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초부터 폭설이 제주섬을 하얗게 물들이더니 지금은 매일 따뜻하고 포근하여 겨울여행을 즐기는 가족들에게 더 없이 좋은 날들이 되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라산의 설경과 제주도의 색다른 경치는 제주여행을 더욱 설레게 만든다. 제주 땅을 하늘에서 바라보다 보면 구불구불하게 토막토막 땅들을 갈라놓고, 또 서로 서로 어깨를 걸고 계속 이어져 나간 돌담이 특이하게 눈에 들어온다.
제주땅 곳곳에 펼쳐진 돌담 '흑룡만리'예전에 어떤 이는 제주땅 곳곳에 펼쳐져 있는 돌담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유하여 흑룡만리라고 표현했다. 제주도의 검은 색 돌담을 전부 이으면 만리가 넘는다는 것이다. 제주의 돌담은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바닷가 가까운 낮은 지대의 돌담과 산간 지역의 돌담도 차이가 나며, 쌓는 돌과 생김새에 따라 다르다. 돌과 바람이 많은 섬이라는 옛말처럼 제주인이 살아온 역사가 담겨 있으며 제주인의 생활과 생업의 공간에 같이 존재하고 있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섬이어서 지질과 지형이 특이하다. 제주도의 돌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구멍이 숭숭 나있는 돌들이 많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구멍이 숭숭난 돌들을 다듬어서 맷돌, 절구, 돌화로 등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어서 사용하였으며, 또한 밭과 집의 경계를 구분 짓기 위하여 담을 쌓았고, 기괴하게 생긴 돌이나,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돌은 마을의 신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돌담을 보게 되는데, 돌로 쌓은 집 울타리는 ‘집담’, 밭 울타리는 ‘밭담’, 무덤의 울타리는 ‘산담’이라 부른다. 제주시를 벗어나 농촌으로 나가면 길가를 따라서 돌로 쌓은 밭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그 돌들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밭을 일구면서 나온 것들이다. 제주도의 땅은 돌밭이다. 흙보다는 돌이 더 많았다고 말할 정도이다.
17세기에 제주도에 유배되어 온 유학자 김정이 쓴 ‘제주풍토록’에는 “평평한 땅은 반도 안 되며, 밭을 가는 것은(돌밭에서 땅을 확보하는 것) 마치 고기의 배를 도려내는 듯하다”고 하여 농사짓기에 어려움을 말하였다. 밭을 일구면서 나온 돌들로 담을 쌓고 남은 돌들은 한쪽에 돌무덤(제주어로 머들이라고 함)을 만들어 놓았다.
언제부터 돌로 밭담을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나, 철제 농기구들이 늘어나면서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농지에 대한 소유 개념이 생겨난 이후일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고종 21년, 1234년에 김구가 탐라 판관으로 와서 보니 “밭의 경계가 없어서 힘 있는 자들이 남의 밭을 빼앗은 횡포가 심하여 이를 막기 위하여 돌로 밭담을 쌓게 했다”고 한다.
말 방목 피해 막으려 밭에 돌담 둘러또한 제주도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최대의 말 생산지였다. 말은 중요한 생산 및 전쟁수단이었으며, 제주도에는 호랑이와 같은 맹수가 없고 방목을 할 수 있는 넓은 초지가 있어서 말을 키우는 데 최적지였다. 해안가로부터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목초가 피어나기 시작하여 계속해서 점점 높은 지대로 옮겨가기 때문에 한라산까지 연중 말들을 방목하여 키웠다.
방목하는 말들이 밭작물에 피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돌로 담을 쌓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인 <남명소승>에도 “산에는 짐승, 들에는 가축이 있다. 천백마리씩 무리를 이루어 다니는 까닭에 밭을 일구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돌담을 둘러야 한다”고 하였다.
돌담 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도 할 수는 있으나 여러 사람이 같이 해야 하는 공동작업이다. 울퉁불퉁한 돌들을 쌓기만 해서 전부 돌담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집 울타리인 ‘집담’이나 무덤의 울타리인 ‘산담’은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쌓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위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일정한 규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긴 것도 제각각인 돌들을 이용하여 쌓은 것에 불과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그 안에 담겨져 있다.
