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이 12월 18일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실시한 첫 해상 미사일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고 국내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 실험에서는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이지스함 '곤고'호에서 발사된 스탠다드-3(SM-3)이 미군측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정확히 요격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해상 미사일방어(MD) 능력을 확보한 국가가 되었다.
지난 3월 도쿄 북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최신형인 PAC-3를 최초로 배치한 일본은 2010년까지 항공자위대 16곳에 PAC-3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또한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함 4척에 2011년까지 스탠다드 미사일-3(SM-3)를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실험은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PAC-3는 주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용으로 상대방의 미사일을 하강 단계에서 요격하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SM-3는 이지스함에 탑재되는 요격미사일로 상대방의 미사일이 대기권 안팎에 다다른 비행 중간 단계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일본이 PAC-3에 이어 SM-3를 배치한다는 것은 지상과 해상, 그리고 종말 단계와 중간 단계에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이중 요격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MD는 평화헌법체제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1998년 말부터 미국의 MD계획에 참여해온 일본은, 당초 2004년까지 기술연구를 하고 개발배치 여부는 기술연구의 타당성을 검토해 2005년 이후에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노골적인 압력을 받아온 일본은 당초 방침을 뒤집어 MD 배치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PAC-3와 해상 MD 배치를 획기적으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미일동맹의 MD 체제를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이유는 MD가 일본의 평화헌법체제를 무력화시키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2005년 6월 일본 중의원은 MD 법안을 통과시켜 방위청(현재는 방위성) 장관이 총리 및 내각의 승인 없이도 상대방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무너지고 있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MD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를 무력화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미일간의 MD 협력, 특히 정보교류는 동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의 미사일방어 작전에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을 불허하고 있는 평화헌법과 저촉된다는 해석이 유력했었다. 일본의 MD 참여가 평화헌법 개정의 시금석으로 간주되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봄부터 미일간에는 MD 정보협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 미국은 일본 방위청 산하 기관이 개발한 레이더(FPS-XX)의 정보공유를 승인받았다. 또한 미국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이지스함으로부터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도 제공받기로 했다.
또한 미국은 2007년 10월 일본 북부 아오모리에 있는 미사와 미군기지에 미사일 추적 기지를 건설했다. 합동전술지상기지(Joint Tactical Ground Station)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기지는 상대방 미사일의 비행 경로를 추적해 그 정보를 주일미군과 일본자위대에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 시스템 구축과 정보 공유를 통해 미일동맹은 북한, 중국 등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미사일 요격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MD 구성 요소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스템간의 정보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즉, 이지스함과 PAC-3, 그리고 조기경보레이더 등 MD 시스템은 각기 독립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정보공유를 통해 다층적인 요격체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미일 양국이 차세대 요격 미사일을 공동 개발하기로 한 것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요격 미사일은 미국이 개발 완료한 SM-3보다 사정거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써, 기존의 SM-3가 주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요격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미일 양국이 공동 개발하고 있는 신형 SM-3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요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이 미사일 개발 및 미국과의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신형 SM-3 부품의 대미 수출을 허용키로 했다.
이러한 점에서 MD는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할 수 있다. MD가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우경화를 억제해온 핵심적인 문제들, 즉 집단적 자위권 불허와 무기수출 3원칙, 그리고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일 강경파들이 북한과 중국 위협론을 최대 명분으로 내세워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MD, 불붙은 동북아 군비경쟁에 기름 붓나?더욱 우려되는 점은 미일동맹의 MD 구축이 가속화되면서 이미 불붙은 동북아 군비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에 있다. 동북아 6개국, 즉,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세계 총군사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0%에 육박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군비증강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당장 북핵 문제 해결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부터 걱정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핵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일 양국이 MD 구축을 서두르는 것은 이들 국가의 의도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특히 북한 군부를 자극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더욱 어렵게 할 소지가 있다.
미일동맹의 MD를 군사패권주의 강화 시도로 해석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도 주목된다. 동유럽 MD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제2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고 있는 러시아는 이미 공개적으로 미일동맹의 MD에 반대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지난 10월 "미일 양국이 군사적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MD 구축에 나서고 있다"며, "러시아는 미일동맹의 MD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러시아가 미일동맹의 MD에 공개적인 반대를 천명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동맹이 계속 MD를 추구한다면, 중국과의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고 동북아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미일동맹의 MD를 21세기 최대 위협으로 간주해온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MD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가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고 '중국위협론'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외교적인 대응은 자제해왔다. 그러나 지난 1월 위성파괴실험 실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력 강화에 몰두해왔다.
특히 중국은 미일동맹의 해상 MD 체제에 큰 우려를 갖고 있다.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egis Ballistic Missile Defense)는 이동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대만해협에 투입될 수 있다. 더구나 미일 양국은 2005년 2월 대만 해협 문제를 '공동의 전략 목표'에 포함시켜, 필요시 대만해협에 군사력을 투입시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상태이다.
'6자 군축' 추진해야흔히 북핵 문제를 가리켜 동북아의 최대 안보 불안 요인이라고 한다. 6자회담도 이러한 맥락에서 구성되었다. 그러나 정작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의 비핵화만 목청 높여 외칠 뿐, 자신들의 군비증강에 대한 비판에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또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6자회담을 동북아 평화체제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수사 이면에서는 상대방에게 뒤질세라 군비증강과 군사동맹 강화를 추구해왔다. MD는 상호간의 불신과 이로 인한 군비경쟁에 중심에 있기도 하다.
결국 동북아의 온전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불붙고 있는 군비경쟁에 '기름'이 아니라 '물'을 부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의 군축뿐만 아니라 6자 모두의 군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덧붙이는 글 | MD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