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도 급식비 못 내는 학생들이 많다. 바구미처럼 밥만 잘 먹더구만."얼마 전 인천 서구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회원이자 저소득층 어린이공부방 '내일을여는교실' 운영위원직을 맡고 계시는 심의위원이 "의정비 40% 인상분인 1억5000만원이면 저소득층 공부방 7군데에 1년간 운영비를 지원하고도 남는 금액"이라며 인상안에 항의하던 중이었습니다.
급식비 낼 형편은 안 되고 배는 고픈 아이들을 '바구미(흔히 '쌀벌레'로 불리는, 쌀·보리 등의 곡물을 잘 먹는 벌레)'로 표현한 그 심의위원은 놀랍게도 현직 교장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의 운영위원회에 서구의 구의원이 참가하고 있다는 연고로 '교육계 대표'로 추천됐습니다.
의정비 1억5000만원 올린다고요? 한이·윤이는 라면을 먹는데도요?교육자에 의해 졸지에 '벌레'가 되어버린 어린이들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인천연대가 회원들의 소액후원금으로 건물을 빌리고 무료 공부방을 만들기 시작한 게 10년 전의 일이고, 운영비가 지원된 지는 고작 2~3년 전의 일입니다.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 가정이거나, 할머니·할아버지와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방과 후 공부도 돕고, 늦은 밤 어른들이 오기 전까지 배를 곯지 않도록 든든하게 점심·저녁 밥 먹이는 걸 우리는 사명인 양 생각해 왔습니다.
그중 제가 아는 한이·윤이(가명) 남매는 아버지와 함께 여관에서 살던 아이들입니다. 남매의 아버지는 날품을 팔다가 며칠만에 한 번씩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제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고, 아버지가 없을 때는 라면을 사먹으며 살아갑니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연락을 해서 저는 이 아이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만나던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던 눈빛이 매섭던, 이제 겨우 8살인데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던 윤이의 첫 인상이 기억에서 오랜시간 지워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윤이가 어느덧 경계를 풀고 선생님들의 품에 안기며 방긋방긋 거리는 걸 볼 때 엄마의 빈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다른 아이보다 한 살 늦게 들어간 학교지만, 씩씩하게 공부하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습니다.
200만원 없어 놀이터 모래 못 바꿨습니다, 의원님들 뭐 하십니까
의정비가 최종 결정되던 그 날 교장선생님은 의정비 인상에 반대해 찬 바닥에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 저희를 "밖에 있는 빨갱이들"이라고 표현하셨죠. "전교조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셨구요. 다 좋습니다.
당선되자마자 개인 사무실 필요하다며 10억원 들여 의회 건물을 증축하고, '투 잡(Two Job)'하며 회기 때나 얼굴 비추고, 수천만원을 '업무추진비'니 '해외여비'니 낭비하며, 주민생활에 관련된 조례 하나 공청회 하나 제대로 처리한 적 없는 의원님들.
그런 분들에게는 연봉 5000만원도 아깝지 않다던 교장 선생님, 배고픈 우리 바구미들 운영비·급식비 보조금이 3년째 동결인 사실은 혹시 알고 계신가요?
"어린이 놀이터에 기생충 알이나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소식을 듣고 계양구 지역아동센터 '신나는 교실'과 몇몇 지역단체들이 '놀이터 모래 바꾸기'에 예산 지원이 가능한지를 구청에 타진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만원의 예산이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해서 제대로 말도 못 꺼냈습니다.
그런데 계양구의회 구의원님들은 의정비 인상을 반대하는 사회단체 회원들과 육탄전을 서슴지 않으셨고, 결국은 몰래 모여앉아 날치기로 25% 의정비 인상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의원님들의 희망, 바구미들의 희망인천 서구 의정비 심의위원회는 심의위원들에게 쪽지 한 장씩을 돌려 희망 인상안을 쓰도록 한 뒤 이 '희망'을 평균 내서 40%의 잠정 인상안을 결정했습니다. 원래 지방자치법에는 주민들의 소득수준·물가상승률·공무원급여인상률·의정활동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놓고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자 심의위원회는 의정비 결정 마지막 날 20%로 인상안을 줄여 최종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인천연대는 인천시의회 앞에서 의정비 인상반대를 외치며, 오늘(12월 5일)로 31일째 철야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천막에서 밤을 지새는데 첫 눈이 쏟아졌습니다. 갑자기 윤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상을 좀 더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달라고 응원이라도 하는 걸까요? 우리 귀여운 바구미들에게 작은 희망 하나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철호 기자는 현재 인천연대 사무부처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인천 서구 주민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는 단체회원 소식지 <평화와 참여> 12월호에도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