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을 남기고 있는 대선 정국에는 열두 명의 후보가 난립하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1년의 치열한 논란 끝에 '민족문학'을 떼어내고 겨우 이름을 바꾼 '민족문학작가회의' 가 이번에는 이사장 선출에 실패하여 시선을 끌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정희성)는 지난 8일 제21차 정기총회를 열어 정관개정을 통한 명칭 변경에는 성공하였지만 총회준비위원회에서 이사장을 추대하지 못하고 말았다. 제20차 정기총회에서 명칭변경에 관한 안건이 상재되어 1년에 걸친 '명칭변경특별위원회’ 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내홍을 겪기도 했다. '분열의 위기인가, 특정집단의 독주는 아닌가'하는 회원들의 우려를 겨우 극복하고 찬반투표와 설문조사를 통하여 '한국작가회의'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참여회원 559명 중 명칭변경에 찬성한 수가 418명(74.8%) 반대 137명(24.5%) 으로 명칭변경은 가능하게 되었지만 참여회원의 수가 총원대비 41%에 불과한 투표여서 미진함을 남기고 있다. 또한 임기가 끝나는 이사장의 선출문제는 총회준비위원회가 내정한 한 소설가가, 반대의견에 부딪혀 무산된 뒤 김지하 시인으로 방향을 선회하였으나, 두세번에 걸친 위원들의 방문과 원로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건강과 일신상의 문제'로 고사함에 따라 총회의 추인을 받는 데 실패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현 정희성 이사장이 3개월의 시한을 두고 새 이사장이 선출되기까지 직무를 수행하는 과도기적 체제를 맞게 되는 기현상이 초래되었다. 다만 임기가 끝난 김형수 사무총장 후임으로 도종환 시인이 선출되어 사무처 전체가 흔들리는 불상사는 일단 막게 되었다. 이를 의식한 듯 도종환 시인은 취임인사에서 전임 이사장과 사무총장의 업적으로 남북작가대회 성사,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 6·15민족문학인협회 개최 등을 일일이 거론하는 배려를 보였다. 또한 명칭변경 건을 통한 상처를 의식하여 ‘화합의 리더십’을 통한 단체의 융합을 제시하였다.
명칭을 새로 내걸게 된 '한국작가회의'는 선언문 채택을 통하여 그 명분과 의지를 새삼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작가는 언어로 말하지만 언어로만 말하지 않고 한 생애를 다 던져 말한다"로 장엄한 서두를 내놓은 선언문에서 '민족문학'을 떼어낸 것이 강성·진보 등의 이미지를 탈색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의식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저항의 기치'와 남북작가대회 추진,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 등 범인류적 확장을 통한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민족문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명실상부하게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학단체로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선언문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종영 시인이 보고한 감사보고서에서는 "전년대비 회비납부율이 35%에서 20%대로 떨어져 회의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표시하였는데 "실제로 현 재정이 차입금을 제하면 '사실상 적자'"라고 실토한 김형수 사무총장의 말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위원회가 1년 내내 운영되기는 하였으나 그 실적이 미미한 것을 보면 모든 경제의 어려움이 문단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회원들이 새 이사장은 단체의 재정을 적절히 수급해 줄 수 있는 능력자를 원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삼 개월의 연장임기를 수행하게 된 정희성 이사장과 준비위원들이 과연 새 단체의 '대장'에 누구를 어떻게 영입하여 마무리할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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