제주도의 담들은 자세히 보면 구멍이 송송 나 있다. 바람이 통과하는 길이다. 태풍이 불어도 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바람이 통과하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해마다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인 제주섬에서 돌담의 구멍은 바람과 함께 생존해 온 제주인들의 지혜를 말해주는 것이다.
밭을 일구며 나온 돌로 밭담을 쌓는데 길가에서 멀리 떨어져 안에 있는 밭에 출입하기에 편하도록 돌담을 두텁게 쌓아서 그 위로 걸어 다닐 수 있게 한 담을 ‘잣담’이라고 한다. 요즈음 땅 투기하는 사람들이 길가의 밭을 먼저 사서 안에 있는 밭을 맹지로 만들어서 싼 값에 사는 세태와 비교하면, ‘잣담’은 서로 도와가며 살았던 풍습을 말해준다.
해안마을에서는 담을 쌓을 때 빈틈없이 쌓으며 지붕 높이로 높게 만들기도 한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함이다. 제주의 돌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거칠지만 바닷가 돌은 오랜 세월 파도에 쓸려서 매끈매끈하다. 해안마을에서는 이러한 돌을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돌담이라도 생김새가 틀리다.
무덤 울타리인 ‘산담’은 한 줄로 쌓은 외담과 가운데 잔돌을 놓아서 두텁게 쌓는 겹담이 있다. 산담은 육지의 다른 어느 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도에만 있는 특이한 것으로 제주도의 장묘문화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집 바깥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제주도에서는 ‘올래’라고 부른다. 예전에 부자집일수록 올래를 길게 만들었으며, 마차가 여유 있게 드나들 수 있는 폭으로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휘어지게 하였다. 바깥에서 집 안이 잘 보이지 않으며, 또한 바깥 공간에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 가는 중간 단계로서 제주인들의 공간 구분 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낸다.
올래에는 양 옆으로 기다란 돌담을 쌓는다. 쌓는 형태에 따라 잡굽담, 배케담 등으로 불리는데, 자그마한 돌멩이를 밑에 놓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놓아 만드는 돌담을 ‘잡굽담’이라 한다. 잡석을 굽에 놓아 만든 담이라는 말이다. 담은 대개 큰돌을 밑에 놓고 중간 돌을 위에 쌓는데, 잡굽담은 그 반대형식이다.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 청소년 돌담 쌓기 체험이러한 제주의 돌담이 지금은 문화유산으로 보전해야 한다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역사적인 보전 가치가 있는 몇몇 마을의 돌담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검토되기도 하였다. 또한 제주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은 돌담을 사진에 담아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돌담과 함께 제주의 풍광을 그림으로 그려서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제주도의 생태와 환경을 주제로 하는 여행사에서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 ‘돌담 쌓기’ 체험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강화시민연대에서 겨울철 청소년캠프로 선생님과 학생 30여명이 제주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 제주의 민속을 공부하고 돌담 쌓기 체험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제주민속촌박물관 전문 해설사의 설명과 직접 돌담을 쌓아 온 담당자가 지도하여 이미 만들어져 있는 초가집 돌담을 일부 허물어서 다시 쌓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눈으로만 구경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돌을 만져보고, 들어보고, 돌담을 쌓아보게 하여 색다른 체험이 되었다. 생전 처음 돌을 만져보고 직접 쌓아보는 것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또 돌을 올렸는데 균형이 안 맞고 모양이 안 나와서 내려놓고, 또 다시 올리는 등 설명과 지도에 따라서 차근차근 만들어 가면서 돌담을 완성해 나갔다.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제주민속 프로그램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개최하고 있다. 겨울철 민속음식 시식을 비롯하여 그네뛰기,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 윷놀이 등 민속놀이를 할 수 있다. 2월부터는 초가지붕 잇기 시연 및 집줄놓기 체험을 할 예정이며, 이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다. 금번 돌담쌓기 체험은 제주생태관광(
www.ecojeju.net)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덧붙이는 글 | 정희종 기자는 제주민속촌박물관(http://www.jejufolk.com)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