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열린 대통령 후보 초청 토론회를 마친 후보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두 번째를 맞은 후보 초청 토론회의 이날 주제는 사회·교육·문화·여성. 지난 6일 열린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유력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집중포화' 대상이었다.
'V'자 보이는 이명박의 여유 "나 괜찮았어?" 이명박 후보는 토론회를 마친 뒤 밤 10시 30분께 방송국을 떠나면서 "공약보다 상대 (후보) 공격이 위주여서 아쉬웠다"면서도 "(나는) 국민을 향해 나가니까 어떤 공격이 있어도 국민들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후보는 1층 현관으로 나가 사옥 앞에서 그를 응원하던 지지자 100여명을 방문해 악수를 나눴다. 지난 6일 '강화도 총기탈취 사건'을 의식해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홀로 지하 주차장을 이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이 후보는 손가락으로 'V' 자를 만들어 자신의 로고송에 팔을 흔들었고, 승용차가 도착하자 차에 발을 딛고 올라서서 손을 흔들며 지지자들에게 화답했다.
토론회 직후 이 후보는 복도에서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을 만나 "나 괜찮았어?"라고 물은 뒤 몸을 뒤로 젖히며 "오늘은 이런 자세 안 했어"라고 묻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번 토론회에서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은 앉은 자세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 후보를 주요한 공격 타깃으로 삼았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내가 공격하지 않아도 다른 분들이 알아서 해주신다"고 짧은 소감을 남겼다.
후보들은 대부분 방송국을 빠져나가기 전 정문 앞에서 응원전을 벌이던 지지자들을 찾아갔다. 이인제 민주당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토론회가 괜찮았으니까 저와 함께 (대선까지) 갑시다"고 토론회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 또한 응원 현장을 들러 추운 날씨에도 자리를 뜨지 않은 지지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토론장 바깥에선 지지자들의 응원 삼매경
각 후보들의 지원 유세는 토론장 내 후보들간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웠다. 15% 안팎의 부동층 등 일부에서 선거 무관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날 MBC 사옥 앞 지지자들의 응원전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축제판'이었다. 6명 후보들의 지지자들은 40~70명 가량으로 구성, 토론회가 열리기 3시간 전(오후 5시)부터 유세차를 세워놓고 응원전을 벌였다.
이들은 오후 8시 토론이 시작됐음에도 로고송을 크게 튼 채 '응원 삼매경'에 빠졌다. 실내에서 후보들이 열띤 토론을 하며 '두뇌 게임'을 벌였다면, 실외에서 지지자들은 몸으로 '세력 다툼'을 하는 듯 했다.
지지자들의 자리 배치는 (사옥을 등진 채) 왼쪽에서부터 '이명박-이인제-권영길-정동영-이회창-문국현' 순이었다. 이같은 순서는 지지자들의 '과열'을 막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에 추첨을 통해 정한 것이다.
응원 현장에는 후보의 얼굴이 찍힌 현수막과 손 팻말은 기본이었고, 후보 진영마다 분수폭죽(이명박), 노란색 풍선(이인제)에서부터 반짝이 윗옷(권영길), 산타 복장(문국현)까지 눈에 띄는 것은 총동원됐다.
정동영 후보 지지자들은 지난 6일 응원전과 마찬가지로 윗옷을 벗은 젊은 남성 지지자들이 등장했고,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은 대학생들과 중년 여성 등 50여명이 '12'(이 후보의 기호)라고 적힌 나무 캐스터네츠로 귀를 자극했다.
선거법 단속 어려운 응원전... "우릴 범죄자 취급하다니" 응원전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과의 마찰도 눈에 띄었다. 선관위의 한 관계자가 문국현 후보 지지자들에게 손팻말을 철거할 것을 촉구하자, 지지자들은 "다른 캠프부터 치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문 후보쪽뿐만 아니라 각 후보의 유세차에는 대형 플래카드, 동영상 홍보물 등 선거법으로 이들을 모두 단속하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선거법(90조)상 유세 현장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손팻말, 게시물, 인쇄물 등을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날 응원전에 참가한 지지자들은 선거법을 모두 위반한 셈이다. 다만 소리에 대한 규제는 없어 사옥 앞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각 후보 유세단의 로고송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이날 응원전 현장에는 70여명의 선관위 관계자들이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들고 현장을 감시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법을 내세웠지만, 강철섭 '문함대' 대표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갖고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선거법을 근거로 손팻말조차 금지시킬 것이었으면, 아예 이런 응원 자리를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이회창-이인제-권영길-문국현-정동영-이명박 후보 순서로 MBC 사옥에 도착했다.
이인제 후보는 방송 전 응원현장을 찾아 "내일부터 선거혁명 버스 투어를 시작한다, 답답한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길을 당길 것"이라고 짧은 유세전을 벌였고, 권영길 후보는 유세차량에 올라 손을 흔든 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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