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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나긋나긋 조용하게 들려주는 우리 곁 동무들 백 가지 이야기입니다.
겉그림나긋나긋 조용하게 들려주는 우리 곁 동무들 백 가지 이야기입니다. ⓒ 호미

- 책이름 : 백 가지 친구 이야기
- 글ㆍ그림 : 이와타 켄자부로
- 옮긴이 : 이언숙
- 펴낸곳 : 호미(2002.5.25.)
- 책값 : 8700원

12월 31일. 2007년 저물녘입니다. 전철을 타고 잠깐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연신내에 있는 헌책방 한 곳에 들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옆지기 부모님이 살아가는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갑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구파발을 벗어나면 땅위로 몇 정류장을 달립니다. 이때, 북한산을 끼고 우뚝우뚝 올라서는 아파트숲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서울 시내 산들은 일찌감치 아파트숲으로 덮였고, 이제는 서울 바깥 논밭 차례입니다.

논밭 농사가 아무리 보람이 있고 날마다 우리들은 밥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돈벌이가 되기 어려운 한편, 논밭으로 쓰면 땅값이 싸지만 아파트 짓는 회사에 팔면 몇 곱을 받을 수 있으니, 다들 손쉽게 땅부자가 되어 일 안 하고 돈굴리기 하는 쪽으로 마음이 바뀔 밖에 없습니다.

(98)
떠돌이 일꾼들의 친구는 술,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노래도 이곳저곳 여행하였지.


옆지기네 부모님이 사는 집은 아파트. 우리 부모님이 살던 집도 얼마 앞서까지는 아파트. 우리 부모님은 1979년이었던가, 열세 평짜리 5층짜리 아파트에서 열세 해쯤 살다가 인천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개발을 하며 새도시로 꾸린 연수동 아파트에서 1991년 여름부터 살다가, 용인에 있는 아파트로 옮기셨습니다. 그러고 지난 2007년 2월에 교직 정년퇴임을 하고는 음성 한켠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옮겨 가셨습니다.

(93)
전철기의 친구는 이젠 끊어져 아무도 다니지 않는
철길에 피어난 잡초,
아마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들국화이겠지요.


아파트가 숲을 이룬 동네에서는 나들이를 다니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나들이를 다닐 데가 마땅히 보이지 않습니다. 5층짜리 낮은 아파트에서 부모님하고 살 때에는 집 앞에 있는 바닷가에 놀러가도 되었고, 집 둘레에 있는 철길에서 놀아도 되었고, 나즈막한 아파트와 가까운 골목길이라든지 야구장이라든지 동인천이나 화도진이나 제물포나 주안 들로 걸어서 얼마든지 돌아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연수동에서는 느긋하게 걸어다닐 길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옮겨가신 용인에서도 어디 나다닐 데가 없습니다. 명절맞이 하거나 제사 지내러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면, 하루 내 집안에 박혀서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모여앉기 빼고는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뒹굴고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잠깐 수다 떨며 웃고 떠들고 하면 하루는 훌쩍 저물어 갑니다.

(84)
씽씽 부는 바람의 친구는 진눈깨비 섞인 함박눈,
아, 다시 겨울이 ……


아파트에 모였어도 이곳 나름대로 재미있게 놀거리 할거리 즐길거리 들은 있을 텐데, 저부터 다른 놀거리 할거리 즐길거리를 생각해 보지 않고 대뜸 거리만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나들이할 곳이 따로 없다면, 요 시멘트 높은 집에 박히면서도 함께 즐길 이야기거리를 찾을 수 있을 텐데.

(74)
제비의 친구는 모내기를 끝낸 논의 벼 포기,
파릇한 입들, 바람 따라 살랑인다.


아파트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한테 골목길을 빼앗아간 자동차일까요. 자동차한테 동무가 있다면 크고 작은 벌레와 길짐승을 비롯해 우리들 사람조차 마음놓고 건너다닐 수 없는 까만 아스팔트길일까요. 아스팔트길한테 동무가 있다면 나날이 바닥나고 있는 까만 기름, 석유일까요. 석유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가 하루 한때도 잊을 수 없어서 꼭 껴안으려고 하는 돈일까요. 돈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들이 날마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갖가지 물건들, 공장에서 뽑아낸 물건일까요.

