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범여권이, 혹은 반한나라당 진영이 갈피를 못 잡고 요동치고 있다. 정동영 후보 진영에서 문국현 후보 사퇴를 주장하고, 문국현 후보 진영에서도 정동영 후보의 사퇴를 주장한다. 다른 후보의 사퇴를 그렇게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참 이상한 선거판이다. 재밌는 일은 또 있다. 이른바 정동영-이회창 연대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스피커라고 할 수 있는 정치포탈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회창 후보에 대한 구애 행위를 했다(12월 14일 <데일리서프라이즈> 신상철 칼럼 '이회창과 정동영은 아무런 조건없이 즉시 연대하라').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범여권’, ‘반한나라당 연대’라는 말로 자신이 무원칙하게 엮이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친노가 앞장서서 과거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에 기여한 창조한국 미래구상이 주장한 ‘반보수’도 아닌 ‘반이명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개혁세력이 수구보수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이제부터 신상철 대표의 말을 따옴표 속에서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신상철 대표는 정동영-이회창 연대는 “오프라인에서 원샷 방식이 최적합”이라고 했다. 즉 수구 보수와 친노를 포함한 범여권이 손을 잡는 것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의사를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당신들이 과거 2002년 대선판을 노란 손수건과 ‘광야에서’로 요동치게 했던 그 노사모가 진정 맞는가? 당신들은 민주당이 버린 바보 노무현 후보를 국민들의 손을 빌어 대통령으로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들이 진정 맞나? 계속해서 신상철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명분을 정동영-이회창 연대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자. 신상철 대표는 “이회창-정동영 연대는 또 하나의 이합집산 혹은 정치공학적 합종연횡으로 볼 수 있으나 나는 생각을 달리한다”며 “정동영-이회창 연대는 우리 정치가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고단위의 정치적 합의물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본을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그 근본이라는 것,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동서 갈등을 해소하고, 보혁 갈등을 해소하고, 부패와 반칙이 사라지는 나라를 만들 수만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고 했다. 놀랍고도 놀랍다. 동서 갈등, 보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고작 이회창 후보와 손을 잡는 일이었던가? 똑똑히 기억하건대 2002년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구호는 과거 지역주의 구도에 기생해 대한민국의 정치적 퇴행을 연장시켜왔던 영호남 기득권 세력과의 결연한 절연의 의지 표현이었다. 2002년에 보수의 표밭인 부산 출신의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 절대지지의 부산 민심에 호소하며 외쳤던 지역주의 극복 구호가 5년 후 신상철 대표의 입에서 정반대의 의미로 재탄생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적당히 부패했던 집단’과 ‘적당히 반칙을 즐겼던 집단’이 최악의 부패덩어리를 막아내기 위해 손잡는 것은 얼마든지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상철 대표의 그 적당주의야말로 국민이 용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적당주의다. 이제는 친노 세력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도 당신들이 1987년 이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자신할 수 있나? 도대체 당신들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감동이 없는 정동영 후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가 어떤 감동을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으로의 단일화가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며 서로 간에 사퇴를 조장하고 있는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 진영의 싸움을 보면서 감동은 더욱 더 멀어져만 간다는 느낌이 크다. 진정 감동이 될 수 있는 순간은 이제 다 지나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단일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세력연합이 아닌 어떤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겠나? 하여간 이도저도 안되니 마음은 급한 듯 하고, 그러다보니 갈수록 정도가 아닌 사도를 가는 것 같다. 정동영-이회창 연대를 친노가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리는 사도 중에 사도다. 분명히 하자. 정동영-이회창 단일화는 고도의 정치실험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죽박죽 만들어 버리는, 정치권이 한꺼번에 국민들을 기만하는 저급한 정치망발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1987년에 등장한 민주개혁세력에게 실망한 이유는 그들이 반공과 냉전의 1953년 체제로부터 비롯된 군사독재, 지역주의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완성된 1987년 체제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며, 1997년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에 그와 같은 무능력이 더욱 더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진보, 혹은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70%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보수와 차별화하는 신보수 이명박 후보가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무능력함을 미래지향적 대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는 방식으로, 다시 1953년 체제에 기생하는 세력과 손을 잡는 방식으로 극복하겠다고 하니 저급한 정치망발일 뿐이다. 제대로 1987년 체제를 완성시켜서 1953년 체제를 종식시켜 달랬더니, 과제는 다 하지 못하고 1953년 체제와 손을 잡는다고 하면 누가 그 진정성을 알아서 지지해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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