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낮은 동산이 예쁘게 감싸안은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주소도 없어져 버린 경남 김해군 가락면 상덕리 덕계마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고향의 봄'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제가 자란 동네, 그 골목들이 어릿어릿 물기에 젖어 눈 앞에 맴을 돌곤 합니다. 동산 맨 위에 예배당이 있고, 예배당 돌층계를 내려와 맞은 편 돌층계를 다시 오르면 거기 대문도 없는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예배당 아래,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우리 집. 엄마는 날마다 아프고…. 우물은 딱 하나. 저 산 아래 한참이나 내려간 곳 동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물동이를 이고 다니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새벽 물지게를 져 날라주시던 울 아부지. 어느 날 병약한 엄마를 위하여 아버지는 우물을 파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양지바른 장독대 그 담장 아래 우물이 있었으면 딱 좋을만한 그곳에 무작정하고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엄마를 위하여…,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평생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해보지 아니했을, 그럼에도 사무치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는 병든 아내를 위하여…. 혼자서 들일을 다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물이 나올 때까지 밤이 깊도록, 그 밤이 이슥하도록 땅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실 줄 몰랐습니다. 몇 날이고, 몇 날이고 물이 나올 때까지 지치지도 않으시고,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드디어 가느다란 물줄기를 찾으신 날. 아부지는 마루에 홀로 앉아 저 멀리 들판을 내려다보시며 낮은 음성으로 흥얼흥얼 노랠 부르셨습니다. 아무리 기뻐도, 아무리 서러워도 묵묵히 혼자 삭이시던 울아부지. 그 우물은 까마득하니 깊고도 깊었습니다. 물 맛 또한 좋아서, 그리고 그 사연 또한 사무쳐서 온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자자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남의 집이 되어버린 우리 집. 그리고 남의 것이 되어 버린 울 아부지의 우물물이 어쩌다 한밤중 눈이 뜨이는 날이면 눈물겹도록 그립습니다. 이제 저 하늘나라에 계신 울 아부지. 살아생전 한 번도 다정하게 날 불러주신 적 없으시지만, 단 한 번도 다정히 내 손 꼭 잡아 주신 적 없으시지만 혹 저 하늘에서 울 아부지 날 내려다 보시면서 "숙아, 아부지가 니한태 뭘 주믄 좋겠노?" 물어봐 주신다면, 저는 대답할 것입니다. "아부지…, 아부진 그 우물을 저한태 주셨습니더. 그 우물 속에 들어있는 사랑을 지금도 마시고 있습니더. 그것 있으믄 세상 아무것도 힘들지 않습니더……. 편히 계시이소.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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