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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이 한창 시끄럽던 1973∼1974년 시기는 우리나라의 '유신' 초기 시절이었다. 철저한 언론 통제로 언로(言路)가 막혀 있던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보도는 매일같이 지상(紙上)에 넘쳐났다.

 

텔레비전도 흔치 않던 시절, 라디오를 즐겨듣고 신문의 작은 활자들을 유심히 들여다볼 줄 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관심을 모았다. 그 사건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는 어떤 흥미진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한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한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 ⓒ CBS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오신 동네 어른 한 분과 아버지가 마루에다 신문을 펴놓고 마주앉아 주고받으시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화제였고, 두 분은 닉슨 대통령을 동정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참 묘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무 문제도 아닌 걸 가지고, 또 얼마든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연일 너무 심하게 지지고 볶는다는 얘기였다.

 

상대방 당사 도청도, 그것을 부인한 닉슨의 거짓말도 사소한 일이라는 얘기였고, 그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미국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거니와 그게 다 등 따습고 배부른 탓이라는 얘기였다.

 

두 분의 닉슨 동정론을 들으며 나는 끼어 들지는 않았지만 충격이 꽤 컸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일이 미국에서는 매우 큰 사건이라는 사실은 이미 내게 계속적으로 묘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도청 자체보다도, 도청 사실을 부인한 닉슨의 거짓말이 더 큰 문제가 되어 결국 그가 대통령직에서 사임까지 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처럼 미국이라는 나라가 위대하게 보였던 적은 없다. 부러움과 존경심의 눈으로 미국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부터 이상한 패배감과 열등감 같은 것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경제'가 중요하다...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

 

 광운대 강연 동영상으로 새로운 BBK논란 국면을 맞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6일 저녁 여의도 문화방송에서 열리는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합동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광운대 강연 동영상으로 새로운 BBK논란 국면을 맞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16일 저녁 여의도 문화방송에서 열리는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합동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 때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서 우리는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중진국 대열에서도 일취월장,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는 말도 듣는다. 정말로 우리는 성장과 발전의 이런저런 실체들을 구가하며 30여 년의 세월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30여 전에 닉슨 동정론을 펴셨던, 예전에 작고하신 두 분은 지금도 내 곁에 살아 계시다. 두 분이 30여 년 전에 이구동성으로 펼치셨던 닉슨 동정론은 오늘도 변함 없이 살아서 변형된 상태로 존재한다. 살아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활개를 친다. 확대재생산의 진풍경을 자유자재로 연출한다.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서도 시치미를 뗀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이미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그 거짓말을 놓고 또 다른 '진실 타령'을 한다. 그 거짓말은 진의가 아니라는 말도 하고, '오보'라는 말도 하고, 그 말과 객관적 사실은 다르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말도 한다. 말이 말을 농락하고 강간하며 뒤죽박죽 요령부득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거짓말을 하고서도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하면, 거짓이 거짓을 낳고, 거짓이 거짓 위에 겹겹이 쌓이고, 그리하여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어놓는다. 사실은 그 요지경이 목적이다. 사람이 요지경 속에 빠지면 갈피를 잃고 정신을 못 차린다. 결국에는 그 요지경이 옳은 세상으로 보이게도 된다.

 

거짓이 드러났는데도, 진실을 능욕한 부정직함과 범법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한다. 그래도 지지를 한다.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이유는 걸작 급이다. 경제가 더 중요하지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도덕성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 태도는 자신도 잠재적 범죄인임을 자인하는 것일 수 있다. 나도 언제든 범법을 하고 남을 속일 수 있다는 예고 같은 것이기도 하다. 물론 비약이라고 하겠지만, 거짓과 범죄 사실을 용인하고 지지하는 것은 그대로 공범의 성격을 갖는다.

 

 

뻔뻔한 검찰 "도덕성은 평가하지 않는다"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이명박 주가조작 무혐의... BBK 이면계약서는 위조"라고 발표를 했다.
'BBK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김홍일 3차장 검사가 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브리핑실에서 "이명박 주가조작 무혐의... BBK 이면계약서는 위조"라고 발표를 했다. ⓒ 권우성

검찰을 보면 참 희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이명박씨가 자기 입으로 실체적 진실을 확인시켜 주는 명확한 자료가 제시되었는데도 도무지 '객관적이지 못한 말'로 외면을 한다.                  
 
'BBK는 김경준의 1인 회사'라는 검찰의 수사 결론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2000년 EBK 증권중개의 예비허가가 난 후 BBK가 마치 자기가 설립한 회사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닌 셈이 되는 이명박 후보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판단할 문제"라며 얼버무린다.

