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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농사를 하지 않는 농부는 겨울에는 말 그대로 겨우살이를 한다. ‘겨우살이’는 겨우 살아 내는 삶을 말하는데 활동량도 줄이고 먹는 양도 줄이고 만나는 사람도 줄이고 생각도 줄이고 숨도 더욱 천천히 쉬면서 사는 것이다.

 

곰처럼 겨울잠을 자지는 않더라도 여름보다 잠을 많이 자고 웬만하면 나 다니지 않고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한다. 결국, 겨울은 좀 웅크리고 살아야 제 맛이 나는 계절이라는 것인데, 시골생활의 대부분은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서 새로 왕성하게 시작하는 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나무하기다.

 

나무하기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산판을 한곳에는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힌 나무들이 많다.
나무하기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산판을 한곳에는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힌 나무들이 많다. ⓒ 전희식

 

이어져 있는 방 두 개를 오로지 아궁이 불로만 때는 우리 집은 나무하기를 겨울농사라 할 정도로 일거리가 많다. 땔감으로 쓸 나무가 어디 있는지 눈여겨 봐 두는 것은 평소 하는 일이고 지금은 산에서 나무를 끌어내려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패는 일이 매일 계속된다.

 

나무를 하더라도 젖은 나무는 마를 수 있는 충분한 틈을 두고 땔감을 마련해야 하므로 헛간이나 처마 밑에 쌓인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 잘 살펴야 한다. 봄철에 산판을 했던 곳에 가보면 잘 마른 땔감들이 있지만 대개 팔뚝보다 작은 나무들만 있어서 산비탈을 오르내리느라 힘만 많이 들고 트럭에 싣고 오는 것은 적다.

 

시내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일부러 공사판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공사판에서 쓰고 버리는 나무들은 각목보다는 유해접착제를 섞어 눌러 만든 집성목 합판이 많은지라 땔감으로는 쓸 수가 없다. 병들어 죽은 나무도 큰 것은 관청 허가를 받고 베어야 하니 쉽지가 않다.

 

이렇게 땔감 걱정이 슬금슬금 커 가는 때, 지지난주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장정 세 사람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30년도 더 된 옛 친구들인데 ‘계곡 청소 겸 땔감 줍기 겨울캠프’라고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지어 붙이고는 삼겹살과 술 한 상자를 사 가지고 찾아왔었다.

 

산골에 어머니를 모시고 홀로 산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늙으시고 병드신 우리 어머니 덕분에 이런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기도 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지난 여름 장맛비에 떠내려 온 나무들을 주워 올리기 시작했다. 불어났던 강물에 휩쓸려 뿌리가 드러난 채 죽어 있는 나무는 여럿이서 영차영차 해 가며 길 가로 끌어냈고 바위틈에 박혀 꼼짝달싹도 않는 통나무는 톱으로 잘라서 어깨에 메고 왔다. 한 친구가 투덜댔다.

 

“종일 나무하러 다녀도 선녀는커녕 할머니 한 사람도 구경 못하겠네.”

 

정말 그랬다. 우리 네 사람이 하루 종일 계곡과 산을 뒤졌는데도 사람 구경을 못했다. 나는 귀농을 하고서 십수 년을 산에 가서 나무를 해 봤지만 산에서 나무 하면서 단 한 번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이 친구의 푸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선녀도 도시로 갔겠지 뭐. 자네들 같은 사람들이 다 떠나버렸으니까 말이야.”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오기가 생겼다. ‘사람 말고 선녀’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긴 것이다. 친구들이 돌아 간 다음 나는 혼자 산에 올라 다녔는데 그때마다 꼬박 꼬박 다짐을 했다. ‘선녀를 만나야지’ 하고.

 

며칠 동안 계속 그렇게 했지만 허사였다. 인적이 없는 산 속에서 어머니랑 단 둘이 살면서 재미있는 시도를 해 봤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아쉽지만 선녀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다음 생각 난 것이 산 속에 산다는 신령님이었다. 번쩍거리는 금도끼를 들고 “이게 네 도끼냐?” 하는 산신령님이나 만나보자 싶었다.

