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지난달 14일 오후 수시모집 최종합격자 1745명 가운데 지역균형선발전형 합격자 817명을 발표했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에 따르면 2005년 지역균형선발제가 도입된 뒤 합격자 배출 고교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 가운데 강원 정선고, 충북 보은여고 등 6개교는 지난 9년간 합격자가 없었다가 이번 수시모집에서 합격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인해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방학생들에게도 서울대 합격의 기회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양산에서도 2008학년도 수시전형에서 5명의 서울대 합격생이 탄생해 지역 교육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늘(12월 27일)은 이들 합격자 가운데 경남 양산의 대표적 명문고인 양산고등학교가 배출한 서울대 합격생 최원철(19)군을 만나 합격의 비결과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 도전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주>새로운 수시전형 지방학생들의 숨통을 터주다
수시모집 지역균형 선발전형(이하 지역균형수시)이 지방학생들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 할 것 없이 모든 부분에서 열악한 교육환경 탓에 그동안 지방학생들은 우수한 두뇌와 소질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입학의 꿈을 일찌감치 접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최근 서울의 명문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지역균형 선발전형을 확대해 지방에 거주하는 우수학생들에게 보다 넓은 입학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시에서 서울대학교 공학계열에 지원해 합격의 쾌거를 이룬 양산고등학교 3학년 최원철 군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군은 양산초, 삼성중, 양산고 등 12년의 공교육 전 과정을 양산지역에서 마친 그야말로 양산 본토박이다. 쉽게 말하면 진짜 ‘촌놈’이자 지역불균형과 소외된 교육환경에 시달려온 ‘지방학생을 대표하는 모델’이란 얘기.
더욱이 양산시 외곽에 위치한 사립고교인 웅상(부산 인접) 효암고에서 2명, 하북(울산 인접) 보광고에서도 2명이나 서울대 합격생이 배출되기는 했지만, 양산시내 중심부의 공립고교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최원철군은 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독보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최군은 전형적인 ‘범생이’(모범학생) 스타일이다. 양산고 측에 따르면 최군은 3년 내내 반장노릇을 했고, 성적은 항상 상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합격소감을 물어도 덤덤하게 대답하고, 비결을 물어도 “별로 말씀드릴게 없다”고 말하는 최군은 무뚝뚝한 경상도 학생 그 자체다.
그런 그에게서 수시 합격의 과정과 비결을 유추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대화 가운데 몇 가지는 건질 수 있었다.
지역균형전형, 비평준화지역 고교학생들에게 불리하지 않다양산지역의 고등학교는 아직도 비평준화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공립은 양산고, 양산물금고, 웅상고, 양산남부고 4개교, 사립은 경남외고, 양산제일고, 보광고, 효암고 4개교 등 총 8개 고교가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 구축된 성적서열을 통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고교에 다니느냐를 알면 해당 학생의 성적 수준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최군이 다닌 양산고나 다른 4명이 다닌 보광고와 효암고는 양산지역에서 솔직히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해당 학교 관계자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학교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한 것을 보면 이번 지역균형수시가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고교 학생들에게 그다지 불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전에 만난 지역 일선교사들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얼추 들어맞는 분석일 듯 싶다.
국, 영, 수 내신 야무지게 준비하라최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멀리 고개 넘어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까지 버스를 타고 학원을 다니는 등 인고의 세월을 참아냈단다. 물론 이유는 뻔했다. “부산의 교육수준이 양산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었다.
최군에 따르면 “어느 곳에나 우수한 학생들이 있지만 부산에는 확실히 양산보다 공부 잘하는 우수한 친구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학원에서 만난 부산 친구들에게 상당한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최군은 “고1까지는 종합반에 다니다가 고2 때부터는 단과반에 다녔다”고 말했다. 여기서 단과반에 다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결국 대입 목전에 가서는 국, 영, 수 등 주요과목 갈고닦기에 집중했다는 얘기다.
각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다양한 전형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국, 영, 수를 놓치면 국물도 없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인문계열은 어학을 잘해야겠고, 공학계열은 당연히 수학을 잘해야 할 터.
아니나 다를까, 최군에게 수시면접 보러 올라가서 뭐했냐고 물었더니 “실컷 구술테스트 연습하고 올라갔는데, 대뜸 어려운 수학 2문제 내놓고 즉석에서 풀어보라”고 하더란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학은 내신성적을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 중심으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서울대 가려면 모든 과목을 두루 잘해야겠지만, 보라! 결국 같은 성적이면 국, 영, 수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고 있다.
원점수 관리도 신경 쓰고 수능도 철처히 준비하라따라서 전 과목을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요 교과목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등급뿐 아니라 원점수(평균, 표준편차)를 활용한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전형도 있으므로 같은 등급이라도 원점수를 높게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부 관리에만 '올인'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상위권 학생의 경우 수능 50%, 학생부 30%, 논술 20%의 비율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서울대 정시모집의 수능 지원자격이 모집 단위별 3배수 이내로 제한됐고, 사립대들이 수능 우선 선발 전형을 실시하므로, 수능에서 영역별로 고르게 상위 등급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최군은 “국, 영, 수 외에도 생물과목을 특별히 좋아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다른 과목들도 학교에서 배운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야간자습시간을 통해 철저하게 복습했다”고 말했다. 수시모집에 합격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지방 우수학생들 마음껏 수시에 도전하라
이번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자 가운데 일반고 출신은 전체의 74%인 1292명으로 가장 많았고, 과학고와 외고 출신은 각각 288명과 76명으로 전체의 16.5%와 4.4%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지역균형선발 합격자의 출신지는 서울이 22%로 지난해보다 3.1%포인트 감소했고 광역시는 32.8%로 0.5%포인트 높아졌다.
시 단위 합격자는 37.8%로 지난해보다 2.4%포인트 증가했고 군 단위 합격자는 7.3%로 지난해와 같았다.
이러한 결과를 살펴보니 한 가지 확신이 든다. 이제부터 양산지역(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우수학생들은 미리 포기하지 말고 마음껏 수시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고교진학과 동시에 수시전형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일 수 있다. 최군도 고1 때부터 모친 박순귀(49)씨의 권유로 수시전형에 대비해 왔다고 한다. 모두가 지역균형선발제도 덕분이다.
대입 합격은 끝이 아닌 새로운 도전의 시작최군의 부친은 구 터미널 근처에서 잭니클라우스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세율(50)씨로 아들의 서울대 합격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다.
최군은 교양과정이 끝나면 건축공학과에 지망할 생각이고 기술고시에 도전해서 유능한 건축사가 되고 싶어 한다.
최군은 합격통보를 이미 보름 전에 받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전히 ‘열공모드’다. 모 대학 수학교육과에 다니고 있는 누나에게서 대학수준의 수학실력을 전수받고 있고, TEPS나 TOEIC 같은 어학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대입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아직도 양산시내 전역에는 ‘경축! 양산고 최원철군 서울대 공학계열 합격’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그만큼 양산지역은 아직도 정겹고 시골스러운 동네다. ‘개천에서 용 난 격’인 최원철군의 서울대 합격에 양산시민들은 자신의 일 인양 뿌듯해 하고 있다.
양산과 같은 교육소외지역에서 앞으로도 수많은 서울대 합격자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