공장에서 뽑아낸 물건한테 동무가 있다면 이 땅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병을 비롯한 갖가지 병을 앓게 하는 화학물질 담긴 항생제일까요. 항생제한테 동무가 있다면 우리 입에 맛깔스럽게 느껴지는 소시지와 튀김닭일까요. 소시지와 튀김닭한테 동무가 있다면 부릉부릉 씨잉씨잉 골목길과 찻길을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는 배달 오토바이일까요. 배달 오토바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건수 올려야 할 때만 교통단속을 하는 순경일까요.

순경한테 동무가 있다면 길가에 버려진 어마어마한 담배꽁초일까요. 담배꽁초한테 동무가 있다면 그 옆에 비슷한 크기로 뱉어진 엄청난 침덩이일까요. 침덩이한테 동무가 있다면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로 눌려 있는 다 씹은 껌일까요. 다 씹은 껌한테 동무가 있다면 껌을 싸고 있는 비닐 껍질일까요. 비닐 껍질한테 동무가 있다면 비닐 껍질이 버려지는 쓰레기통일까요.

쓰레기통한테 동무가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 껍데기를 길바닥에 휙 집어던지는 이 나라 젊은이들 손일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 껍데기를 길바닥에 버리는 젊은이들 손한테 동무가 있다면 재벌회사 입사면접서일까요. 재벌회사 입사면접서한테 동무가 있다면 일류대학교 졸업장일까요. 일류대학교 졸업장한테 동무가 있다면 입시교육만 하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회초리일까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회초리한테 동무가 있다면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 말랑말랑한 볼기짝일까요. 공부 못한다는 소리에 비행청소년 소리까지 덤으로 듣는 아이들 볼기짝한테 동무가 있다면 당구장 큐대일까요. 당구장 큐대한테 동무가 있다면 중국집 짜장면 그릇일까요. 짜장면 그릇한테 동무가 있다면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일까요.

나무젓가락한테 동무가 있다면 빈 종이상자와 고물을 주으러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낡은 끌차일까요. 끌차한테 동무가 있다면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쉼없이 짐더미를 안고 굴러다니다가 잠깐잠깐 할아버지 할머니가 쉴 때 걸터앉는 거님길 돌일까요.

아파트 동인천역에서 내다본 "송현동 솔빛 주공아파트". 인천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성냥갑을 다닥다닥 붙인 듯한 이런 아파트를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에서는 누가 친구이며 우리는 누가와 친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요.
아파트동인천역에서 내다본 "송현동 솔빛 주공아파트". 인천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성냥갑을 다닥다닥 붙인 듯한 이런 아파트를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에서는 누가 친구이며 우리는 누가와 친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요. ⓒ 최종규

(65)
여뀌의 친구는 소꿉놀이할 때 쓰는 나뭇잎 접시.


1월 1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옆지기 어머님과 옆지기와 저, 이렇게 세 사람이 ㅌ동 성당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한 시간 남짓 미사를 드리고 나오니, 성당 신부님이 신자들한테 세뱃돈이라며 종이돈 1000원짜리를 한 장씩 나누어 줍니다. 성경 말씀에는 “재물 복을 받으라”는 이야기가 없다는 말씀을 하면서, 그렇지만 “신자님들 하시는 사업이 잘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다문 1000원짜리 한 장이나마 나누어 드리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고 덧붙입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부터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성당 신부님한테 세뱃돈을 받습니다. 아이들이야 설이면 세뱃돈을 받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세뱃돈을 받을 일이 있었을까요. 성당 신부님한테 세뱃돈 1000원을 받은 사람마다 얼굴이 환합니다.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빌어 준 뜻을 받아안아서일까요. 저와 옆지기는 세뱃돈을 안 받습니다.

(55)
그럼,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등불 하나 켜고 태어나고말고!
반딧불이가 장담한다.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 또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길 두 편으로는 온통 아파트입니다. 나즈막한 아파트는 하나 없고 우람한 아파트들뿐입니다. 큼직하게 새로 짓는 교회 건물도 보이고 머잖아 새로 올리려고 터닦기를 하는 아파트 공사터도 보입니다.

(49)
난 친구 따위는 필요없어, 하며 늑대거미가 물가를 달린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친구를 찾고 있을는지도
모르지…….


골목길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골목집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골목사람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누가 있었을까요.

논과 밭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산과 들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내와 바다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다람쥐와 너구리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오소리와 여우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누가 있었을까요. 곰과 이리한테 동무가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을까요.

