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교정 안에서는 외국인 학생과 한국인 학생이 영어로 대화하며 어울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 시간에는 한국인 학생들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막걸리 집에서 파전에 동동주 한잔하며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는 외국인 학생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고려대학교에는 이번 학기에만 230명의 외국인 교환학생이 들어왔다.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대학교에는 교환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단체가 있다. 성균관대학교에 하이클럽(Hi-Club), 연세대학교에 멘토스클럽(Mentos Club)이 있다면 고려대학교에는 '쿠바'(KUBA)가 있다. '쿠바'는
Korea
University
Buddy
Assistants의 약자로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다.
현재 외국인 교환학생의 80% 이상이 '쿠바'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1:2정도로 한국인 학생이 한 명 혹은 두 명의 외국인과 친구(buddy)가 되어 한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책임지고 도와준다. 2004년 가을학기 처음 설립된 '쿠바'는 작은 단체에서 시작했지만 늘어나는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관심으로 현재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큰 단체가 되었다.
외국인 학생, 추석날 감동의 눈물 흘리기도...'쿠바'는 한 학기 단위로 한국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공식행사를 진행한다. 한국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첫 대면을 하는 오리엔테이션과 웰커밍파티(welcoming party)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이 시작된다. 학기 중에는 1박 2일 동안 엠티를 가고, 학교축제인 입실렌티와 고연전에 함께 참여한다.
'쿠바'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외국인교환학생 축제인 ISF(International Student Festival)다. 1부에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알리고 싶은 교환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전통음식을 만들어 한국학생들에게 대접한다. 2부에는 장기자랑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 참여하는 탤런트쇼(talent show)가 진행된다. 이번 학기에는 중국 전통 부채춤, 일본 전통 춤 소란부시, 골프채와 골프공을 이용한 프랑스 친구들의 공연이 눈길을 끌었다.
김대희 학생(21·영어영문학과)은 "한국학생들의 일렉기타, 트럼펫,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외국 교환학생들이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주 금요일 굿바이파티(good-bye party)를 마지막으로 '쿠바'의 공식일정은 끝난다.
하지만 '쿠바'의 진정한 매력은 한국 학생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쿠바'는 한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1:1의 관계로 묶어주는 버디매칭(buddy matching)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을 버디로 맺어줌으로써 외국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외국학생으로부터 외국어를 배운다.
처음에는 학생증 발급, 수강신청, 방 구하기 등 행정적인 문제를 도와주기 위해 만나다가 곧 친해지면 수시로 만나 우정을 쌓아간다. 김대희 학생은 "추석에 갈 곳 없는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는 한국 학생들도 많았다"며 "고향집에 내려가 한국 친구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은 한 외국인 학생이 그 자리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마음에 맞는 한국학생들과 외국학생들이 대천, 속초, 남이섬, 롯데월드 등으로 놀러가기도 한다.
10만 원이면 해외여행도 오~케이!
'쿠바'활동을 하면서 한국 학생들은 다양한 경험, 외국어 실력, 외국인 학생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이상의 것을 얻어간다. 임준규 학생(22·식품자원경제학과)은 "여름방학 때 홍콩에 다녀왔는데 '쿠바'에서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학생 덕분에 10만 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며 "'쿠바'활동을 하니 외국에 나갈 기회도 많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바' 학생들은 여행을 가거나 교환학생을 갈 때 자신과 친한 외국인 학생들이 사는 나라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쿠바'에서 소중한 추억과 인연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많다. 김대희 학생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올 일 없을 거라 했던 대만 학생 캐니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 다시 한국에 온다"며 "캐니가 한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내가 그 친구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해진(19) 학생은 "좋은 인연 만들어놓고 다 갈라놓는 '쿠바'에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어적인 말로 외국 학생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외국 학생들에게도 '쿠바'는 한국 생활의 소중한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호주에서 온 스튜어트(23)는 "'쿠바'를 신청하지 않고 있던 나에게 한국 친구가 먼저 버디가 되겠다고 제안했고, 덕분에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던 내가 편하게 한국생활을 했다"며 "'쿠바'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중국 학생 루징(22)은 한국생활에 재미를 느껴 한 학기동안 한국에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루징처럼 '쿠바'와 함께하는 한국생활이 재밌어 귀국시기를 늦춘 외국인 학생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영어 못하고, 돈 없으면 어울리지 못하나요?'쿠바'는 이번 학기 100명의 회원을 뽑는 데 500명이 지원해 5: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쿠바' 회원이 되고 싶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지원하기를 꺼려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회학과 한 학생은 "'쿠바'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어 지원하지 못했다"며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외국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바' 운영진측은 외국인 교환학생들에게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접수되어 어쩔 수 없이 영어실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영어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들과,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들은 영어로만 진행되는 행사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한편 비싼 참가비용 때문에 '쿠바'와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한 외국학생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비싼 회비 때문에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에 대해 운영진측은 "학교 측 재정적 지원이 미미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학교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단체인 만큼 재정적 지원을 받아 좀 더 많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단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