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토요일, 도전 6일째. 글도 벌써 5건이나 썼다. 6일째 이야기를 쓰기 전 그동안 올린 글을 쭉 훑어봤다. 당시 느꼈던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다시 느껴졌다. 불과 며칠 전 얘기들이지만, 오래 전 일처럼 느껴졌다. 벌써 잊어버린 것들도 있다. 역시 글은 그날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그때의 미묘한 감정은 다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밖이 어두워지니 쓸데없이 자꾸 감상에 젖어든다. 갑자기 주책이다. 탤런트 한예슬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어머, 나 완전 꼴값이야." 시간이 촉박하다. 잘못하다간 뜬눈으로 밤을 새야 할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같은 날 오후 2시, 잠실종합운동장 제 1수영장.
"오늘은… 얕은 물에서 구조하…는 방법입니다."
실습 전 설명을 담당하는 강사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안 나와 답답한지 큰 기침을 몇 번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목소리…가…갔네요…이런 적이…없었는데. 잘 안…들리더라도…이해해…주세…요."
애써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안 쓰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잇따른 훈련으로 내 몸이 지친 만큼, 강사 목도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미안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척추부상자'를 구조하는 방법은?수업은 계속됐다. 이번엔 연배가 있는 짬밥 최강 강사가 직접 나섰다. 배울 내용은 '척추 부상자 구조법'.
"척추를 다치면 아무리 얕은 물이라도 못 나와. 고개를 들어 숨을 쉴 수도 없고. 이럴 땐 최대한 조심해야 해. 구조한답시고 물에 확 뛰어들면, 물결 때문에 위험해질 수도 있거든. 이럴 땐 입수(入水)해야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이 이어졌다. "조심들어가기요."
'조심들어가기'(전편 참조).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그 모습,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여기서 질문 하나. 얕은 물인데 척추를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강사에 따르면, 대부분 '무리한 다이빙' 때문이다. 물에 뛰어들기 전에는 우선 물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야 한다. 또 물속에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지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그냥 물에 뛰어든다.
특히 남자들이 주 경계 대상이다. 주변에 예쁜 여자라도 있을 때는 멋지게 보이려고 평소보다 더 오버하게 된다. 멀리서 도움닫기를 한 뒤 허리를 'ㄱ'자로 꺾어 머리 먼저 들어가기로 입수한다. 이럴 때 사고가 생길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강사는 설명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막상 사람을 구하는 입장이 돼 보니, 이해가 간다. 그동안 수영장에 '다이빙 금지'라고 적혀 있는 걸 무시했던 게 새삼 미안해졌다.
다시 본론으로. 척추 부상자는 무엇보다 목을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야 한다. 때문에 구조법도 목을 고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방법으로는 크게 '머리부목법'과 '머리턱고정법'이 있다. '머리부목법'은 익수자(溺水者)의 팔을 부목(副木)처럼 쓴다. 어깨 안쪽 근육을 양 손으로 붙잡은 머리 쪽으로 밀어 고정하면 된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막대기를 덧대는 식이다.
'머리턱고정법'은 말 그대로 머리와 턱을 받쳐 움직이지 않게 한다. 주의할 점은 구조자가 익수자의 턱과 뒷머리를 양 손으로 받칠 때, 팔목 전체가 일자(一字)로 몸통에 완전히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손목이 흔들려 오히려 목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숨만 쉬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더니...'다음은 물에 빠진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물론, 척추를 다친 사람이 아닌 일반 익수자일 때다. 사람이 여럿일 때는 힘으로 끌어올리면 된다. 문제는 혼자일 때.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땐 어쩔 수 없이 혼자라도 끌어올려야 한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익수자를 뭍 근처까지 데리고 온다. 수영장은 풀을 둘러싼 벽으로 생각하면 된다. 익수자의 팔을 하나씩 차례로 뭍 위에 올린다.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팔은 겨드랑이 안쪽까지 바짝 붙여야 한다. 손을 'X(엑스)'자로 놓아 한 손으로 고정한 뒤, 구조자는 일단 물 위로 올라간다.
다음엔 곧게 서 두 손을 잡고 끌어올린다. 이때 팔목 힘으로 끌어올리려 해서는 안 된다. 물의 반동을 이용하는 게 핵심. "하나~둘~셋"하며 물에 약간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물에 뜨는 순간에 확 낚아채야 한다. 이때 한쪽 발은 뻗어 지지대 역할을 한다. 익수자가 올라오면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배울 때마다 새삼 놀라게 된다. 동작 하나하나가 익수자에게 맞춰져 있다. 살갗이 까지지 않을까, 발길에 채여 멍이나 들지 않을까, 항상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 '아~ 정녕 이것이 인명구조원의 마음가짐인가.' 그냥 숨만 쉬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오후 3시20분쯤. 이번엔 수영을 조금 하는 사람을 돕는 법을 배웠다. 이른바 "아이~ 힘들어." 수영을 하다가 한 사람이 갑자기 지쳤을 때 쓴다. 실습은 2인 1조로 이뤄졌다. 앞 사람이 출발한 뒤, 뒷사람이 뒤를 따른다. 3~4m를 간 뒤, 앞 사람이 외친다. "아이~ 힘들어." 이때 뒷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리와요. 도와줄게요."
