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사라진 선거라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대로라면 후보의 대표 공약조차 모르는 상태로 투표장에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 하나하나는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 중 교육, 보육, 주거, 노후 등 생활공약들이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내 삶에 이들 생활공약들을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여기에 자기 처지에서 대선 공약들을 짚어본 글들을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약들. 그 많은 공약들 중 내가 알고 있고 내게 필요한 내용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각 후보들마다 내놓은 이번 정책안을 보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생겼다. 중점을 두고 살펴본 정책안은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주택 및 복지 관련 공약들이다. 특히 장애인인 나로서는 이 두 공약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택] 지켜질 수만 있다면 괜찮은 주택관련 공약들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 이회창 등 각 후보마다 내세운 주택관련 대표공약들은 보통 3~4개 정도였다.
먼저 권영길 후보의 주택관련 공약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가구 1주택 반값 부동산 ▲분양주택은 무주택자에게 분양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특혜 폐지 ▲전월세 인상률 연 5%로 상한제 도입 ▲거주지가 경매에 들어가더라도 최우선 변제금 4천만원 보장.
먼저 권영길 후보의 주택관련 공약 중 제일 눈에 띤 것은 '전월세 인상률 연 5%로 상한제'란 내용이었다. 전에 전세로 살면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바로 매년 재계약을 할 때마다 전세금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인상률 상한제도는 지난 경험에 돌이켜볼 때 상당히 좋은 공약이라고 본다.
이회창 후보의 관련 대표공약 중에서는 '직업군인 자가 주택 마련 적극 지원, 주거 및 교육환경 개선'이라는 내용이 주거 공약의 전부였다. 나에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공약이었다. 혹시나 하고 정책안을 꼼꼼히 뒤졌지만, 주거(주택) 관련 부분은 역시 군인가족 관련 내용이 전부였다.
문국현 후보는 관련 공약이 몇 가지 있었다. ▲반의반값아파트(평당 4백만원 내외 분양) ▲투기 배제하기 위해 일정 기간(20년) 이내 입주자가 매각할 경우, 반드시 토지주택공사 환매 의무화 ▲아파트 택지는 계속 공공이 보유하고 절대 민간에 매각하지 않음 ▲공공임대주택이 총 주택의 20%가 될 때까지 월세형 임대아파트 지속 건설.
위 공약 중에서 눈에 띈 것은 '공공임대주택이…'와 '반의반값아파트…'였다. 내가 월세를 산다고 생각해보니, 이후가 없었다. 즉 주택 관리비와 월세 인상 등 세부 관리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었다. 권영길 후보의 '월세 인상율 상한제' 같은 것을 접목시키면 더욱 믿음이 생길 것 같다.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니 네 가지 정도가 나온다. ▲연간 50만호, 신혼부부 주택 12만호 공급 ▲장기보유 1세대 1주택자 세금 감면 ▲장기보유 1세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소득세 감면 ▲양도소득세는 부동산을 장기 보유할수록 누진적 인하-장기보유 1세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소득세 감면.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은 '연간 50만호, 신혼부부 주택…'이었다. 나 같은 미혼자에게는 반가운 공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궁금하다. 어떤 방법으로 집을 50만호 씩 늘리고, 신혼부부에게 어떤 방식으로 12만호씩 공급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에게 기회가 올지 알 수 없고, 또 가뜩이나 집값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이 같은 공급정책이 또 한 번 부동산시장을 뒤흔들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정동영 후보의 관련 공약 중에선 '내 집 마련 기간을 반으로 단축하겠다'는 내용이 돋보였다. 정 후보는 이를 위해 '주공 및 토공의 과다 이윤 제한' '택지개발 과정별 거품 빼기' '최저가 낙찰제 확대' '주변시세의 60% 수준으로 장기전세 주택 5년간 10만호 공급' 등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잘 되면 좋겠지만,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 내가 너무 속고만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인제 후보도 몇 가지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재산세의 국세전환과 재산세 누진율 강화 및 부동산거래세 인하 ▲시장친화적 집값안정 정책 추진 ▲서민의 중산층화 촉진을 위한 서민재산 형성 지원정책 강화-지분소유형(내집마련형) 임대아파트 230만호 공급 ▲공동주택 주거공간의 품질 제고.
