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곳, 산세가 아름답고 물이 맑으며 순박한 사람들이 어우러진 곳, 한 많은 사연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붙잡을 것 같은 곳, 강원도 정선을 불혹의 나이가 들어서 야 처음으로 찾았다.
이번 기회에 정선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뒤 정선으로 향했다. '정선'하면 '정선아리랑'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정선에 가면 우선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바로 '아우라지'다.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삼척시 중봉산에서 흐르는 임계면의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하며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고 이름 붙여진 곳, 아주 작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 주는 섶다리가 있는 곳이 그곳이다.
이곳에서는 각지에서 몰려온 뱃사공들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구불구불 재를 넘어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이기도 했던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전설에 의하면 사랑하는 처녀와 총각이 아우라지를 가운데 두고 각각 여량과 가구미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둘은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 가기로 약속하였으나 밤새 내린 폭우로 강물이 불어 나룻배가 뜰 수 없게 되었는데, 그때의 안타까운 마음을 애절하게 불렀던 노랫가락을 옮겨본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상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라는 가사가 되었다고 한다.지금 그곳에는 소나무를 엮어 만든 섶다리가 그때의 안타까운 사랑을 한풀이라도 해주는 듯 놓여 있다. 섶다리는 강물이 많지 않은 겨울에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놓은 것으로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떠내려간다. 임시다리인 셈이다.
마침 운 좋게도 내가 갔을 때는 다리를 놓은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푸르른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줬다.
아우라지를 지나 레일바이크를 탈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족 단위의 많은 사람들은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에도 아랑곳 않고 레일 바이크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추위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타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즐겼다. 그리곤 다음 장소인 아라리 촌으로 이동했다.
아라리촌은 정선의 애산리 일원 1만503평의 부지를 이용해 옛 주거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정선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굴피집의 모습이다.
굴피 집은 참나무(상수리나무) 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덮은 집으로 보온이 잘 되고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매우 추운 겨울과 비가 많이 오는 여름 기후에 안성맞춤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것 같았다.
한참을 돌다보니 특이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저릅집'. 저릅집은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를 짚대신 이엉으로 이은 집을 일컬으며 '겨릅집'이라고도 한다. 속이 빈 저릅대궁이 단열재로써 기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한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체를 삼으며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짓는 '귀틀집'도 눈에 띄었다. 많은 적설량에도 견딜 수 있고 온도 유지가 용이할 뿐 아니라 간편하게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산간지대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다고.
마지막으로 화암동굴을 여행하고 정선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화암동굴은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을 캤던 천포광산으로 금광 굴진 중 천연 종유동굴이 발견됨으로써 그 신비로운 모습이 세상에 알려졌다.
석회 동굴의 특성을 보여주는 천연 종유굴과 수많은 광부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삶의 현장인 금광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가는 곳마다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의 현장 체험 학습장으로 부족함 없이 개발된 곳인 듯했다.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이란 언제나 마음 가득 풍성한 행복을 담고 돌아온다는 사실을 느꼈고 그것이 곳간에 쌓아둔 양식보다 몇 배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