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규야, 아버지 정신적 고통에 못 살겠다. 나 보려면 지금 집에 들어와라." 이 한마디는 고 이영권씨(66·소원면 의항2리)의 마지막 유언이다. 이영권씨는 태안반도를 엄습한 기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한 달 넘게 일을 했지만 희망보다는 절망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는 현실을 이기기 못하고 끝내 목숨을 끊었다. 16일에는 태안군 근흥면에 사는 한 어촌 마을의 김아무개(73)씨가 또 음독자살을 했다. 김씨 역시 바지락을 채취해 매일 생계를 이어가던 어민으로 최근 기름 유출사고이후 채취 작업이 전면 중단되었고, 그나마 직접 피해지역이 아니라 일당을 받는 방제 작업도 못하게 되는 등 한 달 넘게 하는 일 없이 마을 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걱정의 날을 보내왔다. 그리고 김씨는 16일 오후 평상시와 같이 마을회관을 나온 후 음독자살 했다. 이처럼 태안기름유출사고 이후 잇따라 피해어민들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삶의 희망이자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굴 밭과 양식장을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 누군가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 너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이후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복잡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고 이영권씨의 경우 한 달 넘게 하루 종일 복구 작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우체통에 쌓이는 것은 연체된 각종 세금과 공과금 납부서, 작은 아들을 장가를 보내야하는데 해줄 것이 없다는 부담감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가해회사 보상 담당자들이 힘들게 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에 와 "무면허 양식장은 보상이 안 되고 면허 양식장도 3년간 소득을 증명할 근거가 없으면 전혀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는 애기는 이씨를 힘 빠지게 했다. 또한 그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버거운 현실이 그를 가로막았다. 대책위, 수협, 면사무소, 가해회사 등 서류를 요구하는 곳이 여러 곳이었고, 누군가와 상의를 하고 싶어도 말 할 사람도 없는 등 소외 받고 있다는 중압감이 삶의 희망을 포기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고 발생이후 대통령까지 방문하고 새로운 당선인도 방문하여 각종 대책을 내 놓았지만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전해진 것은 전무한 상태다. 일당으로 쳐주겠다는 방제비도 언제 줄지 모르고, 일당마저도 1월부터는 줄어든다고 한다. 또한 설이 지나면 전문 방제 업체가 작업을 담당하기로 해 태안 주민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영결식장에서 만나본 대부분의 피해 어민들의 얘기가 숨진 이씨와 비슷한 처지로 추가로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언제든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애기가 많았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선 정부가 충남도에 내려준 특별생계비의 신속한 지급과 추가 지원으로 피해 어민들의 숨통을 터주고 방제비 일당도 약속대로 이번 달 20일 안에 꼭 지급이 되어야만 피해어민들의 막힌 경제가 일부 풀릴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항구적이고 주민들의 요구가 담긴 특별법의 2월 임시 국회 통과로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찰의 엄정한 수사로 사고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사법 처리로 재발의 가능성을 없애고, 가해자에게 무한 책임의 엄벌을 가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해자로 지목을 받고 있는 삼성중공업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완전 배상, 완전 복구, 무한 책임의 자세를 보이는 것만이 제 3의 불행한 사고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는 태안 주민 모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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