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촨에서 란저우(兰州)로 가는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렸다. 날이 밝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참 인상적이다. 끝이 없을 듯한 고원 평야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 높은 산이 길게 뻗어 있다. 새벽에 도착한 란저우 기차 역 앞에 힘차게 날아오를 것 같은 말 동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실크로드 길을 따라 우루무치(乌鲁木齐)로 가거나 칭장(青藏) 고원을 거쳐 티벳 라싸(拉萨)로 가는 기차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란저우. 중국 서북부 최대의 교통 요지다. 동쪽으로 씨안(西安)을 지나 중원 땅으로 가거나 남쪽 스촨(四川)이나 북쪽 네이멍구(内蒙古)로 가려고 해도 이곳을 통해야 하니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요지이다.
란저우는 깐수(甘肃)성의 행정중심 도시이다. 이 성 지도를 보면 길게 동서로 뻗어 있는데 우웨이(武威), 장예(张掖), 쥬취엔(酒泉), 쟈위관(嘉峪关), 위먼(玉门), 둔황(敦煌)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상의 주요도시들이 연결돼 있다.
유명한 허씨저우랑(河西走廊)은 깐수성의 좁고 기나긴 평야 지대로 우챠오링(乌鞘岭)에서 시작된 길은 위먼관(玉门关)까지 장장 1000km에 이른다. 깐수성은 그야말로 이 허씨저우랑 그 자체라 할만하다. 실크로드 주요 통로이었으며 지금도 우루무치로 가는 철로와 국도가 이어져 있다.
란저우 시내를 황허(黄河)가 흐른다. 장장 6397킬로미터의 창장(长江)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5464km)이며 중국문명의 발원을 이끈 강이다. 황허는 쿤룬산맥(昆仑山脉) 동쪽 칭하이(青海) 성의 해발 4800미터 지점에서 시작해 산둥(山东) 성 뽀하이(渤海) 만까지 이어지는 강이다.
란저우 황허에는 쭝산챠오(中山桥)라는 이름의 철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1907년 독일 상인들이 건설한 것으로 이미 100년이 흘렀음에도 그 웅장하고 탄탄한 자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 철교 북쪽에는 바이타산(白塔山)이라는 해발 1700미터의 아담한 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원나라 시대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바이타(白塔)가 있다.
6월 25일 오후 작고 아담한 듯하지만, 의외로 계단이 가파르고 높은 바이타산 공원을 올랐다. 이 다리를 건설한 독일 사람들은 강 양편에 거대한 석방(石坊)을 설치하고 각각 ‘三边利济’과 ‘九曲安澜’이라고 새겼다. 그 중 ‘구곡안란’이 새겨진 석방이 있는 곳이 바이타산 공원 입구이다.
‘구곡’은 아홉 구비이고 ‘안란’은 물결이 잔잔하다는 뜻이니 ‘구비구비 잔잔한 물결’이기를 바라는 마음, 장사가 순조롭기를 바라는 상인들의 소망을 담았으리라. ‘삼변(三边)’은 삼각형이나 세 변이니 ‘온 세상’이고 ‘이제(利济)’는 ‘유익하다’는 의미일 것이니 ‘모든 곳에서 돈 벌이가 되라’는 욕심도 담긴 듯하다.
장사꾼의 마음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으랴. 100년 전 독일인들이 자금을 모아 철교를 건립한 것은 안전하고 빠른 유통이 목적이었을 것이고 석방에 새겨진 의미 역시 노골적으로 그 잇속이 드러나니 씁쓰름하기도 하다.
바이타산을 서서히 오르니 황허가 점점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오를수록 강변을 따라 조성된 멋진 빌딩들의 전경이 드러난다. 전망이 더더욱 넓어진다. 나무줄기 사이와 고풍스런 집 지붕 너머로 누런 강물이 흐르고 철교는 수직으로 이어졌고 그 너머에는 빌딩 숲이다.
산 중턱에는 황허(黄河) 기석관(奇石馆)이라는 수석(水石) 전시관이 있다. 동물이나 사람, 산이나 강 또는 해와 달과 같은 자연현상을 연상하는 독특한 돌들이 많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나오는 돌을 소재로 만든 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보지 못하던 것이라 돌로 이어 붙인 ‘원숭이’와 ‘소녀’를 각각 10위엔 주고 하나씩 샀다.
뒤돌아 전망도 보고 전시관도 구경하며 유유자적하며 오르니 바이타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이타는 원래 원나라 시대 칭기스칸(成吉思汗)이 초청한 씨장(西藏) 라마(喇嘛) 승려가 이곳에서 돌연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데, 명나라, 청나라 시대에 각각 중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바이타는 청나라 강희(康熙) 시대인 1715년에 높이가 17미터인 8면 7층 탑으로 중건하고 자은사(慈恩寺)라 명명했다. 라마 불교의 상징인 바이타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초기의 백색토는 사라지고 은은한 단청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이타가 있는 곳은 아주 좁은 공간이다. 탑을 관리하는 집채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지금은 골동품을 파는 가게로 변해 있다. 씨장을 상징하는 여러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라마 승려를 상징하듯 코끼리 등에 있는 북인 상피고(象皮鼓)가 인상적이다.
