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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탕. 집 근처의 대중탕에서 부자지간의 정이 묻어납니다.
목욕탕. 집 근처의 대중탕에서 부자지간의 정이 묻어납니다. ⓒ 임현철

“아, 따거. 아빠 아파요!”

아들과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아들 놈 때 밀기도 쉽지 않습니다. 때 수건으로 박박 밀면 힘이 덜 들 텐데. 이건 숫제 손으로 밀어달라니 힘이 들 밖에. 때 수건으로 밀면 아프다나요.

어린 시절, 목욕은 주로 부엌에서 했더랬습니다. 물을 데워 커다란 고무 목간통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들어앉아 때를 불리고 겨드랑이며, 목을 씻을 때는 왜 그리 간지러웠는지. 당시 목욕은 명절이나 개학 전, 신체검사 전날 등 특별한 날만 하던 연례행사였는데….

목욕탕에서 어깨에 힘주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는 사람, 물건(?) 큰 사람, 아들과 같이 온 사람이 그렇습니다.

"시원하니 좋은데 왜 그래"
 '목욕합니다'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목욕합니다'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 임현철
어느 날 목욕탕에서 지인과 만났습니다. 그는 혼자 온탕에 앉아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묻고 침묵. 그 사이를 비집고,

“태빈아, 탕에서 몸 불려라. 그래야 빡빡 잘 닦이지.”
“물 안 뜨거워요?”
“어. 시원하다.”
“앗~ 뜨거. 물이 너무 뜨겁잖아요.”
“시원하니 좋은데 왜 그래.”


지인, 우리 부자(父子)의 대화를 듣더니 씨익 미소 짓습니다. 그는 아마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뜨거운 물에 지 자식 데이지, 내 자식 데이냐’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을 겁니다. ‘뜨거운 물의 시원함을 알게 된 나이’, 뭐 이런 거겠죠.

또 그의 표정에서 “아들과 목욕탕 다니는 것 부럽다, 부러워”를 읽습니다. 혼자 온 아버지들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막연히 자식 낳으면 ‘서로 등 밀어줘야지’ 하는 바람이 물거품이 된, 그런 비애(?)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습니다. 혼자 다니는 목욕탕, 아들 때 안 밀어도 되니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그가 혼자 때를 밀 때, 나는 아들 녀석의 몸 구석구석을 닦느라 손에 힘이 풀립니다.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가 먼저 가겠노라며 떠납니다.

아는 사람과 또 마주쳤습니다. 그의 뒤에는 둘이 딸렸습니다. 웃음이 절로 터집니다. ‘저 두 놈 씻기려면 엄청 힘들겠다’ 싶습니다. 그나마 나는 한 놈이라 다행이지 둘이면 어찌되었을까, 아찔합니다.

"우리 작은 아들, 거웇이 났네"

토요일, “아빠, 우리 목욕탕에 가요” 하고 아이가 조릅니다. 탕으로 들어서니 건장한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 때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습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젊은데 아들들 몸집이 꽤 큽니다. ‘저이는 아들 때 안 밀어도 되겠군’ 여겼는데, 그 아버지 “야, 잘 닦았냐?”며 한 놈을 붙잡습니다.

“야! 요거 봐. 빡빡 밀어라 했는데 때가 밀리잖아.”
“잘 밀었는데….”


때수건으로 손을 주욱 쭉, 밉니다. ‘아파~’ 할 줄 알았는데 군소리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힘 조절을 잘 한 것이거나, 아이가 큰 것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다리를 밀던 아버지 발로 아들 생식기를 건드리며 “우리 작은 아들, 거웇이 났네”하며 장난을 칩니다. 웃음소리가 목욕탕 안에 퍼집니다.

“태빈아! 저것 좀 봐라 때수건으로 빡빡 밀지. 이제 우리도 때수건으로 밀자?”
“안돼요. 때수건으로 밀면 아파요. 그냥 손으로 밀어요.”
“야, 손으로 밀면 얼마나 힘든지 아냐? 너도 밀어봐라, 얼마나 힘든지.”
“그래도 손으로 밀어요.”


그러는 사이, 그는 작은 아들을 놓아주고 큰 아들과 때밀이 대야로 옮겨갑니다. 거웇이 무성한 남자 둘이서 본격적으로 등이며 배를 밀 태세입니다. 아들이 먼저 누웠습니다. 역시 아버지입니다. 서로 몸을 밀어주며 부자지간의 뜨거운 정을 나눕니다.

 아버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칼가는 대장간지기 아버지도 우리들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아버지. 지금은 거의 사라진 칼가는 대장간지기 아버지도 우리들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 임현철

"아빠는 무슨 때가 있다고 그래요?"

우리 부자도 자리를 잡고 몸을 닦습니다. 충분히 몸을 불린 터라 쉬 밀립니다.

“태빈아! 여봐라 여봐. 거지가 아우님 하겠다. 때 밀린 거 보이지?”
“아뇨. 난 안 보이는데요. 때도 없구만, 아빠는 무슨 때가 있다고 그래요?”


저 능청, 누굴 닮아 그러는지 피식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아들을 두고 때밀이 기계로 등을 밉니다. 등을 밀다 말고 ‘우리 아들은 언제 아빠 등 시원하게 밀어줄까’ 싶습니다. 냉탕으로 들어갑니다. 아들이 선수를 칩니다.

“아빠, 차가우니까 물 뿌리지 마세요.”

에이, 아들 몸에 찬물 뿌리는 기막힌 재미를 막다니.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대신 아들 손을 잡고 수영을 가르칩니다. “야! 발을 이리이리 저어야지.” 동네 목욕탕이라 가능한 그림입니다.

부자지간의 재미는 목욕이 끝나고도 남아 있습니다. “아빠, 저 뭐 사 주세요.” 과자나 어묵 먹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누나에게 말하지 마라” 며 작은 비밀을 만들기도 합니다.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 아들은 신이 납니다.

내 아버지께서도 과자를 사주시고, 용돈도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때를 빡빡 밀어 팔이며 다리가 빠알갛게 물들어도 좋았던 기억. 그게 부자지간의 정이겠지요.

그런데 초등학교 이후 아버지 벗은 몸과 등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팔순이신 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3대가 목욕탕에 가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등을 꼭 밀어드려야겠습니다. 굽은 등이겠지요.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나의 아버지와 아들. 함께 등밀러 가야겠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아들. 함께 등밀러 가야겠습니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와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목욕#아버지#때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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