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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무대 둘레 노래잔치와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지는 골목길 한복판 중심 무대 앞에서. 마임을 하는 분(가운데)은 행사 내내 솜사탕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책방골목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면서 분위기를 띄워 주었습니다.
중심 무대 둘레노래잔치와 여러 가지 행사가 이루어지는 골목길 한복판 중심 무대 앞에서. 마임을 하는 분(가운데)은 행사 내내 솜사탕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책방골목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면서 분위기를 띄워 주었습니다. ⓒ 최종규


 〈1〉 부산 가는 기차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를 둘러보려고 지난 9월 30일 아침에 기차를 탑니다. 기차삯이 만만치 않기에 케이티엑스 아닌 열차를 알아보는데, 새마을호는 하루에 두 번뿐이고, 새마을호 다니는 시간에 맞추자니, 부산에는 저녁 늦게나 떨어집니다. 기차 시간표에는 거의 다 케이티엑스일 뿐, 새마을호는 드물게 한 번 끼었고, 드문드문 무궁화호가 낍니다.

 

케이티엑스가 서는 역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역에는 서지 않습니다. 새마을호로 가자면 볼일 보는 때를 맞추기 힘드니, 울며 겨자 먹기로 케이티엑스를 타야 합니다. 싫으면 고속버스를 타야 합니다. 작은 시골역에 서는 무궁화호는 앉을 자리로는 모자라 서는 자리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콩나물시루 기차가 되어 버립니다.

 

어찌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새 전동차가 나온다고 하여, 지하철 찻삯을 올리지 않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택시 기종으로 쓰는 자동차 성능이 나아진다고 하여, 택시 찻삯이 껑충 뛰지 않습니다. 물건값에 맞추어 올릴 뿐입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피튀기면서 ‘더 비싼 교통 편만 남기고 값싼 교통 편은 사라지’겠구나 싶습니다.

 

고속버스도 직행이 생기고 무정차가 생기면서, 작은 시골역을 두루 거치는 ‘돌아가는 버스’는 줄어듭니다. 돌아가는 버스가 줄어드니, 직행과 무정차 찻삯은 꾸준히 오릅니다. 앞으로는 직행조차 사라지고 무정차만 남지 않을까요? 기차 편에서 새마을호와 무궁화가 하나둘 밀려나듯이?

 

헌책방과 함께하는 헌책방 곁에는 분식집이 하나 있고, 차를 파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사진사 양반, 헌책방만 찍지 말고, 우리도 좀 찍어." 하고도 말씀하셔서, 한 장 담아 보았습니다.
헌책방과 함께하는헌책방 곁에는 분식집이 하나 있고, 차를 파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사진사 양반, 헌책방만 찍지 말고, 우리도 좀 찍어." 하고도 말씀하셔서, 한 장 담아 보았습니다. ⓒ 최종규


 〈2〉 10전짜리 종이돈


느릿느릿 달리는 무궁화 열차가 부산에 닿기까지 창밖을 내다보면서, 들판보다는 아파트를 더 많이 보았다고 느낍니다. 큰도시뿐 아니라 작은도시도, 작은도시뿐 아니라 시골마을에도 아파트가 꾸역꾸역 늘어납니다. 논을 갈아엎고, 산을 깎아내고 올려세우는 아파트는 왜 이리도 많은지. 문득, 논밭에서 일하는 농사꾼들도 저 아파트에서 사나 싶은 생각. 아파트 창밖으로 논밭이 보이는 저곳은 아이들 가르치며 살아가기에 좋은 집터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

 

부산역. 왁자지껄 어수선한 부산역. 먼저 뒷간으로 갑니다. 뒷간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부산역쯤 되면 뒷간을 넉넉하게 마련해야지 싶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에 이리도 쪼매난 뒷간만 놓으면…….

 

역 앞마당으로 내려옵니다.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어 걷다가, 아차, 길을 거꾸로 왔네 싶어 돌아갑니다. 보수동으로 가자면, 부산역에서 내린 뒤 왼쪽으로 가야 하네요.

 

큰길을 따라 걷다가 구름다리를 타고 건넙니다.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마흔’ 계단이 있는 곳을 지납니다. 큰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걷고 또 걸어 드디어 닿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 마지막날인 오늘, 책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어제까지는 비오고 바람 불고 해서 행사 치르기 버거웠다는데, 마지막날만큼은 날씨가 도와주네요.

