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을 먹을 때마다 저는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자장면 한 그릇을 동생과 나눠먹던 내가 언제부터 자장면 한 그릇을 혼자 먹게 됐을까? 입가에 자장을 묻히고 양념을 흘려가며 먹는 것 반, 흘리는 것 반일 정도로 자장면 먹기에 서툴던 내가 언제부터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새침을 떨어가면서 자장면을 먹게 됐을까?'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말이죠.
자장면은 기다림과 기대가 담긴 음식이었습니다. 아마도 졸업식, 입학식, 생일을 학수고대했던 건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그래서 자장면을 먹을 땐 항상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남양주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그렇게 이사를 다닐 때마다 새 집으로 이사한 날, 마당에서 신문지를 깔고 먹었던 자장면도 그랬습니다. 페인트 냄새, 도배 풀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새로운 집에서의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기에 그저 맛있고 즐겁기만 했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그런 자장면은 막 먹어야 맛있습니다. 고급 중국음식점에서 코스 식사를 마치고 먹는 한 젓가락 분량의 자장면보다는 곱빼기로 시켜 마구 먹는 게 맛있습니다. 고급 그릇이 아닌 약간 낡은 중국집 플라스틱 배달그릇에 담겨 있어야 맛있습니다. 수입 피클이나 쫀득한 단무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노란물이 든 단무지’를 곁들여야 맛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 지 더... 결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집에서 온갖 고급 재료 다 넣고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들어도 자장면만큼은 오토바이에 실려 철가방에 담겨 온 중국집 배달 자장면이 더 맛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미료 때문에 중국집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는 것이 꺼려진다면 춘장을 사다가 집에서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어떨까요?
자장면 만들기
재료(6-7인분)
돼지고기 2컵(주사위 크기)
된장 1/2컵(집에서 만든 된장은 맛이 너무 진할 수 있으므로 시판 된장 혹은 일본 된장을 사용하세요)
진간장 3큰술
올리고당 2큰술
춘장 200그램(종이컵 1.5개 분량)
식용유 100cc(1/2컵,춘장 볶는 용도)
오징어 1마리
오징어 데친 육수 2컵
양파 1개(다지듯 잘게 썰어서)
호박 1/2개 (다지듯 잘게 썰어서)
감자 1개(다지듯 잘게 썰어서)
양배추 1/4통 (잘게 다지듯 썰어서)
물녹말 4큰술 (전분4큰술+물4큰술)
삶은 국수나 밥
만드는 법1. 오징어, 돼지고기를 한 입 크기 정도의 주사위 크기로 썰어둡니다. 양파, 호박, 감자, 양배추는 다지듯 잘게 썰어둡니다. 오징어는 물이 없는 냄비에 넣고 살짝 데칩니다.
2.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넣고 연기가 날 정도로 온도를 높이 올린 후 춘장을 넣고 타지 않도록 계속 한쪽 방향으로 저어주면서 볶습니다.
작은 기포가 생기고 검고 딱딱한 알갱이가 생길 정도면 다 볶아진 상태예요. 숟가락으로 저었을때 서걱서걱하는 느낌이 오면 다 된 것입니다.
3. 2의 기름을 체에 걸러 따라낸 후 볶은 춘장에 일본된장과 진간장을 넣어 다시 6-7분간 약불에서 볶습니다.
☞여기까지 볶아둔 다음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두고 그때 그때 야채와 고기와 섞어 자장소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4. 잘게 썬 채소와 오징어, 돼지고기를 팬에 넣고 3.에서 걸러낸 기름 한 숟가락을 두른 후 고기가 익을 때까지 볶다가 3의 볶은 춘장을 반 정도 넣고 약불에서 충분히 볶습니다.
5.여기에 오징어 데친 육수를 붓고 끓어오르면 녹말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 후 불에서 내리면 완성.
(중국집에서 먹는 자장면 맛을 내려면 화학 조미료를 조금 넣어야 합니다. 화학 조미료는 아주 소량만 넣어도 맛이 확 달라져서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가능하면 맛이 좀 덜해도 조미료 첨가를 하지 않고 먹는 편이 건강에 좋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이효연의 '요리를 들려주는 여자' http://blog.empas.com/happym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