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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끄나! 폴(팔)이랑 손이 아파 죽겄다. 바가지 들 심도 없당께. 이렇게 아파서 어찌 사끄나. 바빠서 병원도 못가고 있당께."
"그래도, 그렇게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참으면 어떡해. 다 제쳐두고 병원부터 가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먼저 전화해서 손녀들의 안부를 묻는 친정엄마와의 며칠 전 통화내용이다.

올해 예순여덟인 친정엄마. 내 기억속의 엄마는 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건강한 모습인데, 해가 갈수록 정정하신 모습은 하나 둘 사라지고 아프신 곳만 늘어나니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속상하다. 시집간 딸의 두 손녀 산후조리를 살신성인으로 하셨으니, 시골농사일에 지치고 힘든 몸에다 기름을 부은 격이 된 것이다.

우리엄마 배여사님 지난여름, 아버지 칠순여행때 제주도에서.
우리엄마 배여사님지난여름, 아버지 칠순여행때 제주도에서. ⓒ 박주연

5년 전, 흰박꽃 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이듬해에 큰딸을 낳았다. 그 무렵 한참 산후조리원이 열풍이었다.

"엄마! 산후조리원에서 조리해 볼까? 괜찮다던데. 산후조리도 잘 되고. 산모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아야. 무신 산후조리원이냐. 요새 뉴스에 나온 거 보고도 그러냐. 사고도 많고, 엄마가 올라가서 해줄 껀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잉. 글고 오죽 비싸냐. 그돈 있으면 빨랑 모아서 집 살 생각부터 해야제."

"그래도, 시골에 일 많잖아요. 그리고 엄마가 여기 오시면 한 달은 계셔야 하는데 아빠 식사는 어떻게 해요?"
"걱정하지 말어. 요샌 좀 덜 빠쁘고 아빠는 혼자서도 잘 해 드신깨. 아빠도 산후조리원은 생각도 말라고 하신께."

자식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친정부모님의 성화에 산후조리원은 엄두도 못내고, 다섯시간 거리인 저 머나먼 순천에서 엄마가 산후조리를 위해 열일 제쳐두고 상경하셨다. 양손에는 젖 도는데 좋다는 소꼬리며 돼지족발부터 부기 빠지도록 호박에 대추 넣고 달인 물, 말갛고 시원한 백김치까지 가득했다.

엄마의 산후조리는 병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큰애를 꼬박 하룻동안 진통하고도 여의치 않아 제왕절개로 출산했던 나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모유수유에 대한 굳은 의지를 갖고 있던 터라 갓 태어난 신생아와 모자동실을 사용했으니 그 치다꺼리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수술후유증으로 몸조차 가눌 수 없는 내 모든 뒤처리와 시시때때로 울어대는 아기를 달래는 것도 엄마 몫이요, 퉁퉁 불어 젖몸살을 앓는 내게 양배추잎을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한 후 가슴에 얹어주는 것도 엄마였다.

일주일간의 병원 신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의 산후조리는 이어졌다. 큰애한테 기저귀 발진이 생기자 부랴부랴 천 기저귀를 구입해서 하루 30장이 넘는 천기저귀를 빨고 삶고를 보름여 동안 반복했고, 당신은 땀을 비오듯 흘리시면서도 혹여 아기한테 땀띠라도 날까 염려하여 하루 종일 손부채로 더위를 식혀주었다.

미역국도 매일 같은 국을 먹으면 맛없다며 하루는 새우 넣고, 하루는 조개 넣고 등등 메뉴를 바꿔가며 끓여주셨다. 매일매일 반복되던 산후조리가 삼칠일이 되어갈 즈음, 순천에서 둘째오빠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언제까지 거기 계실 거예요? 아빠 찾아뵈었더니 모습이 너무 안 됐어요. 어서 오셔서 아빠부터 챙겨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막내 산후조리도 삼칠일 정도 했으면 됐고..."

오빠의 연락에 엄마는 아빠에 대한 걱정으로 다급해졌고, 이튿날 내려가시기로 했다. 내려가셔서 집안일 좀 해 놓으시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올라오겠노라며. 하지만, 혼자서 도저히 일주일동안 아기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안으면 바스러질것 같은 조그만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하며, 밤에 깨서 울 때 달랠 것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여 무작정 엄마를 따라 친정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집에 내려가는 다섯시간 동안 엄마는 아기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으셨다. 혹여 에어컨 바람이 아기를 상하게 할까 노심초사 이불로 아기를 감싸시며 내게는 안을 기회조차 안주셨다. 지금 관절에 무리가 가면 늙어서 고생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친정에 머문 한달 동안 엄마와 나는 아직 밤낮을 가리지 못하는 아기 때문에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끈끈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아이 모두 두 달여에 가까운 너무도 호강스러운 산후조리를 엄마로부터 받았다. 두 아이의 모유수유를 끊을 때도 젖몸살 때문에 친정에서 보름 가까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으니, 엄마가 지금 아픈 건 내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친정엄마의 무수한 날들의 희생과 사랑 덕분에 내 두 딸은 무럭무럭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주위 친구들 보면 서른 중반의 나이에 벌써 손목이 아프다느니, 무릎이 아파서 정형외과에 다녀왔다느니 하는데, 나는 크게 아프지 않은 걸 보면 이 모두 엄마표 산후조리 덕인 것 같아 엄마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사랑스러운 딸들 할머니의 사랑으로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딸들.
사랑스러운 딸들할머니의 사랑으로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딸들. ⓒ 박주연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두 딸의 엄마인 나는 솔직히 그 아이들이 커서 출산을 했을때, 우리엄마처럼  헌신적으로 산후조리를 해 줄 자신이 없다. 다만 그 아이들의 시대에는 육아며 보육정책이 보강되어 산후조리도 일정정도 국가가 책임져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지금처럼 임신에서부터 출산, 육아, 교육까지 모든 비용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아닌 애 낳아서 기르기 좋은 환경이 될 수 있기를 두 딸의 엄마로서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뭐하냐! 애기들 잘 놀제. 애기들이 보고 싶어 죽겄다. 한번 데리고 내려와라. 병원 갔는디 폴에 심줄이 하나 끊어진 것 같다드라. 시간 날 때마다 물리치료 받으러 다녀야제. 괜찮겄제.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잉. 글고 올겨울에도 흑염소에 한약 넣어서 한재 해 줄껀께 지성스럽게 챙겨 먹어야 한다. 잉. 늙어서 관절로 고생 안할려면 여자한테는 흑염소만한게 없어야. 알겄제?"

덧붙이는 글 | <산후조리 제대로 하셨습니까?> 응모글입니다.



#산후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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