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식민지였다.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은 소외당하고 착취를 당했다. 유사 이래 학생들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내신 챙기고, 수능 준비하고, 논술도 본다. 이게 뭔가. 교육부는 이제 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단호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길포성(45) 원장은 교육부에 대한 큰 불신을 토해냈다. 길 원장은 "내가 틀린 말 하는 거 아니니까, 실명 그대로 쓰라"고 강조하며 교육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는 2일 대학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기고, 특수목적고의 설립과 규제를 해당 시·도 교육청에 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명박 당선인은 자립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교(전문계 특성화교) 50여개 설립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런 정책을 대학과 교육청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교조 등은 '3불 정책(본고사, 고교 등급제, 기여 입학제)'이 무너지고 사교육비가 급증할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교육부가 인수위 업무보고를 한 다음날인 3일 오후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대치동 사교육 시장은 인수위의 교육정책 대변화 예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당당한 원장들 "교육부는 대학 못 이긴다... 폐지는 당연"
최근의 논란과 상관없는 듯 대치동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대치동에는 입시학원만 300여 개가 몰려있다. 이들 학원가의 불빛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고서를 든 많은 학생들은 논술학원으로, 보습학원으로 바쁘게 발길을 움직였다. 이곳의 학원장들은 대부분 인터뷰는 물론 학원 취재를 흔쾌히 허락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길포성 원장이 운영하는 오르다 학원. "교육부는 대학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교육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왜냐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대학 다음에 적응력과 흡수력이 빠른 곳이 바로 우리 학원들이다.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교육부는 뭔가? 그들은 아마추어다. 빨리 대학 입시를 대학에 넘겨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교육부는 공중분해 될 것이란 예측에 대해 길 원장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길 원장은 "대학과 입시학원은 살아남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했는데, 교육부는 그동안 자기들 밥그릇만 챙겼다"고 비난했다. 이어 길 원장은 "개인적으로 특목고 설치 등에는 비판적이지만, 이명박 당선인의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은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길 원장은 "아이들을 너무 어릴 때부터 입시 지옥으로 몰아넣으면 안 되고, 놀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은 아이들을 더 피곤하게 할 우려가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길 원장만이 아니다. 3일 만난 대치동의 모든 학원장들은 대학 입시 자율화와 고교 평준화 폐지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이들의 태도와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모두들 "부끄러울 게 없는데 왜 가명을 쓰나, 실명 그대로 밝혀도 상관없다"며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어차피 사교육비 많이 지출하는 사람은 상위계층" 신우형(42) 신청문학원 원장도 마찬가지다. 신 원장은 평준화 정책을 "공산주의"에 빗대며 비판했다. 신 원장은 "능력에 따라 사람이 구분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며 "실력차이에 상관없이 누구다 다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일하는 게 공산주의와 뭐가 다른가"라고 고교평준화를 비난했다. 이어 신 원장은 "자립형사립고와 특목고가 많이 생긴다고 서민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증가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원장은 "어차피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사람들은 상위계층일 뿐이고, 하위계층 사람들의 사교육비 증가는 많지 않을 것"이란 근거를 들었다. 신 원장은 또 "지식 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런 현상이 과거에 비해 심각해진 것도 아니다"며 "차라리 지식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에게 많은 강의료를 받아 학원에 다닐 수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신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원장실을 자주 찾았다. 신 원장은 매우 바빴다. 신청문학원에는 150~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다닌다. 강남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원정 수강을 오고 있었다.
이와 같이 대치동 학원 원장들의 주장은 대체로 동일했다. 대치동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의 견해도 대체로 비슷했다. 고교 1학년 딸의 입시 상담을 위해 학원을 찾은 김모(50)씨는 "정권 교체로 한국 교육이 새롭게 더욱 발전할 것 같다"며 "능력 되는대로 가르치고 싶은 대로 가르치겠다는 걸 그동안 왜 국가에서 제동을 걸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남 지역이 이 당선인에게 몰표를 준 것은 그동안의 교육 정책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학생들 "어떻게든 빨리 정해져야 학원 선생님이 대책 마련하는데" 이런 김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 강남 대치동 입시학원연합 변성자(52)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변 대표는 "이 당선인의 교육 정책이야말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정책"이라며 적극 옹호했다. "예전에는 학교 공부만 해도 서울대 갔다. 그런데 이젠 못 가지 않느냐. 바로 평준화 정책 때문이다. 강남에서 고3 학생 1년 과외 시키려면 1000만 원 정도가 든다. 가난한 학생들은 꿈도 못 꾼다. 그런데, 특목고에 입학하면 굳이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지 않느냐. 결국 가난한 아이들, 강북 지역 학생들에게 큰 혜택이 갈 것이다." 변 대표는 "중학생 사교육비가 더 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고교에서 대학 들어가는 건 사교육이 필요하지만, 중학생이 특목고 가는 건 혼자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가능하기 때문에 사교육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 대표는 또 "학부형 정서를 너무 모르고 교육을 하향평준화시킨 교육부는 없애도 된다"고 밝혔다.
저녁 8시. 대치역 근처 포장마차에서는 한 무리의 고교 1학년생들이 어묵 등으로 늦은 저녁을 대신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입시가 어떻게 바뀌든 빨리 정해졌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학원 선생님들이 대책을 마련해 준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학원이 없는 공부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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