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 공천을 놓고 한나라당의 계파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부정·비리 연루자의 공천을 원천봉쇄한 당규 개정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4·25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예상 외의 참패를 당한 후 당 쇄신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한 조항인데, 이를 18대 국회의원 총선의 공천심사에 적용할 경우 일부 현역의원들의 공천 탈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조항을 적용할 경우, 친박근혜계의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도 공천탈락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친박 진영이 정치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공천 후보들 떨게 하는 '공직후보자추천 규정' 개정안 3조2항과 9조 지난해 7월 2일 이종구 의원(당시 사무1부총장)이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한 '공직후보자추천 규정' 개정안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형이 확정된 비리 연루자의 공천 신청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이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고 강재섭 대표가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정안은 같은 해 9월 11일 상임전국위원회에 상정돼 다음과 같이 명문화됐다. - 3조2항 : 각급 공천심사위원회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신청의 자격을 불허한다. - 9조 : 부정·비리 등에 관련된 공직후보 추천신청자는 공직후보자로 부적격한 것으로 본다. 이종구 의원은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최고위원회의는 물론, 상임전국위에서도 '너무 지나치다, 이런 규정까지 만들어야 하냐'는 반발 기류가 강했고, '사면복권자는 제외한다'는 단서 조항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며 "전국위에서 한 차례 반려됐다가 당내 경선이 끝난 뒤 상임전국위에 다시 상정해 통과시킨 조항"이라고 전했다. 익명의 당직자도 "자칫 묻힐 수도 있는 조항이었는데, 강 대표가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면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조항으로 인해 과거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부 의원들이 공천에 탈락되는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해당 조항이 특정 계파에 타격을 주기 위해 마련된 '표적 당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무성·서청원 등 '친박'계 겨냥한 '표적 당규'? 2002년 대선 당시 12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서청원 전 대표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는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친박 진영의 한 의원은 "전국위에서 한 차례 반려된 당규 개정안을 상임전국위에 재상정한 것도 박근혜 의원을 경선에서 도왔던 서 전 대표를 겨냥한 친이명박계의 의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리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의원들의 거취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김무성 의원은 1996년 5월 공용주파수통신(TRS) 사업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2000만원을 받은 일로 인해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로 기소돼 1999년 7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000만원의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이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의원직을 잃을 수 있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 의원이 수차례 사양하다 돈을 받았고, 돈의 성격도 '당선 축하금'이었다"며 1심의 징역형을 벌금형으로 경감했다. 김 의원은 2000년 총선에서 투표일을 앞두고 같은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건넸다가 이듬해 3월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김 의원으로서는 '과거지사'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의식해야 할 한나라당이 이를 문제삼아 공천에서 탈락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성범,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Y씨도 '좌불안석' 2006년 지방선거 공천비리에 연루된 후 탈당했다가 지난해 7월 복당한 박성범 의원(서울 중구)의 처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의원은 2006년 1월 한나라당 중구청장 후보 공천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로베르토 카발리 밍크코트, 루이13세 양주, 페리가모 넥타이 2점 등 약 824만원 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가 인정돼 지난해 4월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박 의원이 공천 대가로 제공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금품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한나라당은 "당이 검찰에 고발한 현금수수 부분에 대해 무죄결정이 나왔고 박 의원이 탈당 후 근신한 점 등을 고려해 복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박 의원의 복당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원칙 없이 세를 불린다는 비판도 많았다. 2002년 대선을 사흘 앞두고 썬앤문그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던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Y씨도 '좌불안석'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공천 부적격' 판정을 받을 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개정안 중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천을 불허한다'는 문구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종구 의원은 이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사람은 안 된다는 얘기였지, 벌금형 받은 사람까지 배제하자는 취지의 개정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벌금을 낸 것으로 죄의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 공천까지 안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기에 상임전국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게 이 의원의 얘기다. 반면,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당 윤리위는 검찰의 기소 처분만 받아도 해당자의 당원권을 정지시켜 공천 신청을 못하게 하고 있다"며 "사안별로 꼼꼼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벌금형 받은 사람들의 공천도 허용하지 않는 게 맞다"고 잘라 말했다. 당규 해석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개로, 이 문제로 인해 당내 계파 갈등이 한층 격화될 조짐도 엿보인다. 친박 진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의 정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마련된 '표적' 조항"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한 측근은 "오래된 다락방을 털면 먼지가 나는 법이다, 이미 두 차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때도 문제 삼지 않던 일을 당규로 다시 포장해서 내놓은 의도가 불순하다"며 "과거의 잘못을 다시 처벌하려고 새로운 규정을 만든 것도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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