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많은 동네는 행복한 동네입니다. 나무 울타리가 있는 동네는 어김없이 좁은 골목길이 있고, 골목길이 있는 동네는 담장의 어깨가 낮습니다. 그래서 데면데면한 이웃간의 시선을 가려주는, 발 구실을 하는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골목길은, 그 나무 그늘 아래는, 손때 묻은 허름한 평상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동네 한바퀴 산책 하다보면, 길은 길과 이어져 이웃동네도 우리 동네처럼 돌아다니게 됩니다. 세상에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아름다운 이 먼나무의 열매를 보고도, 무식하게 먼나무인줄 모르고 얼마간 지나다녔습니다. 그런데 먼나무라고 이름이 지어진 유래가 무척 재미 있네요.
제주도에 관광 온 외국인이 먼나무를 보고, '저 나무가 먼 나무에요 ?'하고 물어보니, 안내하는 사람이 먼나무 말이에요? 하고 되물어서, '먼나무'가 되었다고 하네요.
먼나무는 사철나무이며, 잎이 푸르고, 열매가 알전구처럼 붉어서 정말 따뜻한 난로 같은 나무네요. 제주도와 전남 보길도에 한해서 자란다고 하는데, 해운대 해변가에는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도, 그렇게 많이들 알고 있는 나무는 아닌 듯합니다.
먼나무가 있는 골목길의 이웃들도, 서로들 나무를 쳐다보며 '이 나무가 뭔 나무여?' 하고 물으면, '나도 몰라. 뭔 나무인지' 하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웃의 나이 많은 한 아주머니가 먼나무에 대해 잘 알고 계셨습니다.
꽃이 암나무· 수나무 따로 핀다고 하네요. 열매는 그러니까 암나무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10월경에 천천히 붉어져서, 이듬해 봄철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먹낭' 또는 '개먹낭'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나무를 다 좋아하고, 노래나 시도 나무에 대한 것들이 많습니다. 나무에 대한 노래는, 푸른 사철 소나무의 지조를 노래한, 가곡 '선구자'의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의 가사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먼나무는 사철나무에 속하지만, 왠지 소나무처럼 고결한 절개를 풍기지 않습니다. 박정원 시인의 '먼나무'. 박 시인이 노래한 '먼나무'는, 눈 덮인 화산을 품은 나무같습니다.
먼나무… 하고 나무 이름을 부르면, 그 풍기는 어감이 정말 시적이네요. 그러나 뜨거운 난로처럼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먼…나무….
쌩쌩 바람 부는 골목길에 서 있는 먼나무는, 훈훈한 이웃들의 인정처럼 골목길이 훈훈합니다. 도로의 어지러운 쓰레기처럼 취급되는, 낙엽을 날리는 여느 가로수보다는, 관상수로는 정말 그저 그만인 듯합니다.
정말 먼나무의 암나무만 이렇게 붉은 열매를 맺는다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 같은 따뜻한 나무란 생각도 듭니다.
내 몸에 불을 당겨라 불이 붙거든 남김없이 태워라 그래도 꺼지지 않는다면 기나긴 겨울밤 천지연폭포 가랑이 사이를 헤매다가 하늘로 올라간 한 마리 무태장어인줄 알아라 내 너를 잊지 못하여 서귀포의 팔을 베고 누운 다음 쉼 없는 바다를 외면하였다 몸은 비록 멀리 있어도 사랑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밤마다 태워도 싸늘한 먼먼나무 - 박정원, '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