지만 느긋하게 걸어갑니다. 오늘 못 가면 다음에 갑니다. 다음에도 어려우면 그다음에 갑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 만나는 책은 책에 담긴 줄거리뿐 아니라 책에 밴 삶과 손때와 인연이 함께 잇닿아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 그 책이 저와 인연이 닿는다면, 제가 오늘 못 찾아가고 다음에 찾아가거나 다다다음에 찾아가더라도 제 눈에 쏘옥 들어오리라 믿습니다. 그 책방에서 만나지 못하고 열 해나 스무 해 동안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저한테 그 책은 지금은 속 깊이 읽힐 수 없기 때문에 안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가 그 책을 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기다립니다. 제 자신을 좀 더 추스를 수 있을 때를 기다립니다. 제 자신을 한 번 더 담금질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립니다. 손가락 빨면서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무던히 땀 흘리며 기다립니다.
<2> 테레사 님
'대양서점' 1매장 앞에 섭니다. 문이 열렸고, 책방 앞에 오토바이가 서 있습니다. 아저씨가 계시군요.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가 바깥일로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면, 책방 앞 오토바이가 없습니다. 헌책방에는 언제 '책 사러 이리 와 주셔요'하는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갖추고들 있습니다. 오랜 세월 발이 되고 벗이 되는 자전거며 오토바이입니다.
책방으로 들어갑니다. 책방 아저씨는 먼저 들어와 있는 책손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어이, 최 기자 왔어? 오랜만이네?"하면서 반겨 줍니다. '대양' 1매장 아저씨는 언제나 '최 기자'라고 불러 줍니다. 제가 무슨 기자라고. 당신 헌책방 이야기를 틈틈이 글로 적었을 뿐이고, 꾸준히 사진으로 담고 있을 뿐인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처음 '대양서점' 나들이를 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제가 사진기 들고 슬슬 골마루를 누빌 때' 매무새를 반듯하게 다스리느라 마음 아늑히 계시지 못하셨습니다. 이러기를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여덟 해째 되어 가는 동안 슬슬 가벼워집니다. '대양' 아저씨는 손님이 없을 때면 신을 벗고 양반다리 앉음새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성경책을 읽거나 성경테이프 듣기를 즐기는데, 이런 모습을 슬그머니 사진으로 담으면, "그런 모습은 찍지 말지?"하며 내리깔린 목소리로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거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줍니다. 하도 찍어대서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찍은 사진을 가끔 선물로 드릴 때면, 당신이 헌책방 한켠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조금 더 나아 보여서, 당신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그런지 모릅니다. <성바오로 여자수도회 엮음-슬럼가의 어머니>(성바오로출판사, 1977)라는 자그마한 책이 보입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마음과 몸을 바치며 살았던 테레사 수녀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한쪽에는 테레사 수녀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싣고, 한쪽에는 테레사 수녀님이 쓴 글을 붙입니다. "우리들의 청빈생활은 우리가 행하는 일에 못지 않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는 천국에 가야만 알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더 사랑할 줄을 알게 되었으니까요(11쪽)"하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과 어려움을 나누면서 살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에 '가진 사람 배운 사람 누리는 사람'이 하늘나라 문을 똑똑 두드릴 기회를 얻을 수 있겠군요. 살아 있는 동안 기꺼이 나누고 베풀고 함께 하며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요. 제가 이웃들하고 나눌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글쎄, 틀림없이 돈은 아니고. 아니, 돈은 내가 이웃들한테 얻으며 살아야 하고. 글? 사진? 헌책방을 다니며 만나고 부대낀 사람들 삶? 그 이야기? 두 다리와 자전거로 누빈 우리나라 구석구석 모습과 발자국?
<3> 번역가 김수영 님
<우라느스키/감태균 옮김-무신론자의 바이블>(정음문화사, 1984)이라는 조그마한 책이 보입니다. 지난날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낱말이 책에 적혀 있지만, 이제는 이런 낱말은 아랑곳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바이블'이면 어떻고 '신자'면 어떠하며 '무신론'이면 어떠합니까.
