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타다파니(Tadapani 2630m)에서 시누와(Sinuwa 2360)까지


경로 / 타다파니(Tadapani 2630)-출레(Chuile)-킴롱(Kimrong 1800)-타우룽(Taulung 2180)-촘롱(Chhomrong 2170)-시누와(Sinuwa 2360)

어젯밤은 달게 잤다. 상당히 피곤했나 보다. 여기는 타다파니(Tadapani 2630m)의 히말라야 투어리스트 게스트 하우스 롯지. 오전 방문을 열고 나와 롯지 마당에 내려서니 공기가 깨끗하다. 어젯밤 저 멀리 보이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지금은 바로 눈앞에서 하얗다.

 '촘롱 가는 길'. 트레킹 도중에 이런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따라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가이드가 없어도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촘롱 가는 길'. 트레킹 도중에 이런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따라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가이드가 없어도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 김동욱

처음 계획했던 일정대로라면 트레킹 4일째 날인 오늘(10월 23일)은 촘롱(Chomrong 2170m)까지 걷는 거다. 예상 운행시간은 대략 6~7시간.

“그런데……, 프리티가 어디 갔지……?”

오전 7시 반. 티베트 빵과 밀크티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다시 배낭을 꾸린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낭을 프리티에게 건네고, 나도 배낭식 카메라 가방을 맨다. 오전 8시 타다파니의 롯지를 나선다. 출발은 수월하다.

밀림 속으로 난 내리막길이다.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맑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롯지를 떠나 한 30분 걸었을 때였다. 출레 가는 길의 원시림 속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먼이 나에게 묻는다.

 산사태로 산의 속살이 깊이 패였다. 먼바들의 말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이런 산사태로 한 해에 100명 이상의 산골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다.
산사태로 산의 속살이 깊이 패였다. 먼바들의 말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이런 산사태로 한 해에 100명 이상의 산골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다. ⓒ 김동욱

“프리티가 안 보이는데……. 어디 갔지?”
‘하~, 이놈 웃기는 놈이네.’

어이가 없다. 원래 포터는 트레커와 보조를 맞출 필요는 없다. 포터는 매일 정해진 곳까지 트레커의 짐을 날라주기만 하면 된다. 나처럼 가이드와 포터를 모두 고용하는 트레커는 가이드를 통해 포터를 통제한다. 따라서 포터에게 우리의 동선과 일정을 알려주는 건 가이드의 몫이다. 그러므로 지금 가이드 ‘먼’이 나에게 포터 ‘프리티’의 행방을 묻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인 셈이다. 나는 약간 화가 났지만 일단 꾹 참고 조용히 한 마디 한다.

 집 앞 마당에 엎드려 공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어린이. 옆의 어린이는 언니인 듯. 나는 이 친구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볼펜을 한자루 주었다.
집 앞 마당에 엎드려 공책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어린이. 옆의 어린이는 언니인 듯. 나는 이 친구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볼펜을 한자루 주었다. ⓒ 김동욱

“먼, 프리티가 지금 어디 있는지 체크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야. 그건 니가 챙겨야 할 일이야.”

정색을 한 나의 이 말에 먼의 얼굴이 살짝 긴장한다.

“아, 맞아. 미안해. 프리티가 우리보다 먼저 출발하긴 했지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그러면서 먼은 밀림 속 저쪽에다 큰소리로 프리티를 부른다.

“프리티~. 프리티~.”

밀림 속으로 들어간 먼의 외침은 메아리도 없이 묻혀버린다. 이쯤 되자 나도 걱정이 된다. ‘프리티가 길을 잃은 건가? 그럼 내 짐들은……?’

 타다파니에서 출레 가는 밀림 길. 이 길은 일반 트레커들이 잘 모르는 네팔 현지인들의 뉴웨이다. 저 앞에 가이드 먼바들이 걷고 있다.
타다파니에서 출레 가는 밀림 길. 이 길은 일반 트레커들이 잘 모르는 네팔 현지인들의 뉴웨이다. 저 앞에 가이드 먼바들이 걷고 있다. ⓒ 김동욱

“먼, 프리티가 촘롱 가는 길을 알고는 있는 거야? 배낭 속 물건 중 다른 건 몰라도 침낭과 메트리스는 있어야 돼.”
“프리티도 길을 잘 알고 있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생각에는 프리티가 촘롱 가는 새길(New Way)로 간 것 같아. 그렇다면 우리도 그 길로 가야겠다.”
“새길? 촘롱 가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거야?”
“응. 그 길이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보다 좀 더 빨리 촘롱까지 갈 수 있는 길이야. 우리도 그리로 가자.”


