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한 짝을 다 다듬고 나니 양 손이 성한 곳이 없었다. 손등, 손가락 할 것 없이 날카로운 조기 이빨과 지느러미에 찔리고 긁혀 생선 좌판 아낙의 손등과 진배가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뿌듯했다. 수십 마리도 아니고 무려 300마리. 수백 마리의 조기를 소금에 버무려 대여섯 시간 절인 뒤 일일이 지느러미를 자르고 비늘을 벗기는 수고를 거쳐 굴비가 탄생하기까지 꼬박 1박 2일이 걸렸지만 내가 만든 굴비를 맛있게 잡수실 부모 형제 얼굴을 떠올리면 힘든 줄을 몰랐다. ‘사서 고생’이란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밥상에 올릴 만한 굴비 한 두름 값이라봤자 만 원 안팍이 고작일 텐데 이 난리를 치니 말이다. 그러나 사서 먹는 굴비와 내가 만든 굴비의 가격과 맛을 비교해 보건대 이 정도 고생은 일도 아니었다. 내 손으로 굴비를 만들게 된 계기는 얼마 전 오일장 생선전을 구경하고서이다. 저녁 밥상에 올릴 매운탕 거리를 살까 하고 기웃거린 생선전에 아랫배가 황금색인 싱싱한 참조기가 눈에 확 들어 온 것이다.
통통한 참조기를 이리저리 살피는데 생선전 아저씨가 조기 매운탕 맛이 최고란 말씀을 하셨다. 더구나 지금이 조기철인 데다 조기 풍어까지 찾아와 가격도 그 어느 때보다 싸단 말도 덧붙였다.
크기도 제법 큰 참조기 한 무더기가 만 원. 끓여도 먹고 남은 건 소금에 절여 꾸둑꾸둑 말렸다 구워 먹어도 좋겠단 생각에 덥석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장 한 바퀴 구경을 더 한 뒤 다시 생선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왕 말릴 거 더 사서 친정 부모님에게 보내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파장에 들른 생선전에선 굵은 조기는 대충 팔리고 잔챙이들만 수북이 놓여 있었다. 대충 눈짐작에 반 짝은 돼봄직한 참조기 가격을 물었다. 생선전 아저씨는 떨이니까 삼만원만 받겠다고 했다. 아무리 잘아도 그렇지 참조기 반 짝에 삼만원이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저씨한테 소금 간까지 해달라고 부탁하고 얼마 후에 씻으면 좋겠냐고 하니 4~5 시간이면 충분하단다.
그 날 밤 새벽 1시까지 조기 손질에 매달렸다. 잘아도 개수는 ‘솔찮아’ 무려 150개나 되었다. 대소쿠리, 플라스틱 바구니 하여튼 구멍 뚫린 것은 모두 동원해 조기를 죽 깔고 밤새 선풍기를 틀어댔더니 다음 날 꾸둑꾸둑 할 정도로 건조가 되었다. 난생 처음 내 손으로 완성한 굴비. 노릇노릇하게 구워 밥상에 올렸더니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삼삼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육질, 입맛에 짝짝 달라붙는 별미였다. 시장 것이든 백화점 것이든 숱한 굴비 맛을 보았지만 이렇게 맛있는 굴비는 만나보질 못했다. 모처럼 선물로 받은 굴비, 품질로 따지자면 상품에 속했겠지만 역시 그 맛이 그 맛이었다. 간이 너무 세 짜거나 아니면 육질이 질겨 많이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만든 굴비를 부모 형제들에게 골고루 돌려 맛을 보였더니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야단이었다.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어린 조카들도 한두 마리를 뚝딱 해치웠다는 소식이고 식탐이 별로 없는 엄마도 당신 밥그릇 가까이에 굴비 접시를 끌어들여 젓가락질을 부지런히 하셨다는 정도였으니 일단 성공이었다.
가시에 찔린 상처가 하도 많아 두 손이 엉망이 됐지만 하나도 힘들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줄 수 있어 행복한’ 이 기분, 문득 이십여 년 전 풍경이 떠올랐다. 아는 언니 집에 들렀더니 언니가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배에서 말린 오징어 열 마리를 나눠주었다. 그때만 해도 주전부리 하자고 비싼 오징어를 산다는 게 쉽지 않아 오징어 열 마리 얻은 것이 오지기 짝이 없었다.
그냥 오징어도 아니고 배오징어 같은 귀한 선물을 받고 사는 언니가 부러워 "이런 선물도 받고 살다니 대단하다" 했더니 언니가 다짜고짜 '퉁박'을 주는 것이었다. "이런 멍청이, 얻어먹는 게 뭐가 좋아? 주고 사는 게 좋지…" 언니 말대로 주고 나면 내 배가 다 부른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