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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그를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미약하다. 고은 선생을 처음 접한 것은 장편 소설 <화엄경>을 통해서다. 화엄경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참됨, 거룩, 추구와 탐색이 어우려진 아름다움을 말한다. 고은 선생은 <화엄경>에서 길을 나선 어린 선재를 화엄의 본체라 했지만 기독 신도이기에 깊은 사유를 못했다.

 조국의 별
 조국의 별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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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선생은 <불교신문>의 초대 주필로 글을 쓰면서 조지훈 선생 추천으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을 발표했으며, 서정주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 <눈길> 등을 발표해 문단에 발을 내딛었다.

조지훈과 서정주 추천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순수시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문의 마을에 가서>를 기점으로 사회비판의식이 강한 시를 쓰기 시작하여1978년에 발표한 장시 <갯비나리>는 1970년대의 참여시를 민중을 말함으로써 역사의식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집으로 <조국의 별>(1984), <전원시편>(1987), <아침이슬>(1990), <해금강>(1991)을 비롯해, 대하시 <만인보(萬人譜)>(1986년부터 발간하여 작년 말미에 26권이 나옴)를 내면서 지금도 시를 통하여 인민을 말하는 분이다.

오래만에 <조국의 별>을 펼쳤다. 1984년 초판 본이 아닌 1991년 4판 본이지만 색깔은 많이 바랬다. '걸레'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걸레질을 하신다. 며느리가 넷이나 있지만 손수 걸레질을 하신다. 왜일까? 생각해본다.

바람 부는 날
바람에 빨래 펄럭이는 날
나는 걸레가 되고 싶다
비굴하지 않게 걸레가 되고 싶구나
우리나라 오욕과 오염
그 얼마냐고 묻지 않겠다
오로지 걸레가 되어
단 한군데라도 겸허하게 닦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감방 닦던 시절
그 시절 잊어버리지 말자

나는 걸레가 되고 싶구나
걸레가 되어
내 더러운 한 평생 닦고 싶구나

닦은 뒤 더러운 걸레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
못 견디도록 헹구어지고 싶구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걸레로 태어나고 싶구나

사람들은 깨끗한 누리를 원하고, 깨끗한 옷을 원하지만 온누리는 다 더럽다. 깨끗한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조금만 있어도 더러워진다. 더러운 것을 어느 누구 하나 깨끗하게 닦으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깨끗한 세상을 원한다. 시인은 내가 걸레가 되어 깨끗한 세상,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원한다.

시인은 조국의 별이 되기를 원한다. 조국은 어둠에 처해있다. 어둠만 가득한 조국에 별이 되어 내 자식들에게 초롱초롱한 가슴,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별이 되어 조국에 희망을 주고자 한다.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
어둠 속에서
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
내 가슴으로
한밤중 몇백 광년의 조국이자
아무리 멍든 몸으로 쓰러질지라도
지금 진리에 가장 가까운 건 젊은이다
땅 위의 모든 이들아 젊자
긴 밤 두 눈 두 눈물로
내 조국은
저 별과 나 사이의 가득 찬 기쁨 아니냐
별 우러러보며 젊자
결코 욕될 수 없는
내 조국의 뜨거운 별 하나로
네 자식 내 자식의 그날을 삼자
그렇다 이 아름다움의 끝
항상 끝에서 태어난다 아침이자
내 아침 햇빛 떨리는 조국
오늘 여기 부여안을 일체 결합의 젊음이자 - 조국의 별

조국은 별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기쁨이다. 조국의 뜨거운 별이 되어 네 자식 내 자식 상관없이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원한다. 이는 아름다움이며, 떨리는 아침 햇빛이다. 그리고 이는 젊음이다.

시인의 시선은 이제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조국의 별이 되고자 노래했지만 그는 이제 민중과 인민이 사는 곳으로 삶의 정황을 넓힌다. 아르헨티나를 노래한다. 아르헨티나는 시인이 살았던 시대처럼 권력이 인민을 압제한 비극의 땅이다.

새야 새야 아르헨티나는 너무 멀구나
땅을 뚫어야 가겠구나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새 세상이란
지난 날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세상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해골 구덩이가 파헤쳐졌다
몇만 개의 뼈들이 햇빛에 드러났다
새 세상이란 파묻은 것이 밝혀지는 세상 아니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뼈들이 말하는 세상 아니냐


아르헨티나의 어디에서는
어린애들의 해골 구덩이도 파헤쳐졌다
엄마 엄마 엄마 울음 소리가 파헤쳐지자
새 세상 아르헨티나에 온세상이 다시 메아리쳤다
이 세상 기막히구나 어린애가 적이 되어 처형되다니
7년 동안 병정들은 오리지 쐈다 파묻었다
어린애들이 무죄가 죄가 되어 파묻혔다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은
꺼이꺼이 살아남은 어머니들은
이제부터 제 자식의 해골을 하나하나 파내어야 한다
삽을 들고 달려가서
남편과 아들딸의 손발 잘린 시체더미를 파헤쳐서


뼈 한 개 부둥켜안고 우는 어머니에게
그 아르헨티나에 새 세상이 왔다
새 세상이란
새 세상이란
꼭 이렇게 와야 하는 것이냐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아르헨티나에는 새 세상이 왔단다
- 아르헨의 어머니

비극의 땅 아르헨티나에 희망이 솟았다. 희망은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다. 열달 뱃속에서 고이고이 간직하다, 구로하여 낳은 아들이 해골이 되었을 때 어머니들은 시체를 파헤쳤다. 독재와 군부 폭압정권은 그들 육신을 파괴했지만 아르헨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르헨 어머니는 해골로 남은 아들을 파헤쳐 새누리를 이루었다.

<조국의 별>에는 시 89편이 수록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시들이 개인을 말하는 경향이 짙어 사회와 인민을 말하는 것이 더물다. 그러기에 <조국의 별>같은 시편은 80년대를 말하고 있지만 요즘 시들이 담지 못하는 사회와 인민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편이다. 

덧붙이는 글 | <조국의 별> 고은 씀 ㅣ 창작과 비평사 ㅣ 1991년 5월 30일 4판 ㅣ 2,500원



조국의 별

고은 지음, 창비(1984)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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