박새와 동무였던 아무개는 어디에 살아 있을까요. 박쥐와 동무였던 저무개는 어디에 자취가 남아 있을까요. 매와 동무였던 그무개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까요.

쉬리는 자기 동무와 오붓하고 지내고 있을까요. 각시붕어는 자기 동무와 걱정없이 겨울나기를 했을까요. 메기는 자기 동무와 느긋하게 한삶을 마칠 수 있을까요.

땅강아지 동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사마귀 벌레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풀무치 동무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을까요.

(33)
그런데, 정말 친구가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물위에 떨어져 누운 나뭇잎이 묻습니다.


도시에서 골목길이 사라지는 만큼, 시골에서 고샅길이 없어집니다. 도시사람들도 안 걸어다니지만, 시골사람들도 못 걸어다닙니다. 골목길이든 고샅길이든 먼지 풀풀 날리면서 시끄러이 빵빵거리며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들만 가득합니다.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 터도 없으며, 어른들이 한갓지게 이야기 나누며 웃고 떠들 떠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한테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주는 에어컨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주는 보일러가 있으며, 언제 어느 때라도 웃겨 주고 울려 주는 텔레비전이 있고, 어떠한 정보라도 알려주고 집안에서도 일거리 하나 맡도록 해 주는 컴퓨터가 있으니, 두 발로 디딜 땅보다는 장사하여 돈 많이 벌 수 있는 가게와 땅부자가 될 수 있게 아파트 터로 팔 빈땅만 있으면 되는지 몰라요.

(25)
비는 어느새 땅속으로 스며들고
도토리는 이불인 양 마른 낙엽으로 제 몸을 감싼다.


옆지기 동생이 공부하는 방에 들어와서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셈틀을 켭니다. 토닥토닥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하나 끄적여 봅니다. 마루에 켜 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닫아 놓은 방문 틈으로 잘 새어 들어옵니다. 마루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도 잘 들립니다. 부엌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솔솔 들려옵니다.

허리를 펴고자 자리에 누으면 아래층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옵니다. 조용히 눈감고 있을라치면 위층 사람들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이 방에서 부시럭부시럭 한다면 아래층이나 위층으로도 소리가 퍼져 들어갈까요.

저잣거리 자전거 저잣거리 한복판에 세워 놓은 어린이 자전거. 자전거는 저한테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살가운 벗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잣거리 자전거저잣거리 한복판에 세워 놓은 어린이 자전거. 자전거는 저한테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살가운 벗 가운데 하나입니다. ⓒ 최종규

(15)
조개의 친구는 물론 바닷가 모래밭.


토도독. 토도독. 옆지기 동생이 마루에서 놀면서 쓰러뜨리고 다시 세우는 나무조각 소리가 겹으로 들립니다. 한 소리는 방문 틈으로, 한 소리는 방바닥으로. 이 소리 가운데 하나는 아래층으로도 내려가겠군요. 아래층이나 위층에서 퍼져 나오는 소리한테 동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3)
돌멩이의 친구는 작은 시맷물.
작은 시냇물의 친구는 개구리.


문득, 다른 사람들한테 누가 동무인지를 따지지 말고, 바로 나한테는 누가 동무인지를 따져 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나는 누구한테 동무인지를 헤야려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 내 동무는 누구일까요. 자전거? 책? 헌책방? 골목? 사진? 시원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바람?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하얀 구름? 온 살갗으로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 땅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는 고무신? 언제나 아낌없이 제 몸을 바치며 나와 함께해 주는 가방들? 고달픈 마음을 고이 씻어 주는 술 한 잔?

나는 누구한테 동무일까요. 어떤 사람들한테 동무일까요. 나를 두고 선뜻 동무라고 할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기쁠 때만이 아니라 힘들 때에도 기꺼이 불러 주면서 웃고 울 동무들은 누구일까요. 또한, 나한테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기꺼이 불러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고 울 동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1)
한가로이 길을 걷다 보면 길에서 친구를 만난다.


그림이야기책 <백 가지 친구 이야기>를 덮습니다. 책이름에는 백 가지 동무라고 나왔으나, 꼭 백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왜 백 한 가지일까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는데, 백 가지 동무에다가 ‘나’를 넣어서 그렇게 되더군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책과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백가지 친구이야기

이와타 겐자부로 지음, 이언숙 옮김, 호미(2002)


#책읽기#이와타 겐자부로#백 가지 친구 이야기#그림이야기#책읽기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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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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