… 사람은 태어나 그리고는 죽어간다. 그 삶의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다. 한 번밖에 없는 삶이기에, 소중스럽게 마음껏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소중스럽게 산다는 것은 목숨을 아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목숨도 아껴야 하지만, 보다 소중한 것은 살아가는 방법이다. 마음껏 산다는 것은 시간적인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는 방법의 질의 문제를 말함이다. 생생하게 발랄하게 살자는 의미인 것이다… (9쪽)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교가 있어서 좋은 대목이 있고, 종교가 없어서 홀가분한 대목이 있습니다. 남자라 좋은 대목이 있고, 여자라 기쁜 대목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반가운 대목이 있고, 어린이라서 즐거운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읽었기에 넉넉한 대목이 있고, 책을 안 읽었기에 푸근한 대목이 있습니다.
… 남녀가 만나 애정 관계가 성립되면, 다음엔 세간의 상식이나 혼인 제도에 따라 결혼하면 된다고 하는 안이한 생각은 가질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실패하더라도 법률이 도와줄 리 없을 것이며, 사후 처리를 누군가에게 의뢰할 수도 없다. 자유롭다는 것은 안이함이 아니라 엄격함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인 것이다 … (146쪽)
<앨린 테이트/김수영, 이상옥 옮김-현대문학의 영역>(중앙문화사,1962)이라는 책도 보여서 살짝 집어듭니다. 어허. 옮긴이 가운데 한 분이 김수영 시인이네. 김수영 시인 번역책이라. 이게 몇 번째인가. 다들 '시인' 김수영만 알지, '번역가' 김수영은 모르는데.
하긴, 어린이문학을 한 이원수님 또한 '번역가'인데. 이원수님이 우리 말로 옮긴 어린이책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에 마땅한 러시아 문학 번역가가 없고, 프랑스 문학 번역가가 없을 때, 당신 이원수님은 일본에서 옮겨낸 책을 다시 한국말로 옮기며 우리네 어린이문학을 살찌우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지. <미운 새끼오리>부터 <장발장>까지, <꿀벌 마야의 모험>에서 에스에프 추리소설 번역까지. 위인전 번역에서 전집 번역까지, 게다가 <플루타르크 영웅전> 번역까지. 그렇게 창작과 번역을 하느라 잠깐도 쉴 틈이 없었을 이원수님 당신조차도 먹고 살기가 넉넉하지 않으셨다지. 이런 우리 세상 흐름이었기에 김수영님도 '시인'으로는 술값조차 얻을 수 없었고, '번역가'로 그저 몇 푼 쌀값과 술값을 댔을 텐데. 김수영 시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김수영님이 얼마나 많은 책을 우리 말로 옮겼고, 이런 나라밖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동안 몇 푼이나 벌었는지 모아 놓은 자료가 있을라나.
<막스 뤼티/이상일 옮김-유럽의 민화>(중앙일보사,1978)라는 손바닥책이 보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곧잘 만날 수 있는, '중앙신서 문고판'. 중앙일보사가 1970년대로만 그치지 말고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까지도 이러한 손바닥책을 꾸준히 펴냈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한테 칭찬을 듣고 섬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 유럽 민담의 특성을 인식하려는 사람은 녹음기를 갖추고 그 녹음이나 속기 메모를 그냥 발표하는 오늘날의 민담채집자의 기록만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조더(M.Soders)가 외진 '하스리탈' 지방에서 채록한 민담이 가리키는 것처럼 이야기문화가 쇠퇴해 가고 있다. 오늘날의 화자에게 통용되는 말이 그대로 성인들 사이에도 이야기가 살아서 나누어지던 지난 공동사회 구성 일원이었던 이야기꾼에게 그대로 들어맞을 리가 없는 것이다 … (204쪽)
수험생이었던 고등학교 2∼3학년 때 읽었던 작품들이지만, 한 권 더 도서관에 갖추고 있어도 좋으리라 생각하며 <라도향-벙어리 삼룡이>(서한사,1980)를 고릅니다. 이 책에 실린 짧은소설은,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뽕> <계집하인> <전차 차장의 일기>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피묻은 편지 몇 쪽> <춘성> <여 이발사> <행랑 자식> <십칠원오십전>, 이렇게 됩니다.
