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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폴 사르트르에게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는 루 살로메가 있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에게는 니논 헤세가 있었다. 이들 여성들은 위대한 작가들이 사랑했던 연인이자 또한 그들의 창작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지적 동반자였다.

릴케 말고도 니체와 프로이트의 연인이기도 했던 루 살로메의 경우, “루와 사귀는 남자는 아홉 달 안에 불후의 명저를 쓰게 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으며, 그녀 자신도 20편이 넘는 작품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평론가였다. 또한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 못지 않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 소설가이자 사상가로서, 20세기 최고의 여성철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 두 여성은 세계문학사의 일부를 이루는 당당한 작가로 대접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니논 헤세는 어떤가? 아마도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듣는 이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많이 읽은 나 역시도 이번에 이 책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를 읽기 전까지는 그녀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작가라기보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룬 학자에 더 가까워서,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생소하다.

그런데도 니논 헤세를 시몬느 드 보부아르나 루 살로메와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은 그녀가 헤르만 헤세에게 보낸 아름다운 편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편지들에서는 단번에 쓴 사사로운 편지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이 엿보인다. 그래서 니논 헤세가 헤르만 헤세에게 보낸 것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든 편지들 가운데 약 3분의 1을 골라 시간 순서대로 모아 놓은 서간집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는 한 편의 문학 작품으로 읽힌다.

2.

책 표지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책 표지<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 웅진닷컴
오직 헤르만 헤세만을 독자로 해서 쓰여진 이 2인칭 문학 작품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거 연애 편지 아니야?’ 이렇게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은 ‘연애’ 이상이다.

이 책을 엮은이가 서문에 쓴 것처럼, 니논의 편지들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처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이후 그녀 삶의 초점이 되어버린 작가 헤르만 헤세에 대한 흠모와 사랑과 헌신의 기록이다.

여기에 발표된 편지들은 1910년부터 1961년까지 쓴 편지들로서, 니논 헤세의 인생 여로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마치 일기와도 같은 것들이다. (…중략…) 이 ‘일기 형식의 편지’는 열광적이던 소녀로부터 헤르만 헤세에게 헌신하는 애인이자 정신적인 동반자를 거쳐 작가의 만년에 그를 어머니처럼 돌봐주는 보호자로 변신, 발전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쪽)

열네 살 어린 소녀 니논은 헤르만 헤세의 초기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읽고 나서, 그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에서 니논은, 시인의 소명은 인간적 삶의 자유와 구속 사이에서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에 그 소설의 결말은 믿기 힘들다고 반론을 폈다. 어린 소녀가 쓴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날카로운 이 비평을 대하고 이미 성공한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헤르만 헤세는 짧은 답장을 보냈고 이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 편지 교환이 시작된 것이다.

대학교 입학, 결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아버지의 죽음 등 니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일들이 계속 이어졌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시절에도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은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이어졌다. 전보다 많이 친밀해지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 열광적인 팬과 거기에 답하는 작가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26년 3월에 서로 직접 만나고부터 극적으로 변화한다.

매번 ‘당신’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책상 앞에 앉아 당신을 위해서 글자 하나하나를 그려 가면서 제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들을 그려 내려고 헛되이 수고를 하고 있노라면, 저와 당신 사이에는 너무나도 깊은 유대감이 생긴답니다. 저는 당신 가까이에 있게 되고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며, 할 수 있는 만큼 저를 열어 보이지요. 저는 매번 저를 당신에게 선물로 드리고 있는 겁니다. (157쪽, 1926년 5월 13일자 편지에서)

그녀는 이처럼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담은 편지를 헤르만 헤세에게 거의 매일 써 보냈고 또한 그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당시 소설 <황야의 이리>를 집필하고 있던 헤르만 헤세는 삶에 대한 혐오와 자아에 대한 회의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물로서 다가온 니논을 사랑하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스런 삶 속으로 그녀를 끌어들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이러한 양가적인 마음을 눈치 챈 그녀는 1927년 4월, 서로 떨어져서 하는 동거 생활을 시도하자고 제안했고, 그는 마지 못해 이에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그들의 동거 생활은 매일 저녁 함께 책을 읽는 몇 시간 말고는 서로 떨어져서 생활하는 기묘한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집필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옆에서 쇠약해진 그를 돌보기 위한 니논의 배려에서 나온 이러한 동거 생활은 자칫 니논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헤르만 헤세도 그 점을 의식해서 늘 그녀에게 미안해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충만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그것은 이따금 약간은 ‘희생’인 것처럼(제삼자에게는) 보일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나약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인함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충만한 사랑에서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제가 당신에게 ‘고마워요.’라고 말하면, 그것 역시 사랑이 넘쳐나 나오는 말이지 감사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랍니다. (247쪽, 1927년 11월 6일 편지에서)

‘제대로 함께 산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할 때 거기에 있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특히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지 않을 때 거기에 없어 주는 데에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니논은,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작가 헤르만 헤세가 글을 쓰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던 고독과 자유를 존중해 준 것이다. 니논 자신도 혼자 있는 시간에는 소소한 집안 일을 처리할 뿐만 아니라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던 미술사와 고고학을 공부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여행을 다니기도 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나름대로 유용하게 썼다.

