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1일(1월 22일). 밖에서 냄비가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깼다. 식탁은 이미 말썽꾸러기 원숭이들의 세상이었다. 쓰레기를 뒤지고 냄비를 핥고 널어놓은 양말을 가져가고…. 뻔뻔한 원숭이는 소리를 질러도 도망가지 않는다. 다행히 음식물은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은 먹을 수 있었다.
전래 동화에서는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가 게와 싸우다가 엉덩이를 물린 상처라고 했다. 하지만 원숭이 중에는 엉덩이가 검은 종류도 있고, 심지어 털로 덮여 있는 종류도 있으니 모든 원숭이가 싸움을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빨간 엉덩이의 비밀은 하얗고 얇은 피부다. 피부가 너무 얇아서 얼굴과 엉덩이처럼 털이 나지 않은 곳에는 피부 밑의 모세혈관이 그대로 비쳐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엉덩이가 빨간 원숭이는 얼굴도 빨갛다.
엉덩이는 이성에게 구애를 할 때 더욱 붉어진다고 하니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는 맘에 드는 이성을 부르는 수단으로 발달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도 맘에 드는 이성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처럼…. 또 하나, 피부가 얇다고는 하나 사람의 볼이 꼬집어서 터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빨간 엉덩이도 그다지 약점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프리카에 문명이 있었다?
원숭이에게 뺏긴 양말 한 짝을 포기하고 그레이트 짐바브웨 석조 유적지로 출발했다. 어젯밤 유적지 안에서 잤기 때문에 입장권을 따로 끊을 필요는 없었다. 우리에겐 낯선 이야기지만 이곳은 사하라 사막 남쪽에도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적이다. 오랫동안 유럽의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 북쪽에는 이집트 문명 등이 발달할 수 있었지만 남쪽에는 미개한 종족들만이 살고 있었다고 여겼었다.
관목 숲과 넝쿨에 숨겨져 있던 폐허도시를 발견한 유럽인들은 이곳이 예전에 백인조상들이 만들었거나 시바여왕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세운 도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바여왕은 솔로몬왕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문제를 냈었던 에티오피아의 여왕이다. 그들은 모르타르를 바르지 않고 정교하게 쌓아올린 이 성벽을 미개한 아프리카인들이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과학적인 연대측정법이 가능해지면서 이 건축물들이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졌으며, 카랑카족이 세운 거대한 제국의 유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의 도시는 월드컵 경기장의 100배 정도 되는 면적에 세워졌는데 언덕구역(Hill Complex)과 원추형 탑이 있는 대구역(Great Enclosure), 주거지 계곡 구역(Valley Enclosure)으로 나뉜다.
첨탑 위에는 짐바브웨 버드
유적지 입구에는 어제 예약했던 가이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화강암 언덕 위에 세워진 언덕구역으로 올랐다. 언덕구역은 육중한 돌산 정상에 그 바위들을 기둥 삼아 또는 벽을 삼아 성을 쌓았다. '낙석주의'라는 팻말을 보아가며 돌들을 밟고 올라갈수록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건너편의 대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데도 긴치마를 입고 굽 높은 구두까지 신은 가이드 아가씨는 언덕을 잘도 올랐다.
일부는 무너져 내리고 일부는 남았지만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요새라기보다는 왕족의 의식용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고개를 숙이고 작은 문을 통과하니 궁터가 나오는데 이곳의 돌들은 어떤 접착제도 쓰지 않고 잘 다듬어진 화강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다. 틈새를 잘 맞추어 쌓은 곳들은 그 정교함을 보고 놀라워하면서도, 지금이라도 힘껏 밀면 무너질 듯한 곳도 보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심스럽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최대의 고대 구조물가파른 옛길을 통해서 화강암 언덕을 내려왔다. 이 넓은 유적지에 관광객이 우리 밖에 없었다. 많지 않은 관광객에 유적들도 평화로워 보인다. 대구역이라 불리는 성벽은 10m 높이에 3m 두께로 255m의 둘레로 쌓았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고대 구조물이다.
이곳의 성벽 역시 각각의 크기에 맞추어 정교하게 자는 화강암 블록을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았다. 지그재그로 쌓아 갈매기 무늬 장식을 만들기도 했다. 이곳은 왕족의 구역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북쪽 입구로 들어서니 외벽과 내벽의 이중구조 속에 갇힌 모양이 되었다. 적이 이곳까지 침입하더라도 꼼짝없이 갇히는 셈이다.
개미는 천하장사 한낮의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잠시 땀을 식히기 위해 모자를 벗고 야자수 아래 돌 의자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유적을 보러 왔다기보다 야외소풍을 나온 느낌이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풀들이 자라고 있고, 노란색 꽃이 가득 핀 꽃밭에는 나비와 벌들이 꽃의 꿀을 빨고 있다.
바닥에는 개미들이 왜 이리 많은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옆에는 퍼 올려진 흙 알갱이들이 작은 언덕처럼 쌓여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몇몇의 개미들이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잠자리를 옮기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개미와 같은 곤충들이 힘이 센 것은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곤충의 근육이 특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만화영화일 뿐 실제는 아니다.
개미의 힘의 정체는 중력의 차이이다. 개미처럼 작은 벌레는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많은 근육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벼랑 끝에 매달려있을 때에도 근육의 일부만으로도 몸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먹이를 끌고도 절벽을 오를 수 있다. 그에 비해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은 자신의 근육만으로 몸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곧 떨어진다. 그렇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코끼리를 상상한다면….
흰개미들이 쌓아올린 고깔모양의 개미집을 발견했다. 이런 모양의 개미집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초원을 지나면서 수없이 보아왔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 흰개미는 밖에 나가면 피부가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대부분 지하의 개미집이나 죽은 나무 안에 산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곳의 흰개미들은 사람 키 높이 정도의 속이 텅 빈 탑 모양의 집을 짓는다. 일개미들이 타액으로 흙을 뭉치고, 운반하고, 햇빛에 말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이 필요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의 일교차를 피할 수 있는 그들만의 방법이다. 땅 속의 집은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급속히 열이 식어버렸다. 지상에 흙으로 세운 개미집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고 습기의 손실도 막아주는 그들만의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와 베짱이는 겨울에 만날 수 없다우리에게 부지런한 개미의 이미지를 굳혀준 것은 아마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일 것이다. 동화를 보면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고 놀고, 개미는 겨울에 먹을 음식을 마련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추운 겨울이 되어 베짱이가 개미에게 식량을 얻으러 가지만 자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개미가 겨울을 준비한다고 했으니 일단 온대지방에 살고 있는 개미 종류인 모양인데, 온대 지방에 사는 개미 종류들은 모두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먹이가 필요 없다. 또 노래만 부르고 놀던 베짱이는 개미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짝을 찾기 위해 수컷이 암컷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이다. 이렇게 만난 수컷과 암컷은 가을에 자신의 유전자가 담긴 알을 낳고 죽는다. 알은 땅속에서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으니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러 갈 필요가 없다.
이솝아저씨~ 거짓말 하셨어요!석조유적 그레이트 짐바브웨는 야자수와 무성한 풀, 들꽃, 성벽 속에 사는 도마뱀과 땅굴 파는 개미, 나른한 오후의 햇살 속에 짝짓기하며 날고 있는 파리까지…. 이곳은 작은 동물들의 거처가 된 지 오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