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일찍 눈을 떴다. 오전 10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나 보다. 잠을 설친 것 같은데 기분은 상쾌하다. 창밖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오랜만의 동반 나들이를 축하해주는 연주로 들린다.
오늘 가는 곳은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해남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오지의 농장이다. 목적지까지는 어림잡아 400km가 넘는 거리니 꽤 긴 여정이다. 어렸을 때의 표현으로 '징 허게 먼 천리길'이다. 작년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가지 못했고 올해도 몇 달을 망설이던 끝에 나섰다. 1박2일이 될지 2박3일이 될지는 도착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입하(立夏)를 넘긴 5월의 강한 햇빛이 나를 멋쟁이로 만든다. 천덕꾸러기처럼 1년 가까이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낙동대교를 지나 부산 나들목을 벗어나니 황토와 풀잎 냄새가 코를 훔친다. 답답한 방에서 해방되어서인지 평소에 보던 산천 풍경이 새롭다. 기쁜 마음을 달리 표현하지 못하고 “야! 좋다”는 탄성만 질러댄다. 얼마나 좋았는지, 고속도로가 오늘의 우리를 위해 뚫려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초록으로 변해가는 산과 들, 살갗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여름의 문턱에 와있음을 실감케 한다.
출발 2시간 만에 순천에 도착해 조카에게 시원한 냉면으로 점심 대접을 받았다. 살갑고 친절하게 대하는 조카는 '향토예비군'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큰 눈망울의 귀엽고 깜찍한 계집아이였는데 지금은 불혹의 나이도 잊은 듯 보인다.
집에 가실 때 다시 들르시라는 조카의 인사를 뒤로하고 시내를 빠져나와 해남으로 향하는 2번 국도로 들어섰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로수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한가로운 마을이 고향의 외가를 떠올리게 한다.
지도책을 꺼내 확인해 보니, 벌교, 보성, 장흥, 강진 다음이 해남이다. 족히 2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다. 운전에 열중인 집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굴을 살짝 훔쳐본다. 쳐다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앞만 주시하고 있다. 조수인 내가 안내판을 잘못 보는 바람에 1시간 넘게 헤맸다. “드라이브하러 나온 셈 치면 되지 않느냐?”라는 집사람의 여유가 여간 고맙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짜증이 나거나 지루하지도 않다.
강아지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주인 없는 집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적막이 흐르는 허름한 가옥들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흙냄새가 더욱 감상에 젖게 한다.
황톳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구릿빛 얼굴에 밭고랑처럼 깊게 파인 주름, 꼬마들의 남루한 옷차림이 그동안 소외받았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털털거리는 경운기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다. 우리 차가 부담스러운지 경운기 뒤에 탄 수건을 쓴 아주머니가 자꾸 돌아본다. 과연 시골길답다. 가난을 대변하는듯한 길가의 허물어진 토담들이 안쓰럽게 보인다. 보리밥도 먹기 어려웠던 60년대 가난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벌교’라고 쓰인 안내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질박하지만 정겨운 남도 사투리와 함께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 아니던가. 이런저런 생각이 고향을 찾은 기분을 자아낸다. 어렸을 때 들었던 ‘벌교에 가서는 주먹자랑 하지 마라’는 말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벌교를 벗어나자 넓은 들이 펼쳐지며 녹차 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휘어진 밭고랑 사이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들과 정상으로 향하는 굽은 산길은 차라리 그림 같다. TV에서 볼 때마다 와보고 싶던 보성의 녹차 밭, 바람을 타고 오는 푸른 들녘의 향이 그만이다. 하지만, 그 향이 익어가는 보리냄새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5월의 보리향을 녹차 향으로 알고 취했던 감정을 다시 물릴 수는 없는 일,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에야 해남에 도착했다. 초행길에 길눈까지 어두워 길가의 안내판을 찾지 못해 전화를 다섯 번이나 하고, 그것도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7시가 되어서야 농장에 도착했다. 하늘과 땅을 가른 지평선 위의 구름 사이로 검붉게 물든 서쪽 하늘의 장관이 피로를 감해준다.
