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죄수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감옥(Titan Prison)을 만들겠다." 영국 법무장관 잭 스트로우는 최근 죄수로 가득 찬 교도소 시스템을 더 이상 이대로 유지할 수 없다며 수천 명의 죄수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매머드급 감옥을 증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영국 정부는 신노동당이 권력을 잡은 1997년 이후에 "범죄율이 3분의 1이나 낮아졌다"고 늘 자랑해왔는데, 오히려 감옥은 죄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니 말이다.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대규모의 새로운 감옥을 지으려는 '단순한 접근 방법'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성토하고 나섰다. "일단 잡아 가둬라" 죄수 폭증... 미국 흉내 내기의 그늘 영국은 서유럽국가 중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의 수가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있는 죄수들만 해도 무려 8만 명이나 된다. 거기에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죄수들까지 합하면 전체적으로 8만8249명에 달한다. 이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훨씬 많은 수다. 그러다 보니 인구 10만 명당 죄수 비율도 웬만한 국가보다 높다. 영국에서 이처럼 증가한 죄수의 수는 역사적인 수준으로, 신노동당 정부가 권력을 잡은 후 지난 10년 동안에만 2만5천여 명의 죄수가 늘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매년 13만2000명의 죄수들이 감옥을 들락거리고 있고, 특히 그 중 7만 명은 청소년이라고 밝혔다. 신노동당 정부는 집권 이후 오히려 강력범죄 등 주요 범죄율이 3분의 1이나 낮아졌다고 호들갑이다. 이 같은 수치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중형 범죄는 여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왜 죄수의 수는 늘어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신노동당 정부가 웬만한 범죄자들은 일단 감옥에 가둬두고 보는 강경한 미국식 범죄정책을 흉내 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피자 한 조각만 훔쳐도 감옥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법 집행이 엄격하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과거에는 벌금을 물던 경미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도 이제는 감옥에 가두고, 중범죄자들에 대한 형량 기간도 과거보다 20%나 늘었다"며 "새로운 범죄 관련 법률들이 전 지역에서 죄수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미성년자와 청소년도 이 같은 가두기식 정책의 예외가 아니어서 특히 15~17살의 청소년 죄수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형벌 시스템이 교정을 중시하는 유럽식보다는 강경한 처벌에 무게를 두는 미국식에 더 가깝게 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조기 출소 1만1000명, 초대형 교도소 증축 이처럼 죄수들이 눈덩이처럼 급증하다 보니 감옥은 죄수들로 미어터질 지경이 된 지 오래다. 죄수들을 수용할 교도소는 없는데 죄수는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 영국 정부는 6월부터 고육지책으로 중범죄자와 성 관련 죄를 지은 죄수를 제외한 범죄자들은 형량을 다 채우지 않아도 '조기 출소'를 시켜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서 10월말까지 총 1만1000명의 죄수들이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조기에 출소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은 오히려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변하기보다는 감옥에서 더 나쁜 물이 들어서 나오고, 사회 적응이 쉽지 않은 이들은 또 범죄를 저질러 감옥을 들락거리는 신세로 전락한 것.
보수당은 "죄수가 밀집한 감옥이 범죄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그런 공간에서 어떻게 제대로 교정행정이 이뤄질 수 있느냐"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더욱이 영국의 감옥들은 지은 지 수백 년이 된 오래된 건물이 대부분으로 낙후한 시설에 대한 죄수들의 불만이 매우 높다. 시민단체들과 야당은 죄수 인권을 거론하며 낙후 건물들에 대한 근본적인 교체를 요구했다. 이처럼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자, 영국 법무부는 "이 정책은 우리가 교도소를 충분히 확보할 때까지 취할 일시적인 조치"라며 "조기출소자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황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최근 영국 정부는 드디어 새로운 대책을 발표했다. 오는 2014년까지 1만5000명의 죄수를 더 수용할 수 있도록 교도소를 대거 증축하겠다는 것. 특히 한 교도소에 최대 25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슈퍼급' 교도소를 짓겠다고 밝혔다. 후보지로는 범죄자들이 많은 런던과 서부와 북부의 잉글랜드 지역이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교도소 시스템 역시 미국의 방식을 모방했다. 영국 정부는 소규모의 작은 교도소를 여러 개 증축하는 것보다는 큰 교도소를 지어서 죄수들을 한꺼번에 수용, 관리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잡아 가두기만 하면 정부 노릇 다한 건가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은 강력한 처벌 위주인 기존의 미국식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는 발상으로, 사방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먼저 초대형 교도소를 지을 경우, 여기에 수용되어 있는 죄수들이 한꺼번에 폭동을 일으킨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죄수들의 집단 폭동 장면을 상상해보면 될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들을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교정 행정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빈번한 자살과 폭행 등 부정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교도소의 우울한 현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도소에서는 자살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단순 경범죄를 지은 청소년들이 수감 생활이 두려워서 지레 자살하는 사건은 영국 사회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 BBC >는 "자살 사건의 3분의 1이 수감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하고 있다"며 "그 중 7분의 1은 수감된 지 48시간 내에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교도소에 사람을 가두는 것은 단지 그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는 않는다. 죄수와 관련되어 있는 그 가족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감옥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는 어린이들이 15만 명에 달한다"며 이같이 가두기식 정책을 펼치면 앞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경제, 사회, 문화적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이 그들의 삶을 살아가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 주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강경한 범죄 정책으로 인해서 전반적인 범죄율이 줄지 않았느냐"며 그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간 <가디언>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폴리 토인비는 "범죄율이 떨어진 것은 정책 때문이 아니라 좋은 경제 여건 때문일 것"이라며 "서유럽 주요 국가들에선 범죄율이 대부분 줄었다"고 지적했다. 폴리 토인비는 처벌 위주의 미국식 정책보다는, 어떤 정책을 펴야 정말 범죄가 재발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