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을 사람이 없었다.” 당을 보고 찍을 수도 없고, 사람을 보고 찍을 수도 없고, 이 사람을 찍자니 뒷맛이 개운치 않고, 저 사람을 찍자니 불안감이 앞선다. 유권자의 확신 있는 선택을 불가능하게 했던 2007년 대선 상황.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이는 간단하다. 그것은 국민의 정치적 성향 분포와 이를 반영해야 할 실제 정계 구조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국정을 운영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가 갖는 대표적 폐해는 민주주의가 ‘엘리트 민주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역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층을 형성한다. 그리고 민의를 배제한 채 자신들만의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정치 엘리트들은 국민의 정치적 성향을 대변하면서 이를 세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국민의 정치적 성향을 왜곡한다. 과거 민주화 투쟁 시절에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 세력 내부에서 조차 정치적 차이는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현실 정치 구조가 국민의 정치적 성향 분포를 반영하고 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식적 민주화가 달성된 이후에도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이 각기 세력화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른바 지역 정치 구도가 국민의 정치적 입장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즉 정치 엘리트들이 지역성을 기준으로 이합집산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고, 많은 국민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지역성을 기준으로 투표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영호남간의 지역 정치 구조가 잔존하고 있었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지역성보다 민생과 경제 그리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중요했다. 따라서 2007년은 진정으로 국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투표할 수 있었고, 또 이를 정치적 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정치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기존 정치 구조는 ‘민주 대 반민주 구조’를 되살리려다가도 다시 ‘지역 대 지역 구조’에 집착 등 방향 상실의 위기감만을 드러냈다. 따라서 국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대변할 정치적 대표자를 찾지 못하고 표류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민의 정치적 성향 분포가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첫째, 같은 한나라당 세력이면서도 이명박 후보에 맞서 이회창 후보가 출마했다. 그리고 15%의 지지를 획득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지금까지 서로 상이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지역 연고 때문에 한나라당이라는 한울타리로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49%의 지지를 획득했지만, 과반수 집권여당 출신인 정동영 후보는 26% 득표에 그쳤다.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이른바 과거 노무현 지지 세력의 상당수가 이명박 지지로 이동했다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지지 세력 내에도 과거 반 한나라당 전선 때문에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국민들이 공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2004년 총선에서 13%의 득표율을 과시했던 민노당은 이번 대선에서 3% 득표로 급락했다. 비율상으로만 보면 민노당은 이번 대선의 최대 실패자이다. 과연 민노당을 지지했던 대다수 표들이 어디로 간 것일까? 그 답은 당연 민노당 지지의 두 배, 즉 6% 지지를 얻은 문국현 후보에게 있다. 따라서 과거 민노당 지지층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국민들이 혼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국민들은 크게 3개 층으로 구분되는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중도 실용주의 층, 그리고 그 좌우에 포진하고 있는 냉전보수 층과 개혁 진보 층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 구도는 어떠한가? 한나라당, 통합신당, 창조 한국당, 민노당, 민주당의 구조이다. 과연 이 정당들은 어떤 국민 층을 대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정당들은 정치엘리트의 권력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정당들인가? 분명 이 정당들은 이 세 가지 층의 정치적 성향을 각기 반영할 만큼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났듯이 공약을 보면 이 정당들은 다르다가도 비슷하고, 개혁적이다가도 더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자기 모순성을 드러냈다. 더구나 이 정당들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단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혼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07년 대선 결과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그것은 정계 개편이다. 기존 정치인들의 권력유지가 아니라, 국민들의 세 가지 정치적 성향을 각기 세력화하기 위한 정계 개편이 필요하다. 서로 다르면서도 한 울타리에 있었던 세력들은 분열해야 하고,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싸우던 사람들은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이는 정치적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을 제대로 대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분명 다가 올 총선은 그 심판대가 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만을 위해 이합 집산하던 정치가들은 낙선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정당들은 참담하게 몰락하는 심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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