'서민의 중산층화 촉진을 위한 서민재산 형성 지원정책 강화'가 눈에 띈다. 개요를 자세히 읽었지만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분명 잘 이뤄지면 좋은 공약인데, 순탄히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장애인복지] 공약만 보면 선진국 안 부러운 복지 정책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가는 정책은 역시 '복지'다. 네 명 후보들의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을 짚어 내 삶에 적용시켜 보았다.
우선 권영길 후보의 복지관련 대표공약들을 살펴보니 한 페이지 정도로 장애인 관련 공약이 정리돼 있었다. 획기적인 공약은 눈에 띄지 않았고, 기초 내용들만 정리해놓고 있었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회창 후보의 복지관련 공약 중 장애인 공약 또한 아주 단순했다. 대략 그 내용은 '20만원 수준의 기초장애연금을 지급', '직업교육 강화와 취업알선',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각종의 사회서비스를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정도였다. 아직까지 장애인연금제도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공약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장애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기본 혜택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목록은 많았다. ▲기초장애 연금법의 조속한 재정 ▲의무고용제도를 통한 기준고용율을 3~4%로 확대하고 위반시 시정절차 적용 ▲직업재활시설 수를 단기적으로 등록장애인의 1%, 장기적으로 2% 수준까지 확대 ▲장애인의 인권보장과 차별금지의 실효성 담보 조치 ▲특수교육 대상자들의 통합교육 강화 ▲여성장애인에게 건강관리서비스 제공 ▲국공립병원 및 재활병원 건립 시, 여성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전문의 배치, 전문치료실 마련 ▲ 여성장애인의 모성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사도우미사업 활성화, 출산 장려금을 지원하는 제도 마련.
이 중 '기초장애연금법의 조속한 재정'이란 항목이 눈에 띈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가 없다. 막연하니 믿음이 떨어진다. '의무고용제도 3-4% 확대' 또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현재 시행중인 장애인의무고용 2%도 사업주들이 갖가지 편법을 써서 피해가는 현실에서 3~4%가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종 편법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 없었기에 3~4% 확대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기 힘들다.
이명박 후보가 제시한 장애인 복지관련 공약 중 눈에 띄는 것은 '택시와 장애인용 차량에 대해 LPG 특소세 폐지'가 전부였다. 이 LPG 특소세 폐지 건은 이미 1년 전부터 불거진 문제로 '시행해야 한다'와 '시행하지 말아야야 한다'로 의견이 분분하다. 장애인인 내 처지에서 말하자면 시행하면 안된다.
장애인 명의만 빌려 장애인차량을 운전하는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자동차 아니면 외출이 불가능한 나같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은 억울하다. 어떤 대안을 마련해서든 장애인 운전자들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동영 후보 공약 중엔 눈길을 끌 만한 공약이 무척 많았다. ▲장애인 관련 예산 증가율을 현 수준(8.6%)의 2배 이상인 17%까지 증액 ▲장애인연금제도 도입 추진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보장성 대폭 확대 ▲저소득 중증장애인 의료비 경감 대책 마련 ▲공공의료보건기관의 장애인 재활의료서비스 제공 강화 ▲권역별 재활병원 설립을 확대해 의료 사각지대 해소 ▲지적장애인 등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정신장애인의 인권침해와 차별 철폐를 위해 정신보건법 제정 ▲성년후견제도 도입 ▲장애인 시설 이용자에 대한 인권보장 확보 ▲보조기구 서비스 전달체계 수립 ▲시각 청각 언어장애 등 장애 유형별 특성을 고려한 고용지원 대책 추진 ▲장애인 대상 국민임대주택 공급 확대 방안 마련 ▲여성장애인 검진 제도화.
긴 말이 필요 없다. 제대로 시행만 되면 좋은 공약들이다.
이인제 후보의 관련 공약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능력개발 지원'이란 정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정책이야말로 이미 오래 전에 시행됐어야 할 사항이다. 아직까지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는 게 서글플 뿐이다.
그 외 장애인 교육도 짚어야 할 사항이지만 후보들 공약이 구체적이지 않다. 여섯 명 후보 중 정동영 후보가 그나마 구체적으로 정책 제시를 했을 뿐, 다른 후보들은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표현했거나 아예 넣지도 않았다.
대략적으로 여섯 명의 후보가 제시한 주택/복지/교육 관련 공약을 장애인 입장에서 살펴본 결과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복지관련 공약들이 한결같이 기본 수준이었고, 그 또한 대표공약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나마 공약처럼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공약집을 읽는 내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