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0일 마산제일여중·고 학생들을 인솔하여 오전 8시 30분발 태국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경남지부와 태국 유네스코의 자매결연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홈스테이를 통한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의한 것으로 태국 파크레드 중등학교(Pakkred Secondary School)와 암마파니츠누클 학교(Ammartpanichnukul School) 방문 일정이 연이어 잡혀 있었다.
태국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리다. 예컨대 우리 일행이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Suvarnabhumi Airport)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20분께. 그러면 태국 시간으로는 12시 20분께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국상 중이라 온 거리가 추모 분위기였다.
태국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나라로 지난 2일에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H.M. King Bhumibol Adulyadej) 국왕의 누님인 깔리아니 공주(Galyani Vadhana)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공항으로 마중 나온 파크레드 중등학교의 시리폰(Ms. Siriporn Nuanyong)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들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컴퓨터를 가르치는 시리폰 선생님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서 우리의 태국 방문에 상당한 도움을 준 분이었다.
학교·호텔·거리에도 제단이 있는 나라, 태국
중·고등학교 과정(6년)을 가르치는 공립학교인 파크레드 중등학교(Pakkred Secondary School)는 104년의 역사를 지닌 학교로 방콕에서 4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크레드시에 위치하고 있다.
그 학교에 대한 첫인상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우리 일행을 교문에서부터 황송할 정도로 따뜻이 환영해 주던 행진 악대(marching band)의 늠름한 모습, 그리고 지난해 12월 5일에 80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사진과 교내에도 안치되어 있는 불상이다.
소승불교의 한 갈래인 남방불교를 믿고 있는 태국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 신자다. 그래서 학교, 호텔, 거리 등 어디에 가더라도 제단이 쉽게 눈에 띈다. 게다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망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국왕의 존재 또한 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태국에 도착한 그 다음날에 마침 파크레드 중등학교의 개교 기념 행사가 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용반 학생들을 따라 서투른 태국 춤을 함께 추고 나서 그들의 경쾌한 '자비의 춤(Mercy Dance for 4-parts of Thailand Unity)'을 감상했다.
그리고 돼지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타이 오믈렛인 '카이 얏 사이(Kai Yad Sai)'를 즉석에서 배워 요리해 보기도 하고, 코코넛에 설탕을 넣어서 만든 카놈크록(kahnom krok)을 맛보았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국화빵 같아 신기했다. 태국에는 바나나와 코코넛을 섞어 기름으로 튀긴 간식도 있는데, 바나나를 튀겨서 요리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한 나로서는 별미였다.
에메랄드 불상은 정말 '에메랄드'로 만들었을까?
그날 오후에 우리들은 왕궁(The Grand Palace)을 구경하러 방콕으로 갔다. 그곳은 태국의 상징적 건물로 왕족의 주거를 위한 궁전뿐만 아니라 옥좌가 안치된 건물, 에메랄드 사원, 왕의 업무 집행을 위한 건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그곳에 들어서면 반짝거리는 유리, 자기, 금박으로 장식되어 동화 속의 아름다운 나라에 와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나는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황금빛 둥근 탑인 프라 씨라따나 쩨디(Phra Siratana Chedi), 라마 4세 몽쿳왕 때 만들어진 앙코르와트 석재 모형물, 신화에서 유래된 반인반조 등을 거쳐 에메랄드 사원(Temple of the Emerald Buddha)으로 갔다.
높이 66cm, 너비 48.3cm 크기로 '붓싸복(Busabok)'이라는 태국 전통 양식의 목각 옥좌에 모신 에메랄드 불상은 높은 제단 위에서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에메랄드 불상은 여름, 우기와 겨울(건기) 등 1년에 세 번 국왕이 직접 행차하여 옷을 갈아 입힌다고 한다.
그런데 에메랄드 불상은 실제로 녹색의 옥을 깎아 만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에메랄드 불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그 사연은 좀 싱겁다. 한마디로 그것을 처음 발견했던 스님이 에메랄드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상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1434년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 있는 한 사원의 사리탑 속에서 발견되었을 때만 해도 흰 석고에 싸여져 있어 그저 평범한 불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어느날 석고가 벗겨져 찬란한 녹색의 돌이 드러나면서 그 불상의 전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원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자세로 에메랄드 불상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듯 앉아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는 사원으로 드나들거나, 불상 사진을 멀리서나마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또 독킴(Dokkem)이라는 꽃을 물에 담갔다가 머리를 세 번 톡톡 치며 행운을 비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날 몹시 무더운 날씨에도 왕궁에 차려진 빈소에 깔리아니 공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객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얼마 후 우리 아이들은 에메랄드 사원에서 나와 홈스테이를 하는 태국 친구들과 함께 각자 집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에 앉아 코코야자 나무 사이로 큼직한 해가 달리는 듯한, 낯선 이국의 저녁 풍경에 한참 매료되었다. 그리고 짜오프라야 강변의 한 식당에서 싱아 맥주를 한 잔 들이켜면서 태국의 더위를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