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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대통령을 뽑는 투표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 정선 땅도 예외는 아니다. 정선의 아침은 영하로 곤두박질 쳤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대지 위로 사람들 몇이 집을 나섰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집을 나선 이들은 서둘러 투표장으로 간다. 투표를 마친 이들은 하루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돈벌이 현장으로 가는 봉고차에 오른다. 아침 시간에 투표장으로 가는 이들은 대개 일을 하러 가는 인부들이나 노인들이다.

 

# 풍경 하나

 

 

아침 시간, 투표장은 한가하다. 식사 시간이 끝난 이후부터 사람들은 하나 둘 집을 나선다. 투표장으로 가는 도중 마을 사람을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짧은 안부 인사가 끝나면 곧바로 선거 얘기다.

 

"누가 될 거 같애?"

"언 놈이나 되겠지 뭐."

"자넨 누굴 찍을 텐가?"

"생각 중이여."

"예끼, 이 사람아. 투표하러 가는 사람이 아직도 그걸 안 정했어?"

 

시골에 사는 노인들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라고는 하지만 TV를 보지 않는 노인들은 후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저 선거라는 걸 하지 않으면 후환이라도 생길까 싶어 투표장으로 가는 노인들도 많다.

 

그러하니 누굴 찍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몇 번을 찍었는지만 아는 경우도 많다. 글을 모르는 노인들에겐 선거라는 게 당연히 참가해야하는 의식일 뿐 누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알 바 아닌 것이다.

 

# 풍경 둘

 

 

점심 시간을 전·후 투표장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쉬는 날이라 한껏 늦은 잠을 잔 터라 바람 쐬듯 투표장으로 간다. 운동복 차림이 많은 시골의 투표장은 모처럼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더 급하다. 

 

"자네 아들이 올해 졸업반이라 했지? 취직은 했는가?"

"공무원 시험친다고 고시원에 들어간다며 돈 부쳐 달라는 말만 하더구먼."

"휴, 큰 걱정일세."

 

아들 취직 걱정에 주름이 패이기 시작하는 중년의 얼굴은 날씨만큼이나 얼어 붙어 있다.

 

# 풍경 셋

 

정선읍 제1투표소에서 비교적 젊은 엄마들을 만났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엄마들에게 누굴 찍었냐고 물었다. 대답 없이 빙긋 웃는다. 대통령이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일 자리를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 다음은 요?"

"서민들 잘 살게 해주고, 장사도 잘 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엄마들의 바람을 들어보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어 보인다. 일 자리라는 게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시골에서 취직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는 말이 맞는 요즘이다.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의 정직도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요. 대통령의 정직도는 어떤가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쁘다 해도 대통령 만큼은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국민들을 잘 살게 해주는 것은 싫어요. 아이들에게 할 말이 없거든요."

 

젊은 엄마들의 말이 옳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국민들에게 정직하라고 요구할 명분도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 풍경 넷

 

 

버스 정류장에서 투표를 마친 이들을 만났다.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대답한다.

 

"노인들 편히 죽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촌엔 병원도 없잖어. 아프면 애들이 싫어해. 병원비도 비싸고 하니 아파도 그냥 참기만 해. 그러니 병든 노인들이 자식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죽을 수 있게 그런 병원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 

 

할머니의 말씀이 눈물겹다. 나라가 그런 거 정도는 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3시 현재, 정선군의 투표율은 52.9%이다. 같은 시각 강원도의 투표율 51.9%, 전국 투표율 47.9%보다 높다. 선천적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정선 땅. 정선 사람들이 선택한 후보 중 한 사람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그가 누구일지 알 수는 없지만 정선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들어주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공약이 또 헛 공약에 그칠지어도 사람들은 투표하는 순간만큼은 순박하게도 믿는다. 그게 이 나라의 백성이다.   

 

시골 동네라 후보자 연설 한 번 들어보지 못했지만, 정선 사람들은 투표장에 열심히 간다. 선거 기간 중 후보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정선 사람들은 나라의 큰 심부름꾼 뽑으러 이 시간에도 투표장으로 몰려간다.   

 

유권자 3만 4천여명의 강원도 정선. 전국 유권자의 0.09%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통령을 뽑는 일엔 어느 지역보다 부지런하게 나선다. 


#대선#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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