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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광 동화집 <말더듬이 원식이>(우리교육,1995)
 김일광 동화집 <말더듬이 원식이>(우리교육,1995)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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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일광의 동화를 읽으면 우선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그의 작품이 우리 주위에서 늘 소외받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따스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김일광의 이런 작품들을 읽는 독자는 어떤 때는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그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받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읽어가다 외롭고 불쌍한 이들의 가슴이 아프지만 맑은 이야기에 감동하고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쏟아내는 작가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김일광의 동화는 어렵지 않고, 아이들이 읽을 때 쉽게 다가오는 쉬운 문장으로 대부분의 작품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장은 문법적으로 정확하다.

이미 문학적 명성이 문단에 널리 알려진 기성작가들 가운데는, 멋을 잔뜩 부려 내용 이해가 곤란한 작품이 아직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런데 그렇게 멋을 잔뜩 부린 작품의 문장은 열에 아홉은 엉터리 문장(비문)이다. 이는 그 작품을 읽는 아이들의 내용 파악에도 곤란하지만, 글쓰기 공부에도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오래 전에 출판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는 <말더듬이 원식이>(우리교육, 1995)는 모두 14편의 작은 이야기들로 구성된, 그의 둘째 창작 동화집이다. 여기에 실려 있는 14편 모두가 재미있고, 또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다. 필자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 작품은 두 작품, '정현이'와 '말더듬이 원식이'가 그것이다. 모두가 생활체험 속의 진실된 이야기들이다.

먼저, '정현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기 때문에 늘상 외로움을 타면서도,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던 정현이"와 선생님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정현이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학교에서 늘상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 아이다.

학교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아무렇지도 않게 결석을 했으며, 학교 오다가 중간에서 놀아 버리는 일도 잦고, 학교에 왔다가도 슬그머니 없어지는 바람에 찾느라 온통 소동을 벌이는 어떤 선생님도 이 아이의 담임을 맡지 않으려는 그런 문제아이다. 이야기는 체육 시간에 정현이가 또 없어진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때마침 선생님의 지갑이 없어진다.

아이들 모두 나서서 겨우 정현이를 찾았는데, 로터리 부근 새로 생긴 장난감 가게 앞에 정현이는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지갑이 없어진 것이 정현이 짓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그 장난감 가게까지 정현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선생님은 마음 속으로 벌써 정현이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체육 시간에 못 나간 것은 원래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모자라는 정현이에게 아이들이 체육 시간을 일러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혼자 있다가 아침 학교 길에 봐 두었던(학교에 온다고 충분히 보지 못한) 그 신기한 장난감 가게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선생님의 지갑은 그 가게 앞에 있는 서점 주인이 그때 가져온 것이다. 선생님이 아침 출근길에 급히 책을 사고, 서점에 놔두고 간 그 지갑을.

그래서 선생님은 정현이를 죄인으로 생각한 것을 가슴 속 깊이 뉘우치면서 정현이를 껴안으며 정말 미안하다며 잘못을 빌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 시간 중에 정현이의 발길을 돌리게 한 가게 안의 로봇 장난감을 정현이에게 사 주기 위해 선생님이 정현이 손을 잡고 가게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 이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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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면서 필자가 잠시 생각했던 것은 동화에 있어서의 작가의 진실성 문제였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과 더불어 일방적인 교훈 전달에 얽매이면 동화의 진실성은 살아남기 어렵다.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화자인 듯한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 교훈(작품의 주제)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아이를 의심하여 죄인으로 생각하는, 좀 모자라는 정현이보다도 어쩌면 모자라게 나온다. 이것은 진실이다. 다른 사람을 쉽게 의심하고 그리하여 쉽게 죄인으로 단정짓는 사람이 오늘 우리 사회의 어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야기의 진실성을 통해 작가는 동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바른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 작품 속에서의 교육은 언제나 착한 사람의 이야기로써, 혹은 이것저것을 하지 말라는 금지형의 내용으로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음은 이 동화의 표제작이기도 한 '말더듬이 원식이'. 앞서 정현이와 마찬가지로 말더듬이 원식이도 문제아이다. 결석을 밥 먹듯이 했으며, 그날이면 어김없이 물건을 훔치다 잡혀오곤 하는 지독한 말썽꾼. 3월 초, 원식이가 학교에는 오지 않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멀리 가려다 붙잡혀 포항역 역무원에게서 연락이 온다.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하려다 본 생활기록부에는 '아버지 3년 전 돌아가심. 어머니 행상. 전화 없음'이라고 적혀 있다. 원식이는 사흘이 멀다하고 학교에는 오지 않고 대신 길거리 가게에서 물건 훔치다 잡혀 전화 연락만 자꾸 온다. 선생님이 그동안 없어진 물건을 변상도 하고, 각서를 써 주는 일도 여러 번.