그런 뒤 앞 사람은 구조자의 골반에 다리를 감고, 두 손은 구조자 어깨에 살며시 올리면 된다. 구조자는 앞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며, 평영으로 앞으로 나간다.
구조자가 한 명 더 있을 땐, 힘든 이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선 뒤 한쪽 손을 겨드랑이에 낀 채 평영으로 가면 된다. 위에서 보면 삼각편대 모양이다. 직접 보면 생각보다 멋있다. 살짝 상상해봤다. 딸 둘이 양쪽에서 힘든 아버지를 위해 끌어주는 사랑스런 모습을. '이거, 또 꼴값인가?'
'구조부이'로 익수자 구하기의 핵심은?
잠시 뒤, '구조부이(부표)'를 이용한 수업이 이어졌다. 쉽게 말하면, 빨간색 튜브라고 보면 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멋진 요트에는 항상 이게 걸려 있다. 화면 속 주인공은 사람이 물에 빠지면, 빨간 튜브를 던져 사람을 멋지게 구해낸다.
여기서 잘못된 상식 하나. 보통 영화에선 튜브를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주면 대부분 튜브를 타고 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튜브를 익수자 근처에 딱 맞게 던지다가 자칫 익수자가 맞을 수가 있다.
만져보면 알겠지만, 말이 튜브지 겉껍질이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돼 있다. 맞으면 엄청 아프다. 사람 구하려다가, 되레 기절시킬 수도 있다. 때문에, 튜브는 항상 큰 반원을 그리며 높게 던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 익수자보다는 훨씬 더 뒤쪽으로 떨어질 수 있게 힘을 조절한다. 방향만 익수자를 향할 뿐이다.
그럼 익수자는 어떻게 구할까. 비결은 '줄'이다. 튜브를 묶은 줄을 익수자가 잡자마자 세게 당겨 사람을 구해내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굳이 튜브가 아니라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한 케이블 채널에서 페트병을 던져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었다. 페트병에 물을 약간 담은 뒤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 구했는데, 방식이 약간 잘못됐다. 페트병을 구조자 바로 앞에 떨어뜨렸고, 페트병을 잡고 물에 뜨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잘못이다. 구조부이 사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페트병은 구조에 쓰인다. 흔히 볼 수 있는 음료수 병이 아닌, 대형 우유페트병 같은 손잡이가 있는 것이 사용된다. 줄로 묶기 쉽고, 잘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 방법은 튜브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 혹시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무조건 페트병에 물을 담아 줄로 묶어 던져라. 수영을 못해도 상관없다.
공포의 시간, 입영... 꿀꺽 꿀꺽 물을 마시다오후 5시30분. 그 시간이 돌아왔다. 공포의 입영, 진화하는 입영, "뒤.질.랜.드" 입영 시간이다. 오늘도 입영은 실망을 안 시켰다. 그 전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이다. 입영 조교로는 전에 "글씨 좀 예쁘게 쓰라"고 했던 귀여운 강사가 나섰다. "두 손 곧게 쫙 뻗어서 양쪽 귀에 바짝 갖다 대세요. 20초 세고 손 내리는 거예요. 몇 초?" "이…십…초…요."
대답이 시원찮자, 숫자가 올라간다. "목소리가 이게 뭐야. 40초 세요. 몇 초?" 다들 지켰는지, 이번에도 목소리가 작았다. "자기만 힘든 게 아녜요. 대답하는 사람은 뭐고, 안 하는 사람은 뭐야. 안 되겠네. 80초. 몇 초?" 20초도 벅찬데, 숫자는 갑절씩 높아졌다. 다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팔.씹(십).초.요~!"
"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하나, 둘, 셋, 넷, 꼬로록, 다, 꼬로록, 꼬로록, 꼬로록…." 도저히 숫자를 셀 수가 없었다. 그냥 팔목까지 두 손을 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거 뭐 버틸 수가 있어야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몸은 자꾸만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누군가 자꾸 발밑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10초 남짓한 시간, 물도 참 많이 먹었다. 맛도 없는데, 어찌 그리 꿀꺽꿀꺽 잘도 넘어가든지.
입영 조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싫어서, 괴롭히려고 이러는 게 아녜요. 하다 보면 실력이 느니까, 좋아지라고 하는 거니까 원망하지 말아요." 알고 있지만, 어금니에 한가득 힘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악에 받쳐 소리만 고래고래 질렀다.
수차례 같은 방법을 반복한 뒤 수업은 끝났다. 수영장 훈련은 이제 하루, 단 하루만 남았다. 나머지는 중간 테스트와 지상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다. 일요일, 내일은 오전 10시까지 수영장에 도착해야 한다. 지금 시간, 새벽 1시26분. 으악~ 어쩌나, 아직 숙제도 안 했는데. 큰일이다. "그런데 나, 잠은 언제 자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