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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9월 27일 오후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맨 오른쪽),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회의에 앞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자료사진) ⓒ 조경국

북핵 신고를 둘러싸고 북미간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남북경협을 북핵 문제 진전에 맞춰 이행해 줄 것을 통일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2007년에 6자회담과 남북관계가 '병행 발전'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2008년 들어 둘 사이의 관계가 '병행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이 1월 4일 발표한 담화를 통해, 핵 신고 등과 관련해 "우리는 사실상 자기 할 바를 다한 상태"라며, 지체되고 있는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 교역법 종료 등 미국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11월에 핵신고서를 작성하였으며 그 내용을 미국측에 통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및 시리아 핵개발 지원 의혹도 해결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받지 못했다며, 핵 프로그램의 신고는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동아시아 순방길에 앞서 "미국은 북한이 얼마만큼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해, UEP와 북한-시리아 핵거래설 이외에도 플루토늄 분량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의적인 중재자 및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한국은 정권 교체기에 접어들어, 사실상 '휴업' 상태이다. 이러한 와중에 이명박 당선인측에서는 남북경협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한국 대외정책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남북경협을 북핵과 연계시키면,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더욱더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방적 상호주의, 북한과 미국에 위험한 신호 보낼 수도

 

이러한 이명박 당선인의 일방적 상호주의는 북한과 미국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 북한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 이후 10·4 남북정상 선언을 비롯해 남북한의 합의 사항 이행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종의 탐색기를 보내고 있는 북한은 새로운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남북관계와 북핵의 연계'로 나타날 경우, '처음부터 밀릴 수 없다'며 '역(易) 연계론'으로 맞설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가 10·4 남북정상 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시키는 등 역공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북한은 노무현 정부가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이유로 쌀지원을 중단하자 이산가족 상봉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이명박의 대북 상호주의가 미국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더욱 중대하다. 북핵 신고 문제가 갈수록 꼬이면서, 부시 행정부는 강경파는 물론이고 일부 온건파로부터도 대북정책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대북 상호주의를 앞세울 경우, 미국 강경파들은 북한을 압박하고 봉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쾌재를 부르게 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강경파들은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해 유실되어왔다며, 이를 또 다른 의미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인식해왔다. 대표적인 대북강경파 가운데 한 사람인 니콜라스 에버스타드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일컬은 것은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압박'보다 '신뢰'가 우선되어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제연구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당선인측에서도 강조하는 것처럼 북핵 해결은 대단히 중요하다. 차기 정부가 북핵 해결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 의식이 정책 수단에 대한 신중함과 치밀함을 동반하지 못한다면, 여러 부작용만 낳으면서 북핵 해결이라는 목적을 더욱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명박 당선인을 비롯한 외교통일안보 정책의 핵심적인 인사들은 '비핵·개방 3000'을 북핵 해결의 유력한 방법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을 선택하면 국제협력기금 400억달러를 조성해 10년 이내에 북한의 1인당 GDP를 3000달러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북한에게 매력이 아니라 '그림의 떡'으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1인당 GDP 3000달러'는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실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이 구상을 믿고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름없다. 더구나 이명박 당선인측과 북한 사이에는 최소한의 신뢰관계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을 믿게 하는 것은 결국 신뢰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쌓는 방법은 각종 6자회담 합의와 함께 10·4 남북정상 선언을 비롯한 기존의 남북한 사이의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부의 폐지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재검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당근과 채찍?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봐야

 

흔히 북한을 다룰 때에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수위에서 밝힌 '남북경협과 북핵 연계론'이 채찍에 해당된다면, '비핵·개방 3000'은 당근에 해당된다.

 

그러나 연계론이라는 채찍으로는 북한의 양보를 받아낼 수 없고 오히려 그 피해는 남북한 주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채찍이 아니다. '비핵·개방 3000' 역시 신뢰가 없으면 당근이 아니라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명박 당선인은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을 채찍과 당근으로 길들어야 할 '말'로 보는 한, 제대로 된 대북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국익을 우선시하는 일반적 의미의 국가이자,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라는 이중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성도 여기에서 나온다.

 

'죽고 사는 문제'이자, '먹고 사는 문제'의 토대인 평화와 관련해 이명박 당선인측의 보다 전향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북핵 #상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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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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