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간 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 화악산 꼭대기에서 칼바람이 내리치고 북한강이 얼어붙느라 쩌렁쩌렁 울어댑니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13˚를 오르내리며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추운 가슴을 데우려면 보일러를 틀어야 하는데 등유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점화버튼에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덜덜 떨려오고, 보일러가 돌기 시작하면 돈 타는 냄새로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기름이 졸아드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애를 태우다 황토온돌방을 만들고 군불을 때기 시작합니다. 군불을 때려면 매일처럼 땔나무를 해야 합니다.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간벌작업장을 찾아가 땔나무를 구해옵니다. 낙엽송이나 잣나무 등 잡나무는 5톤 트럭 한 차에 오십 만원 정도합니다. 참나무가 화력은 끝내주지만 어지간해선 내 차지가 돌아오질 않습니다. 잡나무만도 감지덕지입니다.
올해는 잣나무를 마당가득 부려놓고 나무들을 잘라 토막을 쳐놓습니다. 작은 나무들은 카터기로, 통나무들은 기계톱으로 붕붕 날려댑니다. 기계들을 사용하려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한눈이라도 팔다 보면 톱이 살아서 날뛰기 때문입니다. 나무토막을 내다 나무 속 구경을 합니다. 나무는 계절 변화에 따라 세포분열을 하며 성장속도를 조절한다 합니다. 봄여름엔 세포벽이 두꺼워 나이테가 여리고, 가을 겨울은 반대로 얇아 진하게 나타납니다. 나이테를 보면 그 해 날씨는 물론 그 동안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주름살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비바람을 견뎌낸 되알진 참을성과 벌레들을 길러낸 아픔의 상처... 나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몇 살이나 되었는지 벌레들이 모여 구멍이 뻥 뚫리도록 훤하게 파먹었습니다. 속을 파 먹이며 벌레들을 살려내느라 고통이 컸으련만, 수십 년 동안 끄떡없이 꽃을 피우고 잣을 채워낸 정성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나무토막들이 탱탱하게 얼어붙어 달달한 떨림을 보일 때 장작 패기로는 그만입니다. 도끼날에 힘을 불어넣고 자루를 단단히 잡아 날을 고추 세운 다음, 통나무와 한판 기(氣) 싸움을 시작합니다. 온정신을 몰아 한 번, 두 번, 세 번…. 내리치면 꿈쩍도 않을 것 같던 통나무들도 나 몰라라 쫙 갈라집니다. 항복이나 하듯 양쪽으로 손을 벌리며 하얀 속살을 드러냅니다. 숨을 몰아쉬며 맑은 햇살 아래 누워 있는 나목(裸木)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이 솟아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해줍니다.
장작을 패다 보면 통나무들이 삶의 이야기를 나누자 합니다. 나무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나이테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둥글게 살아온 시간의 발자국을 두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아픔과 기쁨의 나이테를 숨기며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도 마음도 둥글게 변했다 합니다. 통나무와 기 싸움을 벌이다 이마의 흐른 땀을 훔쳐 냅니다. 어느새 이마엔 길다만 줄무늬가 들쑥날쑥, 손가락 끝마디마다엔 둥근 무늬가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세월의 돌기가 거기에 감겨 있었던 것입니다. 아, 아프고 서러운 시간의 나이테들, 이마처럼 직선의 나이테는 줄고, 엄지손가락 나이테 닮은 순간들을 더 둥글게 감아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탱탱한 장작들을 두들겨대며 나무들과의 긴 시간을 만나러 매서운 겨울여행을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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