'세계위인 전기전집'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이형종-이순신>(광음사,1969)이라는 어린이책을 봅니다. '서울신문사 장서'라는 도장이 찍혀 있는데, 1969년 때 도장이 아닐까 싶군요. 이 도장이 찍힌 앞쪽에는 '선데이서울' 도장이 찍힙니다. <4> 신문사가 버려 준 고마운 책
<박수복-핵의 아이들>(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1986)은 '한국 원폭피해자 2세의 현장'이라는 작은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글쓴이 박수복님은 일찍이 1975년에 <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라는 책을 펴내어 '한국 원폭피해자 1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밝혀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나온 지 어느덧 스무 해 뒤. 이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1세와 2세를 넘어 3세 또는 4세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희수는 발가벗은 알몸에 두 눈만 빠끔히 뜨고 머리와 얼굴은 피로 몇 꺼풀 더께가 씌워져서 그야말로 이 어미의 발악적인 수색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알아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희수의 상처는 머리 전반의 화상이었다. 심한 부분만도 네 군데. 희수의 말로는 길에서 번개폭탄을 만났다고만 했다. 그해 11월달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석 달 동안을 닦고 닦아도 희수의 몸에 붙은 피더께는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았다. 희수가 7세 때, 내가 26세 때였다 … 1957년 경이었다. 우리 모자는 지금의 신성동 산꼭대기로 올라와서 야산에 자리를 잡고 천막을 쳤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흙과 돌을 구해 와서 움집을 지었다. 우리 모자에겐 밑천이란 몸밖에 없었다. 그런데 희수의 몸은 일본에서 망가진 이후 반병신이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열아홉이면 가장 힘이 좋을 나이다. 그런데 희수는 무거운 것도 들지 못하고, 자칫하면 골이 빠개져서 일손을 놔야 한다. 금방 시킨 일도 까맣게 잊어먹는다. 무엇보다도 남의 반밖에 힘을 쓸 수 없으니, 노동자로서의 첫째 조건이 맞지 않았다. 어디에 가나 대우도 못 받을 뿐더러, 한 번 써 보면, 아니 반나절 일로 잘라버리는 곳도 허다했다… (68∼69쪽)
책 안쪽에 '한겨레신문사 조사자료부 111228'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신문사 자료실에 있다가 버려진 책이로군요. 신문사에서는 더 쓸모가 없다고 느껴서 내놓았겠지요. 덕분에 저는 좋은 자료를 이렇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하나만 이런 책을 만나서 '한국인 원폭피해자' 이야기를 찾아본다는 일은 어쩐지 서글픕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어떻게 살아야 했고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를 취재해서 지면에 실어야 할 기자들이 이런 책을 두루두루 읽고 살피고 헤아리고 마음과 몸으로 녹여내어 3세와 4세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5세들 삶은 어떻게 될지, 덧붙여 나라 정책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우리한테 알려줄 수 있어야 좋지 않을는지. 그나마, 이런 신문사 자료를 '완전폐기'한답시고 찢어서 버리지 않아 준 일 하나로 고맙다고 해야겠지요. 찢어서 '완전폐기'를 했다면, 이 소중한 책은 그예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요.
