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를 누가 맡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다음가는 자리에 어떤 인물을 기용하느냐는, 이명박 정부의 출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국민들은 총리 후보의 이름을 접하며 새 정부가 가려는 방향에 대한 이명박 당선인의 의중을 읽게될 것이다. 언론에서는 총리 후보로 여러 사람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 가운데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유력 후보군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의 최측근인 최시중 취임준비위 자문위원은 새 정부 첫 총리로 "박근혜 전 대표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 둘 다 유력하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거부한다면 "계속 제안해 봐야 한다고 본다"는 의견도 꺼냈다. 성사 가능성에 상관없이, 이명박 당선인 측에서 두 사람에 대해 계속 욕심을 내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박근혜 총리', '실용주의 정부'와 안 어울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 이미 거절의사를 밝힌 상태다. 박 전 대표는 총리직 제안이 온다해도 안 하겠다고 분명히 뜻을 밝혔다. 박 전 대표가 지금 총리직을 고사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차기'를 노리는 박 전대표로서는 4월 총선에서 자신의 세력을 최대한 국회에 진출시키는 것이 최대 과제다. 그래야 한나라당의 당권을 가질 수 있고, 이명박 당선인의 의중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총리직을 맡게 되면 당장 박 전 대표 자신이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당내 공천과 관련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제약이 따르게 된다. 박 전 대표가 지금 총리직을 맡을 수 없는 이유다. 어차피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박 전 대표를 계속 탐내고 있는 이 당선인 측의 발상이다. '이명박 대통령 - 박근혜 총리' 체제가 들어서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상징적인 발판이 마련되는 효과를 기대하는 듯하다. 거기에다가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그리고 당내 분란까지 잠재울 수 있다는 강점이 있을 것이다. 이 당선인 측의 기대가 무엇인지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총리' 구상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 인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화두로 실용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첫 총리는 그러한 국정철학에 걸맞은 탈이념적이고 실용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보았듯이 매우 이념지향적인 정치인이다. 이명박 당선인보다 이념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고 정치적인 색채가 무척 강하다. 물론 한나라당의 지지층을 결속시키고 보수연합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실용주의 정부'가 아닌 '보수 정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명박 정부의 무게는 급격히 오른쪽으로 쏠리게 되고, 국민통합의 과제는 구호로 끝나게 될지 모른다. '보수'라는 이념이 아니라, 이명박의 경제살리기를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결국 거창하게 내걸었던 실용주의라는 국정철학은 한갖 구호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박근혜 총리' 체제는 과거 DJP 연합을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김종필 두 정치지도자의 연합을 통해 정부가 구성되었을 때, 지분나누기의 폐해가 어떠했는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최근 한나라당 공천 시기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갈등 양상을 보면 역시 그같은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한나라당의 내부문제는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옳다. '박근혜 총리' 카드로 자신들의 내부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적절하지 못하다. 총리 기용은 국가의 문제이지 정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실용주의 정부가 되겠다면, 이념과 정파의 색채가 적은 비정치인, 그대신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첫 총리로 기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박 전 대표가 거절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도 이 당선인 측에서 '박근혜 총리'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실용주의 정부를 향한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다. '심대평 총리'는 배신의 정치 조장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심대평 총리' 카드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심대평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연대했고 '이회창 신당'에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사다. 그런데 총리직을 거론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회창 전 총재를 배신하고 이명박 정부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다. 그 속내가 너무도 정치적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민심을 잡고 '이회창 신당'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다. '심대평 총리'는 철저하게 정치적 고려가 우선하는 카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심대평 대표가 갑자기 이명박 정부의 총리직을 맡게될 경우 그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도 없는 모습이다. 그 장면이 과연 반대편 사람을 기용하는 '포용'으로 비칠까. 그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따라 변절하는 '배신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시절에 갑자기 한나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으로 가서 비례대표 의원이 되었던 김혁규 전 지사가 결국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발 속에서 총리직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심대평 대표도 총리직 제안이 와도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당 창당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신의와 신뢰를 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 측의 바람과는 달리 '심대평 총리' 카드도 성사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결국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공연히 정치 속내만 드러내게 된 이명박 당선인 측의 사고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실용주의 정부를 하겠다면서 왜 굳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정치인 총리' 카드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러지 않고서는 실용주의 정부를 이끌고 갈 능력있는 총리감을 찾지 못할 정도로, 시작부터 인재난에 봉착했다는 이야기인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당선인 측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인 총리' 구상들은 솔직히 기대 이하의 졸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