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 이야기에서 스님 얘기로 국망봉에서 1394m 상월봉까지는 10여 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이다. 이 길에도 역시 눈이 잔뜩 쌓여있다. 국망봉을 넘으면서부터는 사람들의 흔적이 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새밭이나 초암사 쪽으로 하산하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도계답사를 하는 우리 팀과 신선봉을 지나 구인사 쪽으로 하산하겠다는 삼성전자 팀이다.
상월봉에 가까워지니 상월불로 알려진 큰 바위가 동쪽을 향해 우뚝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 바위를 상월불각자라고 부르는데, 구인사를 처음 세운 상월원각 스님이 이곳에 수시로 올라 이 바위를 보면서 깨달음을 얻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한다. 그런 영험 때문인지 상월 스님은 1967년 1월 천태종을 다시 열었고, 천태종은 지금 수십만의 신도를 가진 불교 제3의 종파가 되었다. 우리는 상월봉 아래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쭉 같은 키 작은 관목들이 바람을 가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포근한 상태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상월불을 넘어뜨리려면 몇 사람이나 매달려야 할까"하고 누가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해 나는, 글쎄 한 천명은 매달려야 할 것 같은데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물건을 들어올리는 유압잭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거든다. 준비한 도시락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한결 든든하다. 우리 일행은 다시 탐사길을 재촉한다.
지루한 백두대간 길에 처녀치마가 상월봉에서 늦은맥이 고개까지는 다른 곳에 비해 고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상월봉이 1394m인데, 늦은맥이 고개가 1220m이니 약 170m쯤 내려가는 길이다. 그래서인지 몇 군데 가파른 내리막길이 있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기도 한다. 길이 북쪽으로 나 있어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였기 때문이다. 늦은맥이 고개에 이르니 지나온 비로봉까지가 5.2㎞, 앞으로 갈 마당치까지 6.5㎞, 새밭(乙田)까지 5.1㎞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272m봉을 지나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마당치로 향한다. 이곳에서부터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주 드물다. 최근에 한 사람이 지나갔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발자국을 덮은 형상이다. 그나마 그 발자국이 길을 안내해 주는 구실을 한다. 선인이 간 길이 나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옛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이 길에는 토끼와 같은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식물의 분포도 바뀌어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 물푸레나무 군락도 보이고 소나무도 중간 중간 많이 보인다. 이곳 소백산의 해발 1100m 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바로 참나무 종류이다. 조금을 더 가다 윤석주 선생님이 눈 아래에서 처녀치마를 찾아낸다. 땅바닥에 바짝 붙어 파란 잎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식물들이 봄이 되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런 계열의 식물로 냉이, 복수초, 얼레지 등이 있다고 설명을 한다. 식물들의 이름들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말 사랑은 식물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 같다. 처녀치마라는 이름도 정말 상쾌하고 신선하다. 하얀 눈 속에 보이는 푸른 잎 역시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처녀의 파란색 치마처럼. 처녀치마는 지루하기만 한 백두대간 길에서 한 줄기 빛이다.
연화 마을을 찾다 앉은 바위 마을로
국망봉에서 5㎞, 앞으로 갈 고치령까지 6㎞ 정도 남은 지점에 이르러 우리는 조금 고민을 한다. 과연 이렇게 지루한 길을 계속 가야하는지, 아니면 단산면 좌석리 연화동으로 내려가 마을탐사를 하는 게 좋은지 결정을 하지 못한다. 대원들의 의견이 반반이지만 박연수 대장은 고치령 쪽 길이 좀 멀고 고치령은 지난번 탐사에서 조사를 했으니 연화동 쪽으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낸다.
해발 1000m가 넘는 이곳에서 해발이 400m대인 연화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이 동남 방향으로 나 있어 눈이 많이 녹은 편이었다. 아이젠은 착용하고 있고 길도 그렇게 미끄럽지 않아 내려오는데 별 문제는 없다. 내려오면서 보니 봄가을에 사용하는 심마니 모둠터가 두어 군데 있다. 아궁이와 굴뚝까지 있는 제대로 된 주거시설이다. 물론 겨울이라 덮개는 없지만 심마니들이 필요하면 덮개는 간단히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신갈나무 사이로 굴참나무도 꽤 보인다. 소위 굴피집의 재료가 바로 굴참나무 껍데기이다.
약 1시간 15분 정도 내려오니 오른쪽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길은 산을 넘어 똑바로 이어진다. 똑바로 가면 연화동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상좌석이다. 모두 좌석리의 마을로 고치령 아래 남서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좌석으로 방향을 잡는다. 여기서 좌석(坐石)은 앉은 바위의 한자식 표현이고 상(上)은 상류 즉 위에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상좌석 마을 이야기
상좌석 마을에 이르니 하천을 끼고 10여 채쯤 되는 집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가까운 나매화씨(66) 집을 찾아 들어가 마을과 관련된 몇 가지 대화를 나눈다. 동네 밭 가운데 넓적한 바위가 앉아 있어 동네 이름이 앉은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집을 지어 매년 정월 보름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자식들은 영주와 청주에 살고 있으며 지금 사는 집이 오래 되어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황토집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앉은 바위와 당집을 보러 가는 길에 집 짓는 곳으로 가보니 황토를 사용해 일종의 펜션 겸 음식점을 짓고 있었다. 이곳은 사시사철 수량도 많고 물도 깨끗하니 장사가 될 것 같았다. 황토집을 지나 앉은 바위를 찾아가니 이끼가 잔뜩 낀 오래된 바위가 밭 가운데 좌정하고 있다. 그 옆에 현대식으로 당집을 고쳐지었는데, 조금은 생뚱맞다.
안을 들여다보니 향로와 술잔, 그리고 촛대가 놓여있다. 한쪽으로는 포와 사과 그리고 소주가 놓여있다. 사과는 최근에 갖다 놓았는지 싱싱한데, 포는 오래되어 곰팡이가 좀 슬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세무인(歲戊寅) 윤5월25일 상량’이라는 판이 붙어있다. 무인이면 1998년이다. 밖을 나와 건물을 보니 처마 아래로 금줄이 처져 있다. 이 금줄이 2008년 정월 보름이 되면 새것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 저것 관찰하는데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차의 경적소리가 난다. 빨리 가자는 것이다. 새벽 5시 20분부터 시작한 산행을 오후 2시 40분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총 9시간 20분의 소백산 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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