그러면서 선생님은 원식이에게 눈길을 떼지 않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챙겨 주고 손을 잡아 주며 늘 가까이 두려고 한다. 곧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데. 문제는 방학이다. 그동안 하루 종일 학교에 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선생님 때문에 많이 가다듬어진 원식이가 하루 종일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이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원식이 어머니의 걱정은 곧 선생님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방학이 되어 집에 있어도 원식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던 선생님은 결국 원식이 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원식이 집안 사정과 원식이가 무엇이든지 훔치는 못된 버릇의 원인(원식이가 막 걸음마를 배울 때, 원식이 아버지가 돈 벌겠다고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더위와 모래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오고 병을 시름시름 3년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무엇이든 갖고 싶을 나이 때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것 때문인지 원식이는 그때부터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저도 모르게 들고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원식이를 데리고 선생님은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가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원식이는 노동의 땀과 자연의 순리를 몸으로 깨우치고, 사람의 정(情)을 맘껏 느끼고 돌아온다. 시골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원식이는 어머니가 따라오지 말라 해도 어머니보다 먼저 수레를 끌며 어머니 일을 도우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학기가 되어도 결석을 하지 않던 원식이가 자전거를 훔치다 잡혀 있다며 파출소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선생님이 이만저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용을 알고 보니, 자기 집 앞에 있던 임자 없는 자전거를 임자 찾아주려고 하루 종일 골목을 헤매다니다 그렇게 된 것이다.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원식이가 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전거를 주인을 찾아 주겠다고 하루 종일 길을 헤매다닌 것이다. 그런데 파출소 아저씨가 자전거를 막무가내로 훔쳤다고 죄인취급을 하면서 현장 조사한답시고 원식일 울리고 만 것이다.

필자는 위 이야기가 작가 김일광 자신의 생활 체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한다. 언젠가 사석에서 작가는 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이 동화가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 어느 만큼이나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있는지, 또 얼마나 어른들 자신의 잣대로 아이들의 행동을 재단하는지를 반성을 하게 한다. 그리고 위 선생님의 노력처럼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문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잘 말해주고 있다.

위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이 읽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 읽어봐야 할 작품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서도 말을 잘 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아이가 있는데, 작품 속의 선생님과 비교해 보면서 많은 반성을 스스로 하게 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에서 시작 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 동화집 '머릿말'에서 사랑과 화해가 동화의 정신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작가의 말대로 이 동화집도 사랑과 화해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이웃들을 향한 관심과 뜨거운 사랑, 화해의 정신이 있어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바른 사회,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이 마음을 어른들은 자신들의 삶에만 얽매이다 잃어버리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찬 바람이 거리를 휩쓰는 크리스마스 때면 매년 어김없이 낡은 외투를 입고 외출을 나가시는 아버지. 그 뒤를 도담이가 몰래 따라나서며 보게 된 자신에 비하면 너무나도 불쌍한 친구들을 남몰래 보살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넘쳐나는 '낡은 외투'.

아이를 업고 밤까지 일하기 때문에 늦게 찾아 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아주머니에게 침대 맡에 두면서 자기가 가장 아끼던 곰 인형을 선뜻 내주는 꼬마 수민의 따스한 사랑이 담겨있는 '수민이의 곰 인형'.

