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민속자료 제140호 충북 영동 규당고택은 영동읍내 계산리 금동마을에 있다. 집을 지은 송복헌이란 분의 호가 '규당'이기 때문에 규당 고택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금동 마을은 영동읍내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규당고택은 야트막한 산 아래 몇 십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 초입에 있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올 만큼 큰 집이다. 길게 늘어선 맞담이 꽤 길다. 담이 이렇게 길다면 집은 얼마나 큰 것일까. 담이 그리 높지 않아 안이 빤히 넘겨다 보인다. 짐작보다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이다.
그런데 도대체 대문은 어디 있을까. 고샅을 한 바퀴 빙 돌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찾는다. 관리인의 집으로 보이는 허름한 집 한 채가 입구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한 규모의 큰 집에 솟을대문이 없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없는 게 아니라 없어졌을 것이다.
푸성귀라도 심는지 텃밭 같이 돼버렸지만, 마당이 아주 넓다. 예전엔 많은 건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6·25때 화재로 사라졌다는 기록을 본 적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문도 그때 함께 사라진 걸까.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안채와 광채가 이마를 맞댄 'ㅁ'자 형 건물이 모습을 나타낸다. 사람이 살지 않는지 얼핏 보아도 쇠락한 모습이 역력하다.
방과 방 사이를 잇는 동선이 편리한 집 구조
안채는 사랑 공간을 덧붙인 'ㄱ'자 형이다. 가구 구조는 가로세로 모두 2개의 고주를 세운 후 5량을 얹은 납도리집이다. 기둥 높이과 마루높이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네모난 화강암 주초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지붕은 내림마루 끝을 살짝 들어올렸다.
공간 배치를 보면 왼쪽부터 부엌·안방·대청·건넌방 순으로 일직선으로 놓고 나서 꺾어서 작은방·마루방·아래사랑방·윗사랑방 순으로 배치했다. 안방부터 작은 방까지는 앞뒤 모두 툇마루로 연결하였다.
경기도 아래 지역의 일반적인 건축 방식에 따라사랑채를 따로 두지 않은 것이다. 대신 안채 머리에다 사랑채를 대신할 공간을 덧붙여 지었다. 사랑 공간 역시 툇마루가 있는 마루방을 통해 안채와 이어진다. 방 문마다 분합문을 달아 들어열개식으로 개방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안채 뒤로 돌아가서 살피면 사랑 대청의 안쪽 툇마루는 토방으로 해서 굴뚝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뒤쪽에도 툇마루를 길게 놓아 안방에서 건넌방까지 동선을 연결하고 있다.
안채 뒤쪽에 있는 광채는 마치 뒤뜰을 둘러싸듯이 지은 'ㄴ'자 형이다. 광채는 11칸 크기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광채치고는 매우 큰 건물이다. 오른쪽에 부엌과 2칸 구들방이 있으며 왼쪽만 광채로 쓰였던 게 아닌가 싶다. 고전적인 맛까지 풍기는 멋진 건물이다. 요샛말로 하면 광채로선 명품이라 할 만하다.
광채 중간에는 시래기가 걸려 있다. 맨 마지막 칸에는 쓰임새를 짐작할 수 없는 마른 풀도 잔뜩 쌓아 두고 있다. 처음 지었을 적엔 주로 곡식을 저장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담뱃잎을 건조하기에 알맞은 구조 같다.
공간을 채우는 삶이 없다
규당 고택에서 인상적인 것은 안채 건넌방 동쪽에 있는 뒷간채이다. 초가 사모지붕으로 지은 단칸 건물이다. 우리네 옛날 뒷간의 출입문이 그랬듯이 판자를 대서 짠 판장문이다.
뒷간채와 광채 사이엔 오브제처럼 장독대가 놓여 있다. 쓰지 않는 것들이다. 체(體)는 남아 있되 쓸모를 잃은 사물이란 얼마나 안쓰러운가.
많은 아름다움을 지닌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이 집 분위기는 스산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쇠락하고 풍화해가는 속도가 빠르다. 닦고 문지르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도 그렇다. 자동으로 습기와 온기를 조절하는 기능을 행사하는 사람의 몸이 없어서 더더욱 그러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 집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집 기와에서 '을유삼월(乙酉三月:1885년)'과 '병술삼월(丙戌三月:1886년)'이란 두 종류 명문이 있었다고 하니 2년간에 걸쳐 지은 것일까.
1984년 문화재 지정 당시의 명칭은 영동 송재휘가옥이었으나 올해 초 가옥을 지은 송복헌의 호 ‘규당’을 따라 ‘영동 규당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명칭은 예전보다 고급스러워졌지만, 거기에 걸맞은 관리는 하지 않고 있으니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 아닐 수 없다.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젠 아무렇게나 버려진 전통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익숙한 건 위험한 것이다. 통증없는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계승할 만한 가치를 발견했으면 '어떻게 오래 보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국가지정문화재니 지방문화재니 관리 주체를 따지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이룬 건축적 성과와 업적을 방치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규당 고택을 돌아서 나오는 내내 마음이 쓸쓸하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의 인품까지 포함한 것이 집 구경이거늘, 오늘 내 발걸음은 얼마나 보람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