정글에도 뉴웨이(New Way)가 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방법이 없다. 가이드인 먼을 따르는 수밖에……. 그런데 한참 내려온 길을 다시 걸어올라 간다. 좀 전에 나섰던 타다파니의 롯지 근처까지 올라가는 거다. 나는 속으로 ‘이놈이 날 욕 먹이려는 건가?’ 의심도 들었다. 먼은 타다파니 롯지 바로 아래까지 가서 오른쪽을 가리킨다.

“이 길이 촘롱 가는 새 길이야.”

나는 먼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눈을 돌렸다. 그가 가리킨 길은 토끼 길이나 노루 길 같은 오솔길이다.

“이게 뉴웨이(New Way)라고?”
“응, 이게 최근에 난 길이야. 이 길은 일반 트레커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네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길이야.”


흐흐흐. ‘뉴웨이’라고 말한 먼의 말에 신작로를 떠올린 내가 바보였다. 실제로 나는 ‘뉴웨이’라기에 밀림 속으로 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반하게 닦인 산판도로 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먼이 가리키는 뉴웨이는 좀 전에 우리가 신나게 내려갔던 밀림 속 오솔길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내가 보기엔 여기 정글에서는 ‘뉴’와 ‘올드’의 구분이 없다.

 촘롱 들어가기 전 잠깐 들러 차 한 잔 마신 롯지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녀의 머리를 참빗을 빗어주고 있다. 아마 이를 잡고 있는 듯. 이 손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얼떨결에 "나마스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이 소녀는 아주 수줍어 하면서도 환한 얼굴로 나에게 "나마스떼" 화답 해 주었다.
촘롱 들어가기 전 잠깐 들러 차 한 잔 마신 롯지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녀의 머리를 참빗을 빗어주고 있다. 아마 이를 잡고 있는 듯. 이 손녀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얼떨결에 "나마스떼" 인사를 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이 소녀는 아주 수줍어 하면서도 환한 얼굴로 나에게 "나마스떼" 화답 해 주었다. ⓒ 김동욱

그렇게 3시간 정도 걸었을까. 이제부터는 오르막이다. 그동안 선선한 밀림 속 오솔길을 따라 설렁설렁 잘 걸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보충해 둔 체력을 써야 한다. 끝없이 이어진 급경사 돌계단을 올라간다.

오르면서 두어 번 쉬었고, 수통의 물이 바닥났다. 입이 바싹 말라간다. 단내가 난다. 내 앞뒤로 몇 걸음 거리를 두고 오르는 외국 트레커의 물통에 저절로 눈이 간다. 그러나 차마 ‘저기요 제 목이 타고 있어요. 물 한 모금만……’이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도 내 자존심은 빳빳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오를 뿐이다.

촘롱의 롯지 방은 이미 다 찼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걷는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드디어 촘롱에 도착했다. 이때가 오후 12시 30분. 예상했던 대로 프리티가 먼저 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프리티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게다가 롯지 입구에 커다랗게 ‘한국인,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한글을 보자 막혔던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촘롱의 인터네셔널 게스트 하우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트레킹을 목적으로 네팔을 방문하는지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촘롱의 인터네셔널 게스트 하우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트레킹을 목적으로 네팔을 방문하는지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다. ⓒ 김동욱


 촘롱의 인터네셔널 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힛카지구룽(Hit Kaji Gurung) 씨와 그의 네살짜리 아들. 힛카지구룽(Hit Kaji Gurung) 씨는 1991년부터 6년 간 우리나라 김포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국말을 무척 잘 한다.
촘롱의 인터네셔널 게스트 하우스 주인인 힛카지구룽(Hit Kaji Gurung) 씨와 그의 네살짜리 아들. 힛카지구룽(Hit Kaji Gurung) 씨는 1991년부터 6년 간 우리나라 김포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국말을 무척 잘 한다. ⓒ 김동욱

알고 보니 여기 촘롱의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 롯지의 주인인 힛카지구룽(Hit Kaji Gurung)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그는 한국말을 썩 잘한다. 나는 그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이 롯지를 지은 줄 알았다. 그러나 힛카지구룽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7년 동안 번 돈이 적진 않지만 여기서 롯지를 지을 정도의 큰 돈은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일했어요. 여기 롯지는 몇 년 전까지 제 작은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건데, 지금은 제가 맡아서 운영합니다.”