 

"검찰은 주가조작 공범이냐 아니냐 문제를 다룬 것이지 도덕성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도 하지만, 검찰은 모든 수사 관점과 행위에서 도덕성 문제를 결부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검찰이 될 수 있고, 법철학이라는 것도 산다.

 

BBK가 이명박 후보의 7년 전 말과는 달리 이명박 후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오로지 김경준 개인 회사라면 그것 자체로서도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명박 후보는 자기 회사도 아닌 회사를 자기가 설립한 회사라는 거짓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속였다. 완전 사기다. 그의 그런 거짓말에 속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그 회사에 투자를 했다. 그들 중에 이명박이 아닌 김경준을 보고 투자를 한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거짓말에 속아서, 김경준이 아닌 이명박을 보고 투자를 한 수많이 사람들이 졸지에 큰 손해를 보았다. 범죄 사실과 도덕성 문제가 그대로 결부되는 중대 사안이다. 어떻게 이런 사건에서 도덕성 문제를 분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도덕성 문제는 '여러분이 판단할 문제'라는 말을 태연히 할 수 있을까? 너무도 뻔뻔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애석하게도 우리의 검찰은 도덕성의 기반 위에 서 있지 못한 상태다. 모든 수사 관점이나 수사 행위에서 범법 사실에 도덕성 문제를 결부시킬 수 있는 안목도 지혜도 사명감도 없다. 전통적 토대도 빈약하다. 그들에게는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법 운용만 있을 뿐이지, 법철학이라는 게 없다.

 

좋은 머리로 오로지 고시공부만을 했을 뿐이지 폭넓은 세계를 공부하지 못한 탓이다. 출세주의에 지나치게 가치 비중을 둔 나머지 정의와 진실과 양심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말에서 모욕감을 가지고 노여워하기에 앞서 깊이 자성해야 한다. 범법 사실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도덕성 문제가 실은 더 중요한데도,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체질도 역사적 토대도 지니지 못한 우리 검찰의 그 한계와 허약성은 모든 국민의 불행이다.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며 한나라당이 끝내 지키려는 것은?

 

 16일 한나라당 시도의원, 당원 등 100여명이 창문을 통해 국회에 진입해 국회 직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본관 밖에서도 한나라당 관계자 300~400명이 경찰과 대처하고 있다.
16일 한나라당 시도의원, 당원 등 100여명이 창문을 통해 국회에 진입해 국회 직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본관 밖에서도 한나라당 관계자 300~400명이 경찰과 대처하고 있다. ⓒ 김당

범여권의 특검법 상정을 차단하기 위해 국회의사당의 의장석을 점거하고 극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슬픈 의문을 갖는다. 저들이 저토록 사생결단의 자세로 끝내 지키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이명박 후보의 '흠집'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명박 후보에게 흠집을 내기 위한 여당의 기도를 단호히 막아내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악착같이 멱살을 잡고 잡히고 밀고 당기며 엎어지고 자빠지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명박 후보의 흠집을 막으려고 하나? 그것이 왜 두려운가? 이명박 후보가 떳떳하다면, 그리고 그들 자신이 그것을 확신한다면 그것이 두려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이 더 쉽지 않은가? 또 그래야 분명하고도 확실한 성과와 정당한 승리를 얻을 게 아닌가?       

 

슬프게도 나는 그들의 용맹하고 잘난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왜소하고 못난 나를 느끼고 반추한다. 나는 왜 저들처럼 뻔뻔스럽지 못할까? 왜 저들처럼 후안무치하지 못할까? 기이한 의문에도 젖고 회한에도 젖는다.

 

저들처럼 세상에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국정을 논하는 국회의원도 아닌데, 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고 남의 눈을 두려워하며 사는 걸까? 

 

그러며 나는 '우리도 과연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있을까?'라는 괴이한 의문에 뼈아픔을 느낀다. 30여 년 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떠올린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위대하게 보였던 청년 시절의 그 사유들을 반추한다. 최근 동년배 한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을 때, "미국은 미국이고 우리는 우리다"라는 답변을 듣고 얼마나 황당함과 절망을 느꼈던가.

 

도덕보다 경제가 우선이라는 사람들, 검증되지도 않은 능력을 도덕성보다 우위에 놓는 사람들, 수리에 밝은 눈으로 법을 재는 두뇌와 능력은 있지만 스스로 도덕의 기반을 닦는 일에는 무관심한 검찰, 자당 후보의 흠집 보호에만 혈안이 되어 말을 농락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배들의 후안무치가 굳건히 존재하는 한 우리는 경제 발전과는 상관없이 결코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간, 오늘도 기름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바다가 갔다가 돌아오니, 이런저런 심회가 너무도 무거워 또 한번 즐겁지 않은 글을 써보았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선거 후에 더욱 걱정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이명박#BBK#한나라당#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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