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寸鐵殺人) 한치밖에 되지 않는 쇳조각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창 고발성 기사를 즐겨 쓰면서 변화를 기대하고 반응을 지켜보던 시절이 있었다. 글이라는 것이 참 재미도 있다. 신비한 마력이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글을 써 본 사람들은 잘 안다. 글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변화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 또 평소의 마음이 글에 잘 나타난다. 따라서 글은 마음의 소리이다. 그러기에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이 많다. 주관이라는 것은 내가 보고 겪었던 직접경험과 다른 사람의 글이나 말을 통해 알게 된 간접 경험이 내 마음에 녹아들어 형성된 것이기에 꼭 옳다고 볼 수만은 없다. 지방의 신문사에서 취재활동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일했던 적이 있다. 마치 정의사회를 구현하고자 천명을 받은 사람처럼…. 어쩌면 사람은 타고나면서부터 자기의 할 일이 있으며 그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명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면 힘든 삶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기사거리만 되면 열심히 취재했고 변화를 시도했다.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함을 많이 느꼈다. 때로는 해당 부서는 물론이고 해당 기관이 벌컥 뒤집어지듯 소란스러운 일도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잘못된 일을 지적했을 때의 여파는 크게 나타난다. 일반적인 고발성 기사는 틀이 있다. 그 틀에 6하원칙에 맞게 기사를 작성하면 된다. 여기에 글쓴이의 필력은 실제보다 더 크거나 작게 독자들에게 읽혀진다. 나는 건축, 토목, 환경, 방송통신법 등 취재를 하기 전후에 관계 법령집을 살펴보았다. 법률해석이 애매한 경우 상급기관의 홈페이지에 문의를 한다. 답변은 기사작성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때로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다. 관계 공무원에게 묻는 것이 제일 빠르다. 이렇게 해서 작성된 기사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공무원들이 내놓지 않으려는 자료가 있다. 수차에 걸쳐 요청해서 거절당하면 '행정정보공개요청'을 한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긴장감이 감돈다. '핑퐁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이리 저리 해당 부서에서 담당 업무가 아니라며 회피한다. 이럴 때마다 기자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무척 헤맨다. 취재기자가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때로는 재미도 있더라는 후일담도 있었다. 담당업무가 아주 애매한 경우가 있는데 국장, 과장들이 협조하며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단 문제가 불거지면 책임을 회피해야만 불이익을 줄어드니 이해를 한다. '업무분장'을 구한 후 꼼꼼히 따진다. 법률집을 가까이 두고 살펴보면서 '업무분장'까지 따지면서 취재를 한다. 이쯤 되면 '핑퐁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꼭 필요하다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빌려 취재를 한다. 이런 정도까지 했으니 누군들 긴장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여 작성된 기사는 손색이 없다. 기자로서는 만족한다. 신문지면에는 톱기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파장도 커진다. 이렇게 활동하던 어느날 당시 정읍시청 문화계장으로 근무하시던 박종섭 계장님이 차 한잔 마시며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그 말이 곧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 10여년 연상이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열심히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지금은 전북도청에서 근무하시는 박 계장님이 당시에 웃으며 던지던 그 한마디는 이후 깊은 생각에 들게 만들었다. 불편부당함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 사람들은 단체에 속해 있다. 그 단체가 개인회사든 정부기관이든 상하의 질서 속에서 움직인다. 때로는 불편부당함을 알면서도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발생한 결과만을 갖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때로는 잔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금년들어 '댓글'로 인한 스트레스로 귀한 목숨을 버렸던 연예인이 몇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름대로의 잣대로 해석하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 비판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알기 어렵다. 자신의 글 한 줄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한평생 동안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참한 경우도 있다. 무심코 던진 돌맹이가 연못에서 자유롭게 놀던 개구리가 맞았을 때 죽을 수도 있다. 솔직히 '촌철살인'식의 기사를 작성하며 만족감에 젖기도 했었다. 99년말께 친구들이 '마음공부'를 한다며 삼각산 자락의 '풍류도원'이라는 집에서 모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도 그 마음공부에 동참했다. 이후 취재를 하는 내 자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고발기사를 작성할 때에는 꼭 그 원인을 찾아 고민하며 분석했고 대안을 찾는데 고심했다. 이것이 재미도 있고 훨씬 더 신선했다. 나를 경계하던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부드러워짐을 알았다. 때로는 함께 고민하며 대안책을 찾기도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훨씬 더 넓고 깊고 오묘함이 있다. 마지막 단추가 어긋났다면 첫 단추부터 어긋난 것이다. 소위 말하는 그 마음공부를 하면서부터 어떤 사건을 접하면 양면이 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게 되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신문에 난 내 기사는 항상 스크랩을 해 두었다. 마음공부를 시작하고 몇 개월쯤 후 스크랩을 보며 놀랐다. 숨이 멈출 듯 답답했다. 내 글은 살벌했다. 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굳어진 몸을 찬바람이 감싼다. 답답함에 입을 벌려 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글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지 알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풍류도원에서 매일 함께 공부했던 그 사람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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