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 아키라 작품 <명가의 술> 1권에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술은 기쁠 때 마시는 거다. 괴로울 때, 슬플 때 마셔선 안 된다. 홧김에 마시는 술은 술을 만든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
올해 큰 성공을 거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비롯해 전통주를 생산하는 가문 이야기인 <명가의 술>, 칵테일을 소재로 한 <라임 리미트>를 보면 술은 단순히 마시는 걸 떠나 즐기는 문화라는 걸 보여준다.
태평양전쟁 뒤 일본 소주산업은 효율성과 이윤추구를 위해 대량생산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본 농촌과 농업 현실이 녹아있는 <명가의 술>(원제 '나쓰코의 술')은 1부 12권과 2부 4권까지 국내에 소개돼 있는데 2부에선 1930년대 일본을 다루고 있다.
도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나쓰코는 오빠가 죽자, 양조장을 떠맡아 전통 쌀을 재배해 일본 최고 명주를 만드는데 그것은 오빠 꿈이기도 했다.
작가 오제 아키라는 술 원료이기도 한 쌀은 기존 산업과는 다른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다루면 안 된다며, 전통 쌀을 복원해 일본 최고 명주를 만든다는 게 작품 줄거리가 된 까닭이라고 했다.
프랑스어로는 뱅(vin), 영어로는 와인(wine)이라 하는 와인 한 병은 12잔까지 나온다.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와인은 2900만 병, 8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와인 소비가 많이 늘었다.
와인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정보로 와인 애호가들은 물론 대기업 간부, 30~40대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일본 만화 독자 연령층을 확대했다는 소리를 듣는 <신의 물방울>. 이 작품 1권은 원작 일본보다 국내에서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와인 평론가로 나오는 토미네 잇세는 욘사마로 알려진 배용준이 모델이라고 한다. <사이코닥터 카이 쿄오스케>를 만든 타다시 아기와 오키모토 슈 콤비가 이번에는 와인을 이야기한다. 글 작가인 타다시 아기는 누나 기바야시 유코와 기바야시 신 남매가 필명으로 같이 쓰는 이름이다. 그림 작가도 그렇고 글 작가도 나이가 40대다. 술을 제대로 아는 나이라고 할까.
일본 최고 와인 평론가 간자키 유타카는 친아들 간자키 시즈쿠와 양아들 도미네 잇세에게 '12사도'로 이름을 붙인 12종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일컫는 와인을 찾아내는 이에게 모든 재산과 엄청난 와인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와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이 있는 칸자키 시즈쿠와 일본 최고 와인 평론가인 토미네 잇세가 불꽃 튀는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 만화에 나오는 와인이 금세 동나고 값도 오를 만큼 한국과 일본 와인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꽤 크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보통 술집에서도 편하게 와인을 시켜 먹고 와인 값도 한국보다 두세 배 더 싸다고 한다.
허영만 화백도 작품 <식객>에서 '불고기 그리고 와인'이란 내용으로 와인을 다뤘다. 그리고 막걸리, 청주, 동동주와 이름이 생소한 설락주를 거쳐 최근엔 소주를 이야기했다.
다른 나라 문화를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술과 음주 문화를 알면 된다고 한다. 일본은 청주를 따뜻하게 데워먹지만 한국에서는 차갑게 먹는 게 좋다고 하고, 한국은 잔이 다 비웠을 때만 술을 따르는데 반해 일본은 술이 들어있는 잔에 술을 더 따르는(첨잔) 게 예의다.
일본 주요 식당에 가보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돼 있을 만큼 한국 막걸리가 꽤 인기라고 한다. 좋든 싫든 사람 사귀는 곳에는 술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사라져가는 전통술과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잘 살려낸다면 그 술은 단순히 마시는 걸 떠나 기억 속에 자리 잡는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전통술 복원을 만화 작품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