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연착륙을 가로막는 두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사교육비 팽창이 바로 그것이다. 출발부터 이명박 정부는 그 두 가지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당선자는 부동산 가격보다는 ‘사교육비 팽창’에 더 강한 의지로 대항할 태세다. 부동산 가격보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다고 판단한 것일까? '논술교육'이 사교육비 팽창의 주범? 사교육비 팽창의 주범으로 ‘논술교육’을 지목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당선인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예로 들며 드러내놓고 그 심중을 밝힌 바 있다. “논술 시험을 없앤 연세대 경영학과는 수많은 우수 학생이 몰려왔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고 표현함으로써, 논술 교육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
그 효과는 단박에 나타났다. 이 당선인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기 며칠 전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에서 회장단은 “논술과 구술 면접 등 대학별 고사를 자율로 치르겠다. 그리고 과거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가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통합교과적인 대학별 고사를 치르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당선인의 기자회견 후 대학처장협의회는 말 바꾸기를 시작했다. 부랴부랴 ‘정시 모집에서 논술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기에 나섰다. 그런데 이는 출발부터 방향이 잘못되었다. 먼저, 논술 교육이 과연 사교육비 팽창의 주범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교습비 규모면에서다. 일반 수능학원이나 내신을 담당하는 학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반 학원에 비해 3분의 1정도의 강습비를 낼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1주일에 한 번 정도만 다닌다. 수능과 내신전문학원에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나간다.
양재동에서 내신전문학원을 운영하는 학원장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내신을 잘 관리해야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때문에, 내신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수능은 일단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내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이 학원장의 고백대로, 학원가와 학부모가 인정하는 사교육비 팽창의 주범은 바로 내신전문학원이다.
수강하는 학생의 숫자면에서도 비교가 되질 않는다. 수능과 내신을 담당하는 학원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닌다. 하지만 논술의 경우,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만 수강하므로 전체 학생의 20% 정도만 다닌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논술이 사교육비 팽창의 진원지로 꼽힌 데는 수능이 끝나고 정시에 지원하기까지 ‘막판몰이식으로 이루어진 강습’이 문제가 된 듯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우수학생까지 가세해 강남 논술가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매일 서너 시간 이상씩 일주일동안 집중적으로 논술을 공부하는 학원 프로그램의 수강료는 대부분 백 만원 이상이다. 지방 학생들의 경우 숙식까지 해결하려면 2, 3백만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수시, 정시 고사 직전에 목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제외하면 논술 교육은 장점이 오히려 더 많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0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학업성취도 국제학력평가(PISA) 결과, 만15세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전 세계 1위였다. 2000년의 6위, 2003년의 2위에 이은 놀랄만한 결과이다. OECD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학교에서 작문 교과를 강조하고, 대학들이 입시에서 논술고사를 치르면서 학생들이 읽기와 사고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 OECD 보고서조차 논술 교육의 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 논술 교육을 담당한 것은 바로 사교육이었다. 공교육에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부분이 바로 ‘논술 교육’이다. OECD 학력평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핀란드의 경우나,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공교육에서 논술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핀란드가 세계 1위의 학력을 자랑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핀란드 교육의 특징은 ▲우수한 교사 ▲양질의 무상 교육 ▲폭넓은 독서를 통한 창의성 개발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맞춤 진도다. 그 중에서도 핀란드가 가장 중시하는 교육은 다름아닌 ‘읽기’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가 생활화돼 있다. 61%는 매일 신문을 읽는다. 학교 수업도 독서와 토론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리쿠 바르요바라 주한 핀란드 대사관 일등 서기관은 "시험 전날 참고서와 씨름을 해야 하는 한국 학생과 달리 핀란드 학생들은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역사과목의 경우 연도를 맞히는 등의 단순 암기문제가 아니라 지식을 토대로 에세이를 쓰는 방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이다.
논술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따라서 이명박 당선인과 교육정책 담당자는 논술교육에 철퇴를 가할 게 아니라, 사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논술을 공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핀란드의 우수한 공교육은 우수한 교사에서 비롯된다. 핀란드의 종합학교 1~9학년(우리나라 초·중학교에 해당) 교사들은 모두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7~9학년 교사들은 박사 학위 소지자도 상당수다.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중·고교 교과 교원자격을 취득하면 월 100~150유로(약 14만~21만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는 등 교사들의 자기계발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교사들이기에 읽고 쓰는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조차 핀란드의 이런 교육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정반대의 길을 갈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입시로 정점을 이루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논술이 폐지될 경우, 논술 교육에 대한 비중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현재 세계 최고인 한국학생들의 읽기 능력은 2000년 이전의 수준으로 후퇴하고 말 것이다. “대입에서 논술이 없어지면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조차 책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통합교과형의 논술이 너무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고 쓰기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죠.”