메뉴판에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신라면 같은 한국음식도 들어 있다. 게다라 결정적인 건 세탁기. 그랬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탁기가 여기 떡 하니 놓여 있는 거다.

“먼, 나 여기 마음에 든다. 체크인 하자.”
“오케이~.”


아~, 그런데……. 방이 없단다. 이미 다 찼단다. 할 수 없다. 나는 점심으로 여기서 네팔 라면 한 그릇을 먹고 필터링한 물을 물통에 가득 채웠다. 물론 인터내셔널 게스트하우스 롯지 말고도 촘롱에는 다른 롯지가 더 있었지만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아직 시간이 이르니까 그냥 시누와까지 가자.”

 시누와 롯지의 부엌. 내가 주문한 모모(네팔식 만두)가 찜솥에서 익어가고 있다. 트레킹 하기 전 나는 이곳 네팔인들은 트레커들의 부엌촬영을 안 반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네팔인들은 모두 선선히 촬영에 응해주었다.
시누와 롯지의 부엌. 내가 주문한 모모(네팔식 만두)가 찜솥에서 익어가고 있다. 트레킹 하기 전 나는 이곳 네팔인들은 트레커들의 부엌촬영을 안 반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네팔인들은 모두 선선히 촬영에 응해주었다. ⓒ 김동욱

계획보다 하루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처음 계획보다 일정이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다. 계곡에 걸쳐져 있는 작은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다시 가파른 돌계단 길이 이어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내일 눈 뜨자마자 이 길을 걷느니 차라리 좀 힘들어도 지금 시누와까지 올라가는 게 더 낫다고.

속옷까지 흠뻑 젖은 채로 도착한 시누와의 롯지에는 다행히 핫샤워가 가능했다(전편에서 언급했지만 여기서 핫샤워란 그거 차갑지 않은 물이 샤워기를 통해 졸졸 나오는 걸 말한다). 샤워를 끝낸 후 롯지 마당에 앉아 뜨거운 생강차를 한 잔 놓고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다 읽었다. 이 때 시각이 오후 4시쯤. 점심식사 시간까지 포함해서 8시간을 걸었다.

처음 생각했던 트레킹 일정보다 진행이 빠른 편이다. 지도를 펴 놓고 먼과 일정을 상의해 본다.

“먼, 원래는 내일 히말라야(Himalaya 2920)까지만 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지금 속도라면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 직전의 데우랄리(Deurali 3230)까지 가도 될 것 같은데, 니 생각은 어때?”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좋을 대로 해.”


먼의 대답이 선선하다.

 시누와의 롯지 마당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다 읽어버렸다.
시누와의 롯지 마당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성석제 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다 읽어버렸다. ⓒ 김동욱

“그래. 그럼, 내일 데우랄리까지 가고, 모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310)까지 바로 오르자. 그리고 상황을 봐서 고소증이 없으면 거기서 하룻밤 자고 내려가는 걸로 하자.”
“천천히 오르면 고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동욱, 너의 페이스는 지금 상당히 좋아. 빠르지 않아. 그 일정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서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ABC 오르는 날짜가 하루 당겨지게 되었다. 내일은 데우랄리까지 간다.<7편에서 계속>

*** 여행 메모 ***
1) 네팔의 물은 석회질이 섞여 있어 그냥 마시면 탈이 날 수 있다. 운행 중간에 만나는 롯지 등에서 미네랄워터(생수)를 사서 마신다. 그러나 촘롱부터는 병에 담긴 미네랄워터(생수)를 구할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끓인 후 여과기에 한 번 걸러낸(필터링) 물을 사 마셔야 한다.

2) 고도가 높아질수록 숙식비가 조금씩 비싸진다. 그러나 비싸봐야 하루 1000~1500루피(16~24달러)면 충분하다.

3) 가이드와 포터를 모두 고용할 때는 가이드를 통해 포터를 구하게 하고, 역시 가이드를 통해 포터를 통제하는 게 좋다. 가이드와 포터를 모두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이드는 트레커들에게 일종의 보험이다. 가이드는 걸으면서 말동무도 되고, 무엇보다 위험상황을 만나거나 위급한 일이 생길 때 가이드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네팔#안나푸르나#트레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