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충격이다. 고난의 민주화 운동을 거쳐 이룩한 1987년 대통령직선제 선거에서 노태우 집권을 지켜보아야 했던 충격, 그리고 10년의 진보개혁 정권을 지나 2007년 이명박 집권을 바라보아야 하는 충격.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30 여년의 수구보수 세력 집권에 뒤이어, 개혁진보 세력 집권은 10년의 짧은 세월로 마감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앞에서 개혁진보라 칭할만한 모든 정파, 모든 대중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개혁진보의 범주에 들었던 정치세력들은 그들대로 쇄신이다 정풍이다 비대위다 하면서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또 그들을 지지했던 소리없는 국민대중들은 그들대로 도대체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분간 정신을 제대로 수습하고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우리라 추정된다. 나는 이명박의 당선을 지켜보며,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민심이 선택한 것을 뭐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저런 부정과 탈법 변칙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다음 5년을 이끌어갈 국가책임자로 그가 선택된 것은 바로 민심이 아닌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민심 바로 그 자체가 아닌가 말이다. 그 것도 대통령 직선제 사상 유례가 드문 엄청난 표차이로, 과반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로 말이다. 혹시라도 누가 그 민심을 조작되었다고 말한다면 그 것은 구차한 일이다. 구질구질한 일이다. 어느 정치인의 실언처럼 국민이 노망들었다고 여기고 싶다면,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노망든 것이리라. 언론자유가 더 없이 만개하고, 지극히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이 아닌가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보수 대 진보, 수구 대 개혁, 냉전 대 평화 등의 사고틀로서는 변화하고 있는 시대와 민심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인류역사 이래 민생은 언제나 국가운영과 정치의 가장 큰 화두였으니 말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단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멀리로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이 수상선거에서 패했던 것처럼, 비교적 가까이는 미국의 걸프전의 영웅 아버지 부시가 40대 신출내기 클린턴에게 패했던 것처럼 결정적인 문제는 경제고 민생이었다. 이제 확실히 민주 대 반민주 등의 구도는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민주화운동 세력 10년의 집권으로 (조금 더 길게 본다면 김영삼 정부까지 포함해서 15년이랄 수도 있겠다) 민주 대 반민주같은 추상적 가치는 한국사회에서 이제 정리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나는 이명박 당선자가 냉전으로 돌아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는 역사의식이 빈약하지만, 대북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실용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본다.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는 부동산가격 상승외에도 시장 논리에 내몰리는 공교육의 변화에 따른 사교육의 광풍, 재벌위주 중소기업 무시 등이 예상되지만, 그 것은 야당과 건전한 시민세력의 견제로 제어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개혁 세력이, 민주평화 세력이 새롭게 집권한 보수세력에 매달려 딴지나 일삼는 구차한 처지로 스스로 떨어지지는 말자. 과반에 육박하는, 아니 이회창을 지지한 사람들까지 합쳐서 국민의 압도적 다수인 3분의 2가 보수를 지지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정치가 국민이라는 바다 위에 뜬 배라면, 바다의 물살과 그 위에 불고 있는 바람의 방향을 제대로 살필 일이다. 모두 다 죽자. 박정희의 쿠데타 이래 40년을 넘어 무려 50년 가까이 이어졌던 한국사회의 틀은 이제 종언을 고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민주 대 반민주도, 수구 대 개혁도, 진보 대 보수도 아닌 새로운 시대의 흐름 말이다. 기존의 사고틀로서는, 기존의 타성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개척해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모두 다 죽자. 사람도 죽고, 생각도 죽자. 그리고 새로 태어나자. 이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이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제대로 알려면 기존의 그 사람은 죽어서 새로 태어나야 하고, 기존의 사고방식은 변화한 현실에 근거하여 당연히 바뀌어야만 한다. 이제까지 이른바 민주평화 진보개혁에 속했던 정치세력들은 그들대로, 또 그들과 함께해왔던 국민대중들도 기존의 타성을 버리고 스스로의 위치와 생각들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새롭게 태어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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