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우리의 삶과 공존해왔다. 그런데도 선뜻 문화를 미학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문화라고 할 수 없는 것들까지 이미 적정한 틀을 갖추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떠한 흐름이나 분류에 따라 철학적인 사유로 꿰뚫는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지훈의 〈가까운 문화 멀어진 미학〉은 너무나 어려울 것 같은 문화 속의 미학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그만큼 문화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일상의 문화 속으로 가까이에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나는 특히 예술이 살리는 삶을 얘기하고 싶었다. ‘생명’이 한 마디로 ‘살라고 하는 명령’이라면 예술은 이 명령을 가장 잘 드러내어 주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결같이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과 일치’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양상이라는 것이 언제나 ‘기우뚱한 균형’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서문) 문화는 오늘날 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그것을 꾸미거나 가꾸는 차원만의 대상은 아니다. 있는 그 자체를 아름답게 드러낼 때에 더욱더 큰 가치와 힘을 지니게 된다. 더욱이 오늘날의 예술은 생명과 맞닿아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예술의 양상은 생명의 통로를 지닐 때에만 가치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 중 특징적인 몇 가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음악의 탄생과 변천 등 음악의 역사에서부터, 고전 발레와 한국 춤의 깊이, 건축의 역사와 양태, 사진의 철학, 그리고 고대 한국의 상상력까지 우리 속에 살아 숨쉬는 친숙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 음악과 건축에 관련된 미학은 상당한 의미를 심어 준다. 물론 그것은 각기 다른 존재물이다. 예술이나 문화의 형태도 각기 다른 양태를 지닌다. 그런데도 그 둘 속에서 공감적인 이해를 지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조화와 어울림에 있다. 자연과의 조화, 생명과의 어울림이 그것이다. 음악을 통해 구현하는 인간의 생태적 즐거움과 유희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되었다.오랜 옛 시절에는 우주와 자연계의 흐름에 따라 자유분방한 음을 연출했다. 그러나 왕실과 귀족사회의 탄생 이래 오페라는 모든 음률을 제정하고 정제했다. 그렇지만 감각과 육체적 미학을 끌어안는 현대의 대중음악은 그 지평을 더 다양하게 열어 놓았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의 경우도 비슷하다. 판소리는 순수한 성악만이 아니라 육체의 역동성을 인정하며, 몸이 움직이고 스스로를 경험하는 방식도 포괄하는 셈이다. 이런 관점들 속에는 모두 비합법적인 것을 합법화하는 힘의 미학이 있고, 노래를 하나의 ‘예술적 게릴라전’으로 만드는 미학이 들어 있다.”(54쪽) 건축도 시대에 따라 그 형식과 양태와 재료가 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살림과 주거 공간이 자연과 한 몸이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연보다 더 편리한 기능만을 따졌다. 이후 멋과 예술, 자연과 하나 되는 건축물이 유행했고, 흙과 같은 생명체와 하나 되는 건축물이 들어섰다. 그래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새로 지은 리움 미술관이나 서울대학 미술관도 땅을 깎아내어 평지 위에 집을 세우는 게 아니라, 땅의 굴곡이나 경사를 살리면서 집 안팎을 연결하여 짓는다고 한다. 이른바 형상과 배경, 내부와 외부, 건물과 대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통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지와 하늘, 땅의 공간을 모두 하나로 이었던 그 옛 형태를 복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듯 이 책은 아주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를 뒤쫓으며 우리 시대에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토록 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들의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는 문화 속에서 생명의 사유를 깊이 있게 퍼 올려주고 있는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샘물과 같은 미학서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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