월남전에 참전하다 몸이 성하지 못한 이들의 자식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실로암 마을 학생 기숙사'가 동네 아파트 뒤로 새로 들어오면서 생긴 마을의 집단적인 문제가 아이들의 학예발표회 때 함께 부르는 노래로 화해를 하게 되는 '함께 부르는 노래'등은 모두 사랑과 화해가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작은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에 눈 먼 아저씨가 새들을 다 쫓아 내고 끝내 자신마저 다시 무너져내리는 '새들이 떠난 산밭', 게으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거부하던 박새가 자신이 막상 어려움을 당했을 때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의 '박새가 얻은 집'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육성이 강한 내용의 이야기들이다.

작가 김일광이 동화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주된 색깔은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힘과 돈이 없어 보잘 것 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이다. 그리고 동화집에서 그의 사랑은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서 동물과 같이 자연에게까지 이어진다.

자동차 매연과 다른 공해 물질에 의해 도시에서 살짐 못하고 흰둥이가 일러준 흰둥이의 고향마을인 시골로 참새들이 떠나고 그곳으로 가지 못한 흰둥이가 그곳을 그리워하는 '흰둥이의 꿈'이나 아기 참새를 살려내려는 환이와 석이의 필사적인 노력을 그린 '아기 참새와 아이들', 도시에서는 어려운 까치집 짓기를 도와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까치집', 사람들의 돈 욕심에 붙잡혀 차가운 시장 바닥에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오소리를 구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오소리의 겨울잠' 등은 모두 작가의 사랑이 자연에까지 이어진 작품들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을 읽고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봄날에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여린 새싹들처럼 싱싱하며 건강한 생각들을 가진 고운 아이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온다. 그리고 이 동화집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자라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우리말 교육을 충실히 하고 있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동화집에는 요즘의 아이들이 잘 모르고 있는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대뜸(13면), 남세스럽다고(21면), 잰걸음과 가로수 둥치(22면), 달래고 어르고(30면), 자지러지듯이 울어대던 매미 소리(33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34면), 동그마니(35면), 자부룩하게(39면), 샐쭉 토라져서(78면), 명아주와 바랭이, 비름들이(93면), 화들짝 뛰어오르더니(117면), 횟대(148면)" 등이 필자가 여기저기에서 아무렇게나 뽑아본 아름다운 우리말들이다.

문학의 토양과 지평이 점차 척박하고 천박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진다. 만화, 비디오, 컴퓨터 등의 매체에서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폭력과 외설적인 내용에 요즘의 우리 아이들은 너무도 쉽사리 방치되어 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오히려 올바른 문학 작품의 역할은 더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과 재미를 솔솔 안겨다 주는 김일광의<말더듬이 원식이>는 아주 값진 것이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그림 공부를 한 남수진씨의 멋진 삽화 그림이 동화집 <말더듬이 원식이>를 더욱 빛내고 있다. 분명하고 굵은 선과 추상적인 구체적인 선명한 사물 처리는 동화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듯한 크고 맑은 눈동자의 정현이 모습이 너무 귀엽다.

김일광의 동화에서 우리가 가지는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끝마무리가 안이하게 처리된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어른들의 집단적인 문제가 학예발표회 때 아이들의 노래에 쉽게 화해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게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삶의 이야기를 인과관계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동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는 있다.

"골짜기에 난(蘭)은 맞는 이가 없어도 향기를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은 아동 문학에서는 고쳐져야 한다. 아이들의 정신적 성장에 소중한 향기가 되는 작품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많이 읽혀야 한다. 이 일을 아이들 스스로 처음부터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학교의 선생님과 집에서 엄마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 스스로가 좋은 작품을 골라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집에서 부모와 학교에서 선생님이 문학 작품 감상의 출발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말더듬이 원식이 - 쑥쑥문고 8

, 우리교육(1995)


#김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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