 

근데 산에 도끼를 가지고 갈 일이 없다보니 고민이 생겼다. 산신령이 있다고 한들 달라진 세태를 반영해서 트럭을 몰고 톱만 가지고 나무하러 다니는 나무꾼한테 금도끼 대신 금 톱을 가져와 바꾸어 줄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짐스러운 것이 아니니까 톱과 함께 도끼도 한 자루 가져 다녀 볼까 싶었지만 도끼를 빠뜨릴 연못이 우리 동네에는 없다는 것이 애석했다. 이런 상상 덕분에 산비탈을 미끄러져 가며 안전화 속에 흙을 가득 담아 내리는 땔감 하기가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진짜 무슨 소설 같지만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짜 선녀가 나타났냐고? 음.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현대판 선녀.

 

그날. 여느 때처럼 산길을 따라 죽 올라가다 한쪽으로 트럭을 세우려고 하는데 차를 돌리는 곳에 낯선 트럭이 한 대 서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화상이 차를 저 곳에 세워두셨나 싶어 혀를 끌끌 찼다. 덕분에 내 차는 돌리지도 못하고 그냥 둔 채 산으로 올라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차량 번호가 대전으로 되어 있기에 참 먼 데서도 왔구나 싶었다.

 

이곳 산 길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차를 저렇게 댈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메모를 해서 그 트럭 운전석 출입문짝에 꽂았다. ‘이 자리는 차를 돌리는 곳이라 차를 세우면 안 됩니다’라고 쓴 쪽지를 차창에 꽂는데 워낙 날씨가 춥다보니 차창의 고무패킹이 굳어 있어서 그 얇은 종이 한 장도 끼워 넣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낑낑대다가 침을 발라 붙여 놓고 산을 올라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휙 돌아보았다. 저쪽 산비탈에서 한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차가 올라 올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참 낑낑대며 내가 뭔가를 자기 트럭에다 끼워 넣는 것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안녕하세요?” 했다. 그 남자는 대꾸도 않고 내 쪽으로 한 발자국 움직이면서 퉁명스럽게 “내가 그 차 주인이오” 하는 것이었다. 나도 바로 맞받았다. “나는 저어기 저 아래쪽 오두막 주인이오”라고.

 

그 사람은 계속 멈칫멈칫 하고만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 일은 다 잊고 계속되는 톱질에 이마에는 구슬땀이 솟고 숨은 차올랐다. 여러 날 날이 건조 한 덕에 산에서 끌어내려 놓은 나무들이 제법 말라 있어 할 일이 많았다.

 

이때였다. 산돼지가 나타난 줄 알았다. 뒤쪽에서 갑자기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움찔 놀라며 휙 돌아 봤는데 깨끗한 잠바를 입은 인상 좋은 60대 초반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트럭 주인이었다. 굳이 반대쪽 산기슭으로 나를 만나러 온 이유는 간단했다.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시골을 가더라도 이제는 인심이 고약해져서 차 한 번 잘 못 세워두면 농기계 못 다니게 차를 더럽게 세운다고 욕을 먹고 차가 긁히는 등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어째서 차 빼라고 소리 칠 줄 알았더니 먼저 인사를 다 건네오”라고 했다. 더구나 ‘저 아래 오두막 집 주인이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어져서 왔다고 했다.

 

예사롭지 않은 분 같았다. 그딴 일로 찾아 올 사람이 흔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십 년 입산 수행을 하시는 분이었다. 서로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저절로 도담(道談)이 된다. 급기야는 그분이 그날 캔 것이라면서 장뇌삼 한 뿌리를 내 놓았다. 10년 근은 충분히 되어 보이는 삼이었다. 무주군에 사신다는 이 분은 그 비싼 장뇌삼 한 뿌리를 놓고도 싱글벙글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흐르는 물에 흙만 털어내고 잔뿌리 채 꿀에 버무려 어머님께 드렸다. 뒤늦게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요즘 선녀는 두레박 타고 다니지 않고 트럭을 타고 다닌다는 사실과 산에서 선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알아채지 못하고 늘 그냥 지나쳤음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삶이 보이는 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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