 

마흔다섯 헌책방이 모여 있는 헌책방골목 길은 사람들로 물결을 이룹니다. 걸어가기도 힘들고, 책을 둘러보기도 힘듭니다. 만화책을 파는 <국제서적>에 들어가 잠깐 한숨을 돌린 뒤, ‘헌책방 주인장 체험해 보기’ 자리를 지나고, 헌책방골목에서 분식을 파는 집에서 어묵고치와 꽈배기로 배를 채웁니다. 분식집도 덩달아 장사가 잘됩니다.

 

올해에는 어느 교회에서 ‘어려운 이웃 돕기’를 한다며, 지짐이를 굽고 마실거리를 팝니다. 헌책방골목 한 자리를 늘 지키며 마실거리를 파는 할머니들은 “저 집이 저래 장사가 잘되니 우리는 못하겠네.” 하다가, 제 어깨에 걸쳐진 사진기를 보더니, “사진을 찍으려면 우리 같은 사람도 함께 찍어야지.” 하고 웃으셔서 “그러면 찍어 드려야지요.” 하고는 여러 장 찍습니다. 할머니 당신들 장사는 파리를 날리게 되어도, 이 골목에 사람들이 많이많이 찾아와서 책 하나 둘러보고 있으니 흐뭇하실까요.

 

500원 마당 행사를 치르는 동안만, 책방 앞에 좌판을 깔고 "500원 팔기"를 했습니다. 이런 좌판을 아이들이 지키기도 합니다.
500원 마당행사를 치르는 동안만, 책방 앞에 좌판을 깔고 "500원 팔기"를 했습니다. 이런 좌판을 아이들이 지키기도 합니다. ⓒ 최종규

 

군데군데 차려진 ‘한 권에 500원에 팝니다’ 자리를 살펴봅니다. 헌책방골목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행사는 ‘여느 때에도 싸게 파는 책을 더 싸게 파는 일’. 책은 저마다 값어치가 다르고 자기 깜냥이 있기 때문에, 그냥저냥 싸게 팔기보다는 제값을 받고 팔아야, 책을 사는 사람도 책을 아끼는 마음을 처음부터 느낄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헌책방골목 잔치를 찾아온 분들한테는 ‘단돈 500원 떨이’처럼 파는 책에서 알짜배기 찾아내는 일, 또는 싸게싸게 많이 사는 일이 반가울지 모릅니다.

 

책방 나들이를 하는 사람은 자기가 읽을 책을 사기 때문에, 둘레가 시끄럽거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면 마음을 기울여 반가운 책 하나 고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계신 분들은 헌책방골목 잔치 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책을 볼 수 없으니, 잔치날을 비껴 가며 찾아오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느낌을 함께 맛보고 싶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책에 그렇게 눈길을 둘까 헤아리고 싶으면, 슬그머니 이 사람물결에 휩쓸려도 좋아요.

 

크로닌 님이 쓴 책이 몇 가지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슥 펼쳐서 훑습니다. 사이에 뭔가 거치적거려서 그 자리로 넘기니, 옛날 10전짜리 종이돈이 한 장 끼어 있습니다. 어라, 돈이네? 천 원도, 만 원도 아닌 10전짜리 종이돈. 이 종이돈을 어디에 쓸 수 있으랴. 내다 팔 만한 옛날 돈도 아니고, 판다 한들 돈이 되지도 않을 종이돈. ‘덤’으로 얻었네 하는 느낌은 없습니다.

 

예전 사람 손자취를 느낍니다. 잠깐 생각에 잠깁니다. 지난날 이 책을 읽으시던 분은 어쩌다가 10전짜리 종이돈을 여기에 끼워 놓았을까. 그리고 이 종이돈을 왜 잊어버렸을까. 큰돈이 아니라지만, 이 종이돈을 끼워 놓은 분한테는 그때로서 큰돈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았을까. 다문 1전이 아쉬워서, 다문 1전이 없어서 살림이 팍팍하고 하늘이 노래지는 사람도 있으니.

