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추진중인 동대문 운동장 철거계획이 풍물시장 노점상인들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서울시 계획은 동대문 운동장을 헐고 그 일대를 세계적인 건축가에 의뢰, 새로운 쇼핑단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러 반대 의견 중에 곱씹어 보아야 할 의견은 바로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역사성' 논의다. 시민단체, 학계에서는 동대문 운동장이 근대적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며 보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서울시뿐 아니라 낙후된 도심을 재활성한다는 취지하에 기존의 오래된 건물들을 철거하고, 초고층 빌딩과 하이테크 양식의 세련된 단지를 세움으로써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장소마케팅 전략은 세계적 흐름이다. 사막 위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 두바이 사례가 건설광고, 방송, 칼럼 등 미디어를 통해서 수차례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과연 고유한 역사성을 증발시키고, 새로운 건물들을 심는 것만으로 새로운 브랜드 서울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그야말로 사막 한복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두바이 사례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도시계획처럼 기존 역사문화도시 경관을 존중하고, 개발을 억제하고 가꾸는 사례야말로 정작 수도 정도 600년의 역사가 누적된 서울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도시계획 태도가 아닐까?
최근에 태릉사격장 철거 논의에도 동대문 운동장처럼 근대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관점이 요청된다. 그런데 태릉사격장의 경우에는 동대문 운동장 사례보다 좀 더 복잡한 사정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이 내세운 태릉사격장 철거의 주요한 근거는 태릉의 조선왕릉을 복원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동대문 운동장처럼,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장소마케팅을 시도한다기 보다는 사라진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복원'이라는 이유로 기존 한국 근대화 시기를 상징하는 태릉사격장을 철거해야 하는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태릉사격장은 지난 1968년 박정희 정권시절, 박정희의 측근에 의해, 문화재인 태릉 인근에 사격장을 만드는 몰지각함이 빚어낸 산물이다.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태릉사격장 설립의 뿌리는 정당치 못했다. 하지만 설립 이후 거의 40여 년 동안 한국사격계가 이룬 결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체력은 국력', '지덕체' 등 국가주의 체제의 일환으로 체육계가 커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스포츠를 국가주의 산물로서만 환원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한국 근대화, 군사정권 시절의 유물인 동시에, 지금까지 켜켜이 쌓여온 체육인들의 노력과 땀방울의 역사는 조선 왕릉의 문화유산 가치에 결코 떨어진다고 볼 이유가 없다.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이 한 인터뷰에서 "21세기 스포츠는 과거 냉전시대의 소모적 경쟁이 아닌, 마케팅적 측면에서 그 위상이 증대됐다"고 발언한 것도 스포츠 국가주의에서 체육인조차도 벗어나고 있음을 나타내 준 것이다.
갈등의 근원은 협의의 부족 동대문 운동장 철거반대 이유에는 역사성도 있지만 기존 노점상인들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경기를 대신할 장소가 없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태릉사격장을 사용하는 선수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태릉사격장 철거를 체육계와 서울시 등에 통보해왔다면서 일방적인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막대한 이전비용에 대한 재원마련 문제, 일 년도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 훈련 시간 부족 등의 문제로 사격계의 반발은 격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승용 문화재청 문화유산국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근이 압력을 행사해 태릉 봉분에서 직선거리로 100m 떨어진 곳에 사격장이 들어설 수 있었다"면서 "군사정권에서나 가능했지 요즘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사격인들에게는 현재 문화재청의 조치가 박정희 시절의 조치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엄 국장이 인터뷰에서 밝히듯이 1971년 당시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끝나면 사격장을 타지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사격계로서도 대체부지를 찾는 게 상당히 힘들다는 사정을 감안했어야 하지 않을까. 갈등의 근원에는 혐의의 부족도 뿌리 깊다.
복원과 철거 뿐인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문화재청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 유네스코 심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미 조선왕릉 복원계획에 사격장 철거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대체부지 미비로 인한 사격계의 격렬한 반대만으로도 유네스코의 실지답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질지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태릉사격장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인식하고, 조선왕릉과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는가.
근자에 들어 문화재청은 일제시기 적산건물 등을 근대문화 유산으로 등재하는 등 근대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이 20여 년 전, 조선총독부 철거논의 당시에도 있었다면 조선총독부를 그리 쉽게 허물지는 못했을 것이다.(당시 김영삼 정부가 이를 정치적 이벤트로 이용했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일제시기 건물의 보전주장을 경박하게 뉴라이트로 연결하는 촌스러운 역사적 잣대 또한 지양해야 한다.)
만약 100년이 흐른 후에 태릉사격장에 대한 역사적 복원 논의가 제기될지 어떻게 장담하지 않을 수 있는가.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작금에 발등에 떨어진 불이 무엇인지 주객이 전도된 태도다.
태릉 사격장도 엄연한 역사적 가치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면 문화재청과 사격계는 좀 더 유연한 태도로 대화의 창구를 열고, 상호 간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