바이타 옆에는 2개의 아담한 정자가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을 동풍정(东风亭), 서쪽에 있는 것을 희우정(喜雨亭)이니 바람과 비의 정서가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높은 산 위에서 황허를 바라보며 바람 소리, 빗소리를 듣는 기분은 정말 황홀하다. 하지만, 날씨는 매우 무더운 6월말이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올랐는데, 더위에 지쳐 산 정상 희우정 부근에서 물 한 병을 마시고 황허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저녁 먹었냐고 인사말을 건넨다.
오후 5시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꽤 이르게 저녁을 먹으니 수인사 겸해서 물은 것이다. ‘점심도 안 먹었다’ 하니 밥 한 그릇에 야채 반찬 하나를 내어 준다. 정말 맛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선뜻 밥을 내어주는 마음씨는 사람에 대한 배려일 터. 이런 따스함은 밥의 온기 그 이상이다. 소박한 말씨이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주머니의 손길에 배어난 밥맛을 잊을 수가 없다.
생김새가 한족이 아닌 듯해서 물었건만 굳이 자신은 한족이라고 한다. 란저우는 천년 전 흉노족이 주름 잡던 지역이고 몽골족, 티베트족(壮族), 회족(回族)도 그 역사의 한 뿌리를 심은 곳이다. 서역으로부터 종교가 넘어온 통로이기도 하니 그 생김새만으로 어림잡아 이야기하는 것도 실례이긴 하겠다.
아주머니는 밥 먹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궁금한 것을 묻는다. 어디서 왔냐, 왜 밥을 아직 안 먹었냐, 내려갈 때 조심해서 내려가라 등등. 정말 해가 지고 있다. 이 바이타산은 여러 갈래 길이 있다. 이번에는 다른 산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의외로 사원이나 정자, 돌계단들이 장 정돈된 느낌이다.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곳곳에 많다. 멈춰 서서 앞을 보면 강물과 도시의 조화로운 멋이 살아온다. 잠시 발걸음 멈추었다 또 내려가고 하다 보니 금세다.
저녁 무렵이어서일까. 산 아래에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새 떼는 도로를 따라 비상했다가 다시 내려 앉았다가 곡예를 한다. 도로를 건너면 바로 황허. 산 위에서는 아주 작아 보이던 황허 쭝산챠오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황허의 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해서 붙여진 ‘황허 제일의 다리(黄河第一桥)’는 총 길이 233.33m, 넓이 7m에 달한다. ‘황허티에챠오(黄河铁桥)’라 불리다가 1942년에 쑨원(孙文)의 호를 따서 이름을 바꿨다. 정말 쑨원은 중국사람들 속에 깊이 각인된 사람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공원, 거리에 그의 호를 딴 지명이 많고 그의 고향은 아예 쭝산시로 바뀌었다.
차량이 통제된 다리 위를 가장 날렵하게 다니는 것은 역시 자전거이다. 자전거와 사람이 어울려 다리 위는 온통 북새통이다. 강 남단으로 건너오니 거북이 석상 위에 ‘황허띠이챠오(黄河第一桥)’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사진 찍는 사람들로 또 북적댄다.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러 나왔다. 산보하고 유람선도 타고 데이트도 즐기는 서울의 한강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강물의 빛깔은 차이가 많다. 솜사탕을 먹는 아이들, 그림 그리는 사람들, 체조하는 사람들 모두 한 가족이 모두 나와 저녁 무렵의 황허의 노을과 낭만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강 모래사장으로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장난감 삽으로 모래 놀이를 하고 있고 연인들은 나란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속삭이고 있기도 하다. 갑자기 물속에서 개 한 마리가 헤엄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훈련을 시키는 중인가 보다. 헤엄을 쳐 강변으로 나온 털북숭이 개가 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내고 있다.
해가 지자 황허의 모습이 점차 변한다. 흙탕물이던 색깔이 노을에 비쳐 점점 붉어지더니 금방 사라지고 말 태세다. 황허를 질주하는 쾌속정들이 강물의 흐름을 바꿀 듯 빠르게 요동친다. 계속 유람선이나 쾌속정을 타라고 재촉하는 젊은 친구가 따라온다. 열 번인가 거절했나 보다.
완전히 밤이 됐다. 강 양편으로 조명이 나타나니 멋진 밤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황허 북쪽 바이타산 야경이 바이타를 중심으로 고풍스런 야경이라면 남쪽은 빌딩 숲의 도시적인 야경이다. 그리고 쭝산챠오의 불빛은 하얀 아치를 그리며 불쑥 나타났다. 역시 야경은 강변을 끼고 있어야 멋지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중국은 각 지역별로 독자적 브랜드의 맥주가 항상 있다. 이곳 란저우의 우취엔피쥬(五泉啤酒)를 한잔하며 베이징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지금은 어디쯤 가고 계신가요?’ ‘란저우지요’했더니 ‘아~ 유명한 란저우 라멘(拉面)은 드셨나요?’ 아! 그러고 보니 쫄깃한 면발에 얼큰한 육수, 파 송송, 시원하고 사르르 녹는 무가 들어 있는 란저우 라멘을 먹지 못했네. 게다가 먹기 전에 마늘 몇 개를 넣었다가 나중에 먹으면 그 짜릿하고 구수한 맛도 잊을 수 없는데….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1식 1찬을 먹었으니 ‘괜찮아요’ 했더니 ‘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중국에 있던가요?’ 한다. 여행이 주는 별미라 아니 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youyue/14057769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