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거리문화제, 제935차 대추리 마지막 촛불문화제, 제2회 일본 평화헌법 9조 수호 및 한일 평화와 우정을 위한 콘서트, 보도사진작가 이시우를 위한 촛불문화제,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운동강살리기운동본부 콘서트….가수 손병휘가 올해 참가한 행사들이다. 그가 참가한 행사 목록을 늘어놓으면 2007년을 장식한 굵직한 일들이 드러난다. '민중가수'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인 그는 스스로를 '시민가수'라고 부른다.
'시민가수' 손병휘가 12월 7~8일 한국불교역사관 지하공연장(서울 안국동 조계사 안)에서 콘서트 '삶86'을 마련한다. '386' 대신 '삶86'이라고 굳이 바꾼 이유는 '386'이 대학생들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386 동년배들뿐만 아니라 당시 떨쳐 일어섰던 모든 이들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란히 가지 않아도', '내 인생의 마라톤',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 등 18곡을 부른다. 게스트는 손병휘와 영원한 라이벌(?)인 안치환과 '민중가수' 연영석이다.
이번 공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주관단체인 만세회다. 이 모임은 손병휘와 같은 고대 86학번들로 '통일 만세'를 외치다 자연스럽게 만든 이름이다. 해마다 수십 회의 공연에 참가하지만, 자기 공연은 한 번도 열지 못한 친구를 위해서 지난 2005년 3집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마련한 바 있다.
만세회 회원으로 공연추진위원장인 심우섭씨는 "지금까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그늘진 자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온 그를 위해 우리 친구들은 이젠 그 자신을 위한 콘서트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번 공연 취지를 팸플릿 인사말을 통해 밝혔다.
지난 4일 손병휘씨가 공연을 위해서 연습 중인 마포구 서교동 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날 아침 기온은 -4.5℃. 갑작스런 추위에 모두들 잔뜩 움츠리고 다니는 바깥과는 달리 스튜디오 안은 뜨거운 열기가 넘쳤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에서 '아빠의 청춘'까지
"그래서 끝나고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거야. 앙코르 안 나오면 그냥 들어가서 울고 있는 거고…."
"<나의 노래>부터 하는 거예요?"
"그렇지."
"어쨌든 형 혼자 하는 거예요."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은 손병휘씨와 문건식(기타), 정은주(건반), 박우진(베이스), 신현정(건반, 아코디언), 송기정(드럼), 김동재(기타, 하모니카)씨 등 7명. 모두 7~8일 공연에 올라갈 이들이다. 이 중 김동재씨는 최근 합류한 막내로 아직 20대다. 전국 46개 대학이 참여하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추진위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취재 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자 손병휘씨는 "어, 나보다 서열이 훨씬 높았네"라며 놀라워했고, 동재씨가 무척 쑥스러워했다.
정은주씨는 손병휘씨와 15년 인연이다. 손씨가 93년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 단원으로 있을 때 정은주씨가 노래모임 '노래마을' 연락처를 물으러 찾아온 게 첫 만남이다. 이후 94년 손씨가 '노래마을'로 자리를 옮기면서 둘은 한 팀에서 일하게 됐다. 신현정씨는 94년 '노래마을' 공연을 할 때 관객이었다. 이래저래 모두들 적지 않은 인연들이다.
이야기 도중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청계천 8가', '청소부 김씨' 등으로 유명한 밴드 '천지인'의 한 멤버가 최근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소식은 어디에도 보도가 되지 않았다. 한 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사람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져간다는 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연습은 12시를 지나고 오후 1시를 지났다. 1집에서부터 4집 노래까지, 때론 강하게, 때론 감미롭게 노래를 불렀다. '늦기 전에', '나의 노래가', '샤이를 마시며', '촛불의 바다', '나란히 가지 않아도', '그대를 만나기 전에' 등 그가 거리에서 불렀을 노래들이 연달아 나왔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불나비',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 노래는 6월 항쟁을 기억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다. 손병휘씨는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부르다가 '아빠의 청춘'을 내처 불렀다. 두 곡 다 흥겨운데다, 곡 풍이 비슷해 이어서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래 한 곡의 빠르기가 손병휘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거, 매트로놈 켜고 한 거야? 좀 빠르게 하자." 즉석에서 조정이 이뤄진다. 바꾸고 나니 곡이 많이 흥겨워졌다. 그는 이번 12월 공연을 좀 신나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연습이지만 별로 실수가 없다. 간혹 실수가 나오면 알아서 실토한다. 손병휘씨는 곡과 어느 곡을 이어붙일지 등을 주문한다. 프로듀서 역할을 그가 하고 있는 것. 연주 도중 급하게 걸려온 전화가 오면 전화 진동음을 어떻게 느끼고 받기도 한다. 작곡가 겸 가수 겸 매니저 겸 홍보인 손병휘씨는 이래저래 바쁘다.
손씨는 이번 공연 세션들에 대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송기정씨 같은 경우는 김창완씨 공연할 때 세션을 맡고 있다"며 모두 각 분야에서 수준급 실력자라고 귀띔했다. 공연 품질만으로 관객을 맞이하고픈 욕심이 느껴진다.
손씨에게 "1980~90년대 유명한 민중가요 밴드였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마을', '노래공장', '꽃다지', '천지인'이 모여서 연합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말하자, "7080처럼 모이는 것은 싫다"며 손사레를 쳤다. 이어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추억'보다는 '현역'이고 싶은 것이다.
2년에 한 번꼴로 음반을 꾸준히 발표하는 민중가요 창작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멈추진 않는다"며 세상을 낙관하는 '시민가수' 손병휘. 이번 12월이 유난히 쓸쓸하다면 그의 노래에서 위안을 받아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