초등학교 6학년생을 둔 학부모 김모씨의 고백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번에 발표된 ‘정시 논술 폐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현재 대입제도는 수시와 정시 모집으로 나뉘어 있다. 수시에서 53% 정도를, 정시에서 47% 정도의 학생을 각각 뽑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점차 수시의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추세다. 수시 모집은 특목고와 자사고의 학생이나 언어 특기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모집에서는 논술의 비중이 높고, 수능은 자격고사의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각 대학 입학처장들이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시 모집에서의 논술이다. 하지만 일반 학부모들은 마치 전체 논술이 다 폐지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학부모들이 받아들이는 논술의 비중 축소는 실제보다 더 과장된 면이 있는 셈이다.
“대입에서 논술 비중이 준다고 해도 논술 교육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남편 일로 미국에 2년 정도 살다 왔는데, 어려서부터 쓰기 교육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에 놀랐어요. 어떤 자료를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쓰기’를 통해서 테스트 하더군요. 말로 하기는 쉽지만 자신의 의사를 글로 통해 표현하는 것은 어렵죠. 논술 테스트는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논술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치동의 주부 정모씨의 주장이다. 한국에서는 대치동의 고3 엄마가 가장 뛰어난 입시전문가로 여겨진다.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논술 비중이 축소되면 대학은 과연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학생을 뽑을 것인가’다.
수능과 내신만으로 학생 뽑을 수 있나? 이제 이명박 당선자와 각 대학 입학처장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는 ‘입학사정관제’를 들고 있다. 미국 대입제도인 SAT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인수위가 관심을 보인 분야가 바로 입학사정관제다. 입학사정관이란 각 대학에서 학생 성적 외에 고교 수준, 잠재력 등 대학만의 다양한 기준을 적용해 신입생을 뽑는 입시 전문가다. 자율성이 생명인 미 대학 입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엄청난 혼란과 입시부정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40여개 대학으로 입학사정관 제도를 확대하고 거기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와 국민성을 따져볼 때 이 제도가 성공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대학편입학 비리’의 확대판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염려된다. 약간 과장하면 대학총장의 자녀들과 그 친인척들이 먼저 입학하고, 교수 자녀들과 친인척들이 입학하고 나면, 그 나머지 자리를 두고 일반 학생들이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우려된다. 한마디로 대학의 도덕성과 자체 기준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신은 어떠한가? 내신은 입학사정관제보다 더 위험하고 염려스럽다. 작년 김포외고의 입시에서 우리는 이미 시험문제 유출을 경험했다. 하지만 시험문제를 유출한 당사자는 아직도 검거되지 않았고, 문제가 되었던 학생들도 모두 입학처리 되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면 나중에 유야무야된다는 것을 한번 경험한 셈이다. 1년에 한번 치러지는 입시에서조차 자행되는 문제유출이, 1년에 4번 치러지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는 더 빈번히 자행될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고등학교 내신도 신뢰할 수 없다. 이 점은 대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교수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난 1월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경영학과 교수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매일경제> 1월 18일자 참조). 71명을 뽑는 정시모집에서 1단계 수능 점수 기준으로 2배수에 뽑힌 학생들은 내신 50%, 논술 30%, 면접 20%의 2단계를 통과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었다. 1시간 동안 문제를 미리 읽어보고 15분 동안 답변을 하는 어려운 면접 시험에서, 같은 1등급이라도 20% 정도의 학생들은 놀랄 만한 답을 내놨지만, 어떤 학생은 말 한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1등급이라도 실력차는 극과극이었던 셈이다. 수능 1등급이라면 내신 또한 최우수였음은 말한 나위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면접 없이 수능과 내신만으로 학생을 뽑았더라면 그건 ‘입학 로또’가 될 뻔했다는 지적이었다.
논술의 비중이 축소되어 변별력이 사라질 2009년 대입 정시 모집에서 ‘입학 로또’의 광풍을 경험하고 나서야 ‘논술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너무 때늦은 일이 될 것이다. 각 대학들이 모호한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보다는 논술과 면접이라는 확실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