 

책 하나 고른 손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책 하나 골라 뒷짐을 지며 걸어가다가, 다른 헌책방 좌판에서도 둘러볼 책이 있나 싶어 잠깐 걸음을 멈춥니다.
책 하나 고른 손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책 하나 골라 뒷짐을 지며 걸어가다가, 다른 헌책방 좌판에서도 둘러볼 책이 있나 싶어 잠깐 걸음을 멈춥니다. ⓒ 최종규


 〈3〉 막내린 헌책방골목 잔치


헌책방골목 바로 옆에 자리한 부산 가톨릭센터 1층 전시관으로 갑니다. 이곳에서는 ‘보수동 헌책방 일꾼이 갖고 있는 드문 옛책’을 한 자리에 그러모아서 내어놓고 있습니다. 부산과 얽힌 드물고 소중한 자료, 우리 나라 근대 역사를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한테 아직 없는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어사전’ 실물을 이곳에서 처음 봅니다. 부민동에 ‘부산근대역사관’이 있고, 이곳에서도 부산과 얽힌 옛 자료를 퍽 많이 모아 놓고 전시를 하는데, 보수동 헌책방 일꾼이 가진 자료 쪽으로 더 눈길이 쏠립니다.

 

오늘은 외국인노동자가 미사를 보는 날이었을까요. 기독교방송 건물에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모여 있습니다. 전시관 구경을 마친 뒤, 방송국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합니다.

 

헌책방골목으로 돌아갑니다. 사흘? 나흘에 걸친 헌책방골목 잔치도 어느덧 끝날 때가 다가옵니다. 막바지 공연을 준비한다며 무대를 꾸밉니다. 재즈 공연을 하는 분들이 무대에 서서 여러 가지 노래를 들려줍니다. 저녁이 되어 바람이 쌀쌀하지만, 마련된 걸상은 빈자리가 없고, 둘레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헌책방골목 한켠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찾아온 어머님과 아버님이 제법 많았습니다.
헌책방골목 한켠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찾아온 어머님과 아버님이 제법 많았습니다. ⓒ 최종규

 

이제 재즈 공연은 끝. 사람들은 해지고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갑니다. 책방은 하나둘 문을 내립니다. 사흘에 걸친 헌책방골목 잔치를 준비했던 분들은 뒷갈무리하느라 부산하고, 헌책방 아저씨들이 가운데마당에 한 분 두 분 모여듭니다. 평대에 신문지를 깝니다. ‘보수동 헌책방 번영회’에서 주문한 족발과 막걸리가 들어오고, 이번 한 주 동안 모두들 애 많이 쓰셨다면서, 막걸리잔을 부딪히며 서로를 북돋웁니다.

 

“옛날에는 헌책 팔아도 돈이 되었습니다. 책이 귀해 가지고.” 하지만 지금도 헌책을 팔며 살아가는 분들인걸요. 옛날과 견주어 ‘큰돈’이 안 되겠지만, 헌책방 일꾼이나 샛장수들 먹고살 만큼은 벌어들이도록 해 주는 헌책입니다. 그러면서, 주머니 홀쭉한 이들이 적은 돈으로도 자기한테 반가울 책을 찾아서 읽으며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헌책입니다.

 

지식이나 정보로 반짝하고 떴다가 사라질 수 있는 책이지만, 지식과 정보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책입니다. 해묵은 책에서 먼지덩이만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해묵은 책에서 한결같은 빛줄기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해묵은 책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고, 김만중과 허균을 해묵은 선비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월이 깊어갈수록 빛줄기가 굵어지고 튼튼해지는 책 하나가 헌책방 책시렁 어느 한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처세와 학습지 정보 얻느라 헌책방을 찾아갈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처세와 학습 자료만 찾는다면, 헌책방에서 좀 더 값싼 책만 찾는다면, 무언가 알맹이가 빠져서 허전하지 않을까요.

 

책읽는 어린이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게 됩니다.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어떤 책이든 고이 매만지면서 다소곳하게 마주하며 읽을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우리 마음밭은 한결 넉넉하고 푸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책읽는 어린이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절로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게 됩니다.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어떤 책이든 고이 매만지면서 다소곳하게 마주하며 읽을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우리 마음밭은 한결 넉넉하고 푸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마지막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네 번째 헌책방골목 잔치"를 열었습니다. 어느덧 석 달이나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맡기고 찾고 스캔 하고 이러는 동안 시간이 퍽 흐르는 바람에, 좀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느즈막히 올리는 소식이기는 하지만, 헌책방골목 문화, 또 헌책방 일꾼들 스스로 마련하는 지역 문화 잔치, 여기에 2008년에 다섯 번째로 치르고자 또다시 바지런히 준비하고 있을 여러 분들 몸씀을 북돋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몇 가지 기사를 붙여서 띄워 보고자 합니다. 너그러이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헌책방#부산#보수동#헌책방골목 잔치#헌책방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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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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