1931년 11월,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된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유와 구속 사이 경계가 희미해지는 중간 영역에서 서로 만나 동반자로 지내는 관계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자칫하면 자신들도 모르게 틈이 벌어질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든 한 집에서 살든 언제나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수단, 즉 편지가 있었기에 그런 위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이 ‘가정 편지’라고 불렀던 소통의 방식이다. 이것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곁방의 서로 약속한 장소에다가 남겨두곤 했던 연락 쪽지인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쪽지가 수백 장이 넘는다고 한다. 서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내용, 실제적인 생활과 관련된 내용들, 먹고 싶은 것, 함께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서로 상의하는 내용 등 소소한 일상에 대한 서로의 마음 나눔이 그 어떤 편지들보다도 소박하고 솔직하며 또한 정감 있게 드러나 있는 이들의 ‘가정 편지’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면서도 몇 마디 말 나누는 것이 고작인 오늘날 부부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작품 활동으로 자극을 받기 쉬운 예민함 때문에 서로 떨어져서 지내는 일상과 그것과는 무관하게 두 사람이 항상 결합되어 있다고 느끼는 공동체험이 동시에 존재했던 이들의 특별한 결혼 생활은 이처럼 수시로 주고받은 편지들에 의해서 잘 유지될 수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편지들의 절반 가량이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하고 난 이후에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은 ‘연애’를 넘어서서도 존재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니논이 미술사와 고고학 연구를 위해서 일년에 한 차례 정도씩 홀로 떠나곤 했던 여행지에서 쓴 많은 편지들 중에서 골라 본 다음 글은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그녀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시칠리아에서 겪었던 불운한 일들을 당신한테 지금 막 설명드리려다 보니까 기분 좋고 멋졌던 일들만 떠오르는군요. 아, 하지만 왜 그런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편지를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니까요. 만약 제가 편지를 쓰지 않고 그냥 ‘체험’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계속 숨을 들이쉬기만 하고 한 번도 내쉬지 않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얀 백지 앞에 앉아 거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면 모든 것이 얼마나 유려하게 흘러가며 안정되는지 모릅니다! (452-453쪽, 1934년 10월 20일자 편지에서)

이처럼 편지를 쓴다는 것, 특히 그녀가 사랑하는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1962년 8월, 85세의 헤르만 헤세가 뇌출혈로 세상을 뜬 것은 그녀에게는 자신의 숨이 끊기는 듯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니논은 마지막 일기에 “그와 나는 하나였다. 그의 죽음은 나를 갈기갈기 찢고 말았다. 나는 남아있는 절반이었다. 피를 흘리는 절반의 존재였다”라는 글을 남기고 60여 년을 한결같이 사랑한 연인의 뒤를 따랐다.

3.

따라서 이 책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는 위대한 작가 헤르만 헤세의 나머지 절반이 쓴 영혼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는 니논이 헤르만 헤세에게 평생을 두고 써 보낸 천 통이 넘는 편지들 중에서 고른 300여 통의 편지들이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처럼 그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나 루 살로메가 성(姓)을 바꾸지 않고 온전히 그 자신으로 살면서 몇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면, 니논은 평생 헤르만 헤세 곁을 지키면서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날아오르기 위해서 자유라는 날개가 필요했지만 동시에 안전한 둥지도 있어야 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의 곁에서 평생을 두고 흠모하고 사랑하고 헌신했던 한 여인의 진실한 육성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니논의 이러한 위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헤르만 헤세는 오늘날 위대한 작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특히 만년의 대작인 <지와 사랑>과 <유리알 유희>와 같은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니논의 편지들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한 작품들은, 헤르만 헤세에게 있어서도 절반을 차지했던 존재인 니논과 더불어 창작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는 헤르만 헤세의 삶과 작품들 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그 절반의 발견으로 우리를 이끈다.

덧붙이는 글 |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ㅇ 니논 헤세 (Ninon Hesse) 지음
ㅇ 기젤라 클라이네 (Gisela Kleine) 엮음
ㅇ 두행숙 옮김
ㅇ 웅진닷컴 펴냄
ㅇ 2003년 11월 24일 초판 1쇄
ㅇ 값 20,000원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니논 헤세 지음, 기젤라 클리이네 엮음, 두행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03)


#니논 헤세#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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