<다나까 미찌꼬/김희은 옮김-미혼의 당신에게>(백산서당,1983)가 보입니다. 이 책은 몇 해 앞서 읽었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할 때면 가끔 보여서 그때그때 사서 둘레사람들한테 선물해 주고는 했는데, ㄷ출판사 사장님도 이 책 이야기를 듣고는 한 번 읽고 싶다고 했는데, 그분 부탁을 들은 뒤로 한 해가 넘도록 다시 보이지 않더군요. 이제서야 만납니다. … '전쟁포기'란 타국을 침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하한 군비도 안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자위대는 헌법 위반이라는 당신의 의견에 나도 찬성입니다. 어떤 분쟁이나 의견충돌도 무력이 아니고 대화로 해결해야 할 것이므로 무력을 분쟁해결의 수단으로 조직된 자위대는 국민에게 이득이 없다고 젊은 여성인 당신이 단언하고 있는데, 나는 감동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은 사랑에 대한 고민이나 할 것이지, 천하국가를 논할 바가 못 된다고 악담하고 있는 판에, 당신과 같이 직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정면으로 의문을 품으며 진지하게 세상과 인생을 생각하려는 여성이 나타난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 (126쪽)
<5> 레니 리펜슈탈
이럭저럭 책 구경을 마칩니다. 인천에서 도서관 살림을 꾸리면서, 인천 쪽에 있는 헌책방 나들이도 제대로 못하고, 인천과 가까운 부천 쪽 헌책방 나들이도 제대로 못하며, 수원 나들이도 거의 못합니다. 서울 나들이도 쉽지 않아요. 마음먹고 길을 나서지 않으면 서울에 오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한 번 서울 나들이를 하며 책을 구경할 때에는, 집으로 돌아갈 찻삯을 빼고 모두 책으로 바꾸자는 마음이 되곤 합니다.
'대양서점' 아저씨가 하나하나 헤아리며 책값을 말씀합니다. 가방을 열어 돈을 꺼내어 건네드립니다. 고른 책을 가방에 차곡차곡 채워 넣습니다. 사진기도 챙겨서 가방에 넣습니다. 어깨를 풀며 책 짐을 이고 갈 생각을 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이때, 문가에 있는 책꽂이 한쪽에 덩그러니 꽂혀 있는 짙은 풀빛 사진책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Leni Riefenstahl/J.Maxwell Brownjohn 옮김-The People of Kau>(Collins,1976). 헉! 레니 리펜슈탈 <카우> 사진책? 이 사진책이 어떻게 이 자리에? 아니, 이 사진책을 우리 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책을 싸고 있을 겉종이가 없어서 아쉽지만, 속 알맹이는 아주 깨끗합니다. 1978년 4월, 김○○님이 나라밖 나들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자기 윗사람한테 선물로 드렸던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이 사진책 하나가 들어왔군요. 사진책 선물을 받은 김○○ 차장님이라는 분은 서른 해 가까이 이 사진책을 간수하고 있었을 텐데, 어쩌면 이제는 이승 사람이 아닐 수 있겠군요. 이승을 떠나며 이승에서 간수하고 있던 책이며 온갖 물건이며 하나둘 멀리멀리 흩어졌겠군요. 이 책도 그런 흩어짐으로 홍제동 헌책방 한켠으로 흘러흘러 왔겠군요.
사진을 후루룩 넘기면서 '대양서점' 아저씨한테 말을 겁니다. '이런 사진 보신 적 없으신가요? 인류학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인용되는 사진인데.' '음,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에요. 나치 부역을 했다는 혐의 때문에 2차대전 뒤로 서른 해 가까이 조용히 묻혀 지냈는데, 이 할머니는 일흔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도 자기 예술 감각을 놓지 않고 아프리카 어느 부족으로 들어가 혼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사진책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거든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활동사진도 바로 이 할머니가 젊었을 적에 베를린 올림픽 영화를 만들면서 찍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거고요.' '그런 좋은 책이니 이 책을 알아보는 좋은 임자를 만나서 가네요.' '그런데, 너무 싸게 주시는 거 아닌가요? 이 책은 더 받으셔야 돼요.' '그거 뭐, 여기에 안 좋은 책이 어디 있나. 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 사람들한테는 귀중한 책이지. 여기 있으면 안 돼. 임자한테 가야지.' '그래도 더 받으셔야 하는데.' '내가 사 온 값이 있어서 그만큼 받아도 손해를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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