농장은 2층 높이의 축사(畜舍) 3개와 주변의 밭이 운동장처럼 넓다. 밭과 축사를 합해 5만 평쯤 된다고 한다. 손이 달려 밭을 놀리고 있다는 주인의 탄식이, 일궈 먹을 땅이 없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시절이 떠올라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주인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 수천 마리의 닭과 오골계, 농장을 지켜주는 개들이 모두 가족이라고 설명한다. 알을 잘 낳는 씨암탉이 되겠다고 부화한 병아리가 자식 이상으로 희망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농장 주인과는 언론사 정치토론 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2002년 대선 때 지지하는 후보가 같고 이념이 비슷한 게 인연이 되었는데 하루는 농장 주인이 야당 후보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광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해서 나와 집사람은 경찰서 홈페이지에 탄원서를 올렸던 인연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처음 대하는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분뇨를 손수 치우는 양계장 주인답게 나보다 몇 년은 더 늙어보인다. 부인의 검고 주름진 얼굴과 소나무 껍질 같은 손등이 농장의 삶이 어떠한지 설명해주는 듯하다.
생활은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살림집은 허름한 임시 건물이다. 주인의 철저한 내핍생활에 고개가 숙여진다. 무엇이 못 미더운지 손님을 앉혀놓고 자주 밖을 드나든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알고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낳는 알들을 거둬들이느라 오갔던 모양이었다. 생산되는 계란은 작지만 ‘유정란’이어서 무정란과 달리 값도 비싸고, 인기가 좋다고 한다. 닭과 오골계를 접붙여 ‘다갈’이라는 마크로 특허까지 따냈고 서울과 부산 등 먼 도시의 유명매장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단다. 직접 축사를 치우며 연구하는 벤처농장으로 경영하는 모습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된 집사람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부인이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 살갑다. 양계를 하는 농가답게 집안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어지러이 놓여있다. 저녁준비를 돕기 위함인지 집사람은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방으로 달려간다.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부엌살림을 그냥 쳐다보며 앉아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부인은 농장의 고된 생활에도 만족해하는 표정이다. 고생하는 당신을 보고, 수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손님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땐 더욱 용기가 솟는다고 했다. 남도의 맛깔스런 찬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피곤함도 잊은 채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더위를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비가 오려고 어제 그렇게 더웠던 모양이다. ‘게으른 놈 늦잠자기 좋게 온다’는 말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진다. 수천 마리의 닭 울음소리와 개들의 짖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지만 외딴 시골농장의 아침은 평화롭다. 창문 아래 둥지에서 노란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는 소리가 분위기를 한껏 돋워준다. 아침을 먹고 보길도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움직이기가 싫다. 이왕 왔으니 내일까지 편히 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사람에게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방에 앉아 입으로 보길도 관광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무슨 전화인지 주인은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만 한다. 멀리 부산의 거래처에서 주문이 들어왔다며 특허출원번호와 ‘다갈’이라고 인쇄된 상자를 가져와 포장을 하기시작 한다. 옆에서 구경만 할 수 없는 일, 비 오는 날 하루를 상자 접기로 보냈더니 그것도 일이라고 허리가 아프다.
점심때는 오골계와 암탉에 약초를 넣고 삶은 백숙이 나왔다. 손님을 대접하려고 특별히 준비한 모양이다. 고기가 담백하고 맛도 좋았지만 후식으로 나온 녹두죽의 개운한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저녁이 되자 자연스레 내일 얘기가 화제가 되었고, 주인은 가는 길에 부산의 거래처에 배달을 부탁한다. 집사람 운전이 초보이고 길눈까지 어둡지만, “못할 것 없죠. 전달해주겠습니다.”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음날, 부산에 도착하여 한참 헤맸지만 하나도 깨트리지 않고 임무를 마쳤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볍고 시원하다. 생각지 않던 택배원 노릇을 했지만 무사히 배달했고, 경비 절감에 조금이나마 도움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거기에 ‘다갈’ 한 상자를 선물로 받았으니 짭짤한 부수입까지···.
부수입도 부수입이지만 '땅끝마을' 해남 여행의 추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동물의 분뇨를 양분 삼아 열심히 